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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Nov 27. 2015

Oh, my Malaysia

I'm good to go (04_ 경제학도, VMD로 변신하다)




인턴=패기=호기=돈키호테

MJ(Metrojaya)에서 어느덧 5주가 흘렀다. 그 동안 2곳의 부서(Operation & Managemnet dept, Human Resourse dept)를 거쳐 VMD(Visual Merchandising Dept)로 왔다. VMD는 백화점 내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곳이다. 행사 시 사용될 행사 용품 및 장식, 내부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평소 새로운 시즌이 시작 될 때마다 의류 컨셉에 맞는 내부 인테리어 및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VMD라니. HR에서 2015 1/4분기 인사변동보고서(Manpower Report) 작성을 마치니 General Manager가 내게 물었다. "VMD에서 일 해 볼 생각 있니?"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VMD가 어떤 부서인지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어떤 곳인지 먼저 물어봤다. GM은 '백화점에서 매우 중요한 업무를 하는 곳'이라고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부서로 가야해'라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GM의 강요아닌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거니와,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말에 혹했던 것도 있다. 아마 순간적으로 내게 인턴=패기=호기=돈키호테, 이런 등식이 순식간에 진리로 자리잡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나는 VMD로 가게 됐다. GM과 이야기를 한 후, 알빈이 내게 와 물었다.
"거기 디자이너들만 있는 곳이야. 괜찮겠어?"
"뭐든, 내가 할 일이 있겠죠. 그래서 보낸 것 아닐까요?"
그래, 아무리 디자이너만 있는 곳이라 해도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보낸 것이라 생각했었다. 내게 '나비포비아'가 생길 줄 도 모르고.




VMD는 매우 바빴다. 9시 가 되기 한참 전 부터 사람들이 작업 공간에 모여 앉더니, 제각각 디자인을 하고 소품을 만드는 일로 정신이 없었다. Spring/Summer 시즌을 맞이해 백화점 내부 인테리어 및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바꿔야 해서 그렇단다. 그리고 곧바로 다가오는 4월 29일에 MJ 자체 브랜드 4곳의 패션쇼가 있어 패션쇼장을 장식할 소품과 인테리어 소품도 제작해야 한다. 말 그대로 '미친듯이' 바쁜 부서다. 알빈의 소개로 VMD 매니저, 수석디자이너, 일반디자이너, 그리고 그 외 설치담당자 순서로 만났다. 어떤 영역이던 '디자인' 작업을 하는 곳을 처음 방문했는데, 벽면엔 온통 디자인 샘플 사진과 컨셉이미지로 가득했고, 한 켠엔 그 동안의 소품 및 디스플레이 디자인 스크랩북으로 가득한 책장이 있었다. VMD매니저인 마가렛이 나를 팀원들에게 소개했다. 앞으로 바쁜 우리를 구제해줄 JEHEE ("JEHEE WILL SAVE US. THANK YOU GOD"이라고 말했다)라고 소개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사도 아니었고, 재료 주문도 아니었다. 디자인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을 법 한 사무보조도 아니었다.

"JEHEE, 저 나비 좀 오릴래?"

나비만들기의 달인? 아니, 나비포비아!!





이번 S/S 시즌은 꽃 무늬 패턴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장식 소품으로 꽃과 나비가 많이 이용된다.메인 컬러는 흰색, 노란색, 파란색. 이 색에 맞춰 나비도 갖가지 색깔로 만든다. 지난 주 금요일, VMD로 옮겨온 후 출근하면 나를 맞이하는 것은 수백마리의 나비가 그려진 압축 스펀지와 도안이었다. 다른 동료가 도안에 맞춰 그려 놓은  나비들을 자르고, 또 돌돌 말린 엄청난 압축 스펀지에 또 도안을 따라 그린뒤 오렸다. 이날(월요일) 하루 종일 오려댄 나비만 287마리. 단순 작업에 불과했지만 같은 작업을 하는 부서 사람들과 수다 떨며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히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부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일 주일간을 형형색색의 나비만 오리고, 그리며 보냈다. 익숙해지려하면 그새 새로운 모양의 나비가 왔고, 노란색이 질릴 때면 파란색 나비가 왔다. 그렇게 나는 나비만들기의 장인이 되어가면서 동시에 나비포비아에 걸렸다. 빌어먹을 나비.




