일본의 '경제보복' 최대의 피해자는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둡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선 대통령님의 단호한 의지천명, 잘 보았습니다. 누구는 여기서 ‘통쾌함’을 느꼈겠지만, 저는 한 편으로 우울해졌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피해를 입은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왜 피해를 입었는지 의아하실 겁니다. 바로 역대급으로 낮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올해보다 240원(2.9%) 오른 8,590원.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인상율인 2010년의 2.75% 인상 이후 최저수준이라고 하는군요.
민주당은 2020년 최저임금이 결정되자 이를 환영하며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남겼습니다.
영세자영업자와 재계의 우려를 반영하고 일본의 경제보복 등 위기에 함께 대응하고자하는 의지가 확인되는 결과입니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국의 최저임금은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2019년의 10.9% 인상율을 3분의 1토막 내야할 정도인 것일까요? 일본의 경제보복이 미국발 금융위기와 맞먹을 만큼의 타격을 주는 것일까요? 경영계의 주장대로 삭감 혹은 동결(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 위원 측은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으로 4.2%가 ‘삭감’된 8000원을 제시했습니다)했다면, 일본의 경제보복을 더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같은 경제위기에, 왜 부담은 오롯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입니까. 사실, 경제성장을 위한 서민·노동자 희생론은 보수세력의 전가의 보도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며 서민들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 그리고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민주당의 논평. 비슷하지 않습니까?
왜 민주당의 논평에는 ‘영세자영업자와 재계’,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우려만 있는 것입니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우려는 왜 빠진 것입니까. ‘사람 중심의 경제’에 ‘노동자’가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입니까. ‘일본 경제 피해’는 미래의 상황에 대한 ‘경고’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피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본 때리기'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이익 지키기'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취임 전후부터 ‘노동존중’을 강조하셨습니다. 민주당은 거기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지요.
‘노동존중’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최저임금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최저임금은 더 인상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그간의 인상율마저 무력화한 마당에, 2.9% 인상이라니요.
‘영세자영업의 문제’ 또한, 한편으로 ‘노동존중’에 그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세자영업의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나오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입니다. 이는 한국의 ‘고용불안’과 맞물려있습니다.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상황에, 사람들은 자영업 시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면, 영세자영업 ‘양적 과다’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우리나라가 노동을 중시하는 시선을 가졌다면, 지금 우리는 더 건강한 국민경제를 이뤄냈을 것입니다.
‘노동존중’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는, 경제위기가 왔다고 해서 손쉽게 후순위로 물릴 의제가 아닙니다. 지속가능한 성장, 국민경제의 향상을 위해 반드시 추진되어야 할 ‘국가적 핵심 의제’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지지부진한 비정규직 제로화 등을 볼 때, ‘노동존중’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기도 합니다. 최저임금 1만원과 ‘친노동자정권’은 과도한 희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단지, 정부의 노동정책이 더 이상 ‘후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