오려도 오려도 끝이 없는 나비. 일주일간 내 책상 위엔 나비가 한 가득 했다. 아직도 나는 나비 모양의 귀걸이나 팔찌는 쳐다도 보지 얺는다.




어제, 그러니까 일주일간 작업실에서 수 백 마리의 나비를 탄생시킨 후부터는 백화점 현장으로 옮겨와 일했다. 첫번째 장소는 미드벨리 메가몰(Mid Valley Mega Mall). 이 곳에 입점해 있는 메트로자야 백화점의 모든 쇼 윈도와 디스플레이를 오린 나비를 이용해 장식해야 했다. 그 동안 열심히 오렸던 나비들을 글루건을 이용해 갖가지 모습으로 만든 뒤, 적당한 자리에 붙였다.

※ 이 전의 부서에서 일 할때는 블라우스/셔츠에 바지 혹은 치마 차림이었지만, 업무 특성 상 VMD에서는 차려입은 복장보다 활동적인 복장을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한다.





사실 이미 S/S 시즌 신상품은 일부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사수를 쫓아다니며 사수가 담당하는 브랜드 매장에 들러 마네킹에 입힐 옷을 시즌 컨셉에 맞게 고르고, 입히는 작업을 했다. 들른 매장은 3-4곳 정도. 그러나 내 키보다 크고 은근히 무거운 마네킹을 분리하고, 옮기고, 옷을 입히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또 다른 나의 임무는 마네킹에 입힐 옷과 입혔던 옷을 다림질 하는 것. 마네킹에 입혔던 옷은 연출에 따라 소매를 접기도 하고 손님들이 옷을 만져 구김이 생기다 보니 다시 깔끔하게 다림질을 해야 했다. 처음으로 거대한 스팀 다리미를 썼다. 익숙하지 않다보니 비록 물이지만 손 이곳 저곳을 데었다.





 매장으로 오니, 다시 한 번 내가 한국인임을 실감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다 보니, 사수는 나를 데리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직원들에게 소개했다. '한국에서 온' JEHEE, 나는 이곳에서 'KOREAN GIRL'로 불렸다. 처음엔 낯설다가도, 매장의 휘젓고 다니며 일하니, 내게 아이스 테타릭을 사주거나 간식거리를 주기도 했다. 직원 중에 만난 트랜스젠더는 내게 열정적으로 친근감을 표했다. 자신을 '베라'라고 부르라던 그녀는 향수제품을 담당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하다가 잠시 쉴 때면, 베라는 나를 불러 이것 저것 시향을 할 수 있게 해줬다. 자신은 직원할인을 받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향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점심 식사 이후에도 몇 시간을 매장 안을 휘젓고 다니다 VMD팀 현장 사무실에 갔다. 현장사무실은 건물 밖으로 통하는 곳에 있어 잠시 햇빛 좀 보고, 바람을 쐴 요량이었다. 그런데 아니 웬 걸. 내려가자자마자 사수 눈에 딱 걸려서는 앞치마를 입었다. 그리고는 햇빛을 등 뒤로 한 채 열심히 소품 페인트 칠을 해야만 했다. 현장, 그러니까 백화점에서 작업한다는 말에 '아이쇼핑 해 볼 수 있으려나?'했던 기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미드벨리로 첫 출근을 한 뒤, 나는 완전히 '뻗었다'. 지금껏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다 처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활동적인 일을 하다보니 에너지 소모가 엄청났다. 하지만, 이건 겨우 준비에 불과했다. 오늘(화요일)부터 시작된 일은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일이었다. 디자인과 단 한 번도 가까워져 본 적이 없었기에, VMD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많이 부담됐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아주 잘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만난 현장 직원들도 매우 찬절했고, 매장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내가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음을 느꼈다.



메트로자야에서 일을 하면 할 수록 사람들에게 정이 들고 배우는게 많아 벌써부터 한국에 가기 싫어졌다. 타고난 복을 이 곳에서 다 쓰듯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나를 밑고 일을 맡겨준 것에 감사한다. 여러 부서를 이동하면서도 항상 그 곳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긴 일들이 나를 반겼고-VMD에서의 중요한 이벤트는 다음 화에 이어진다- 때로는 힘들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벅찼지만 항상 그 끝에는 해냈다는 안도감과 앞으로도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또 무언가를 배웠다는 뿌듯함이 있다. 오늘 하루도, 이 곳 메트로자야에서 내가 헛되이 쓰이지 않음에 감사한다.




역시, 신은 한국인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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