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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Jan 18. 2016

엄마의 갱년기

50대 어디쯤에서 잠시 쉬는 엄마에게.


<응답하라 1988>를 보며, 엄마는 갱년기를 겪는 라미란을 보며 울었고 나는 라미란을 지켜보는 남편을 보며 울었다.





잠시 본가에 내려왔다. 딸을 보고싶어하는 엄마와 주말을 함께 보냈다. 기차에 오르기 전, 엄마와 점심을 먹고 나서였다. 


"한 때, 20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많았어.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공부도 포기하지 않았을거고 더 열심히 살았을거야"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온 당신의 인생이 후회스러운 것이었을까. 아빠를 만나 결혼하고, 힘들게 버텨온 26년의 결혼생활에 지치신 것이었을까.


"만약 내가 20대 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너와 아들을 못 만났겠지?"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꾸만 엄마를 보지 못하게 하는 눈물에, 울컥함이 자꾸 목에 차 올랐다.


"네 아빠가 그러더라.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럽게 살았어도 우리가 아들, 딸 하나는 참 잘 키웠다고. 엄마도 그래. 한 없이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너네를 생각하면 또 정말 감사해."


"엄마, 나는 엄마 딸인게 정말 좋아."


간신히 꺼낸 말이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한 마디를, 울음을 이겨내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마주보고 앉아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의 갱년기. 엄마는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참 후회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았다. 자꾸만 받쳐 오르는 서러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드라마만 보아도 엄마의 마음이 요동을 친다. 지난 26년간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와 당신의 이름을 잊었다. 비로소 당신의 이름을 찾아 냈을 땐 손을 뻗어도 움켜쥘 수 없는 과거만이 엄마의 이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기분이, 자신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한 없이 엄마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등을 보며 자란 나는, 한 없이 강하기만 했던 엄마를 보고 커온 나는 엄마의 갱년기가 무서웠다. 자꾸만 여려지는 엄마가, 무언가 자꾸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엄마가 안타깝고 겁이 났다.  엄마의 얼굴에, 손에 하나씩 늘어가는 주름만큼 내가 커왔다. 엄마 피부로 드러나는 만큼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았다. 덕선이처럼 엄마께 애교 부리는 딸이 아니었다. 정환이 같은 딸이, 나였다.  그것이 답답했다.



본가에 내려가 있는 동안, 동생과 나는 교대로 엄마를 지켰다. 절대 집에 엄마 혼자 있지 못하게 했다. 단순히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엄마 옆에 꼭 붙어 앉아 말을 걸었다. 인터넷으로, 홈쇼핑 방송으로 물건을 보며 예쁘네 마네 하며 수다를 떨었다. 얼마 전, 어깨와 무릎 관절 시술을 받은 엄마가 추운 날씨에 무리해서 외출할 수 없기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난 26년, 어쩌면 엄마는 잃어버린 26년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것 만큼은 꼭 말하고 싶다. 엄마는 26년간 딸과 아들 두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이제 남은 엄마의 삶, '엄마'가 아닌 '노미정'으로 살며 언제든, 어디든 날아다니다 힘들면 나무에 기대어 쉬면 된다고.



엄마는 몇 해 전부터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셨다. 엄마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놓인 달력 위로 엄마의 절박함이 보였다. 강의 수강을 체크해 놓은 별표 위로 엄마의 열정이, 지난 과거의 미련이 보였다. 왜 그 땐 몰랐을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힘들다는 엄마의 엄살이, 레포트 쓰느라 잠을 못 잤다는 엄마의 투정이 사실은 엄마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음을. 나와 같이 대학생활을 보내던 엄마는 동생의 수능으로 잠시 공부를 내려 놓으셨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엄마가 연필을 들어야 할 때다. 엄마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기억시켜 주기 위해. 엄마 내면에 숨겨진 엄마의 청춘과 열정을 다시 한 번 꺼내기 위해.



엄마와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오는 주말이면 또 엄마를 볼 텐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시간에 쫓겨 차마 하지 못한 말, 그 말을 메신저로 써내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ㅜ엄마가 안쓰러워서도 아니고, 엄마의 힘듦이 느껴져서도 아니었다.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는 엄마의 노력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엄마, 100년을 사는 인이 50대 즈음에 갱년기를 겪는 것은 인생의 절반 쯤에서 무거워진 마음과 생각을 한 번 쯤 덜어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지난 50년간 엄마 마음 깊숙히부터 담겨왔던 고생, 후회, 서러움 다 덜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노미정 인생 2막을 시작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일종의 '쉬는 시간'이라고 해두자.


그러니 엄마, 쉬는 시간을 마음껏 즐기세요.
엄마 먹고 싶은거 열심히 만들어 주는 요리사 아들도 있고, 울 엄마 팔짱끼고 여기저기 같이 쏘다닐 딸도 있잖아. 갱년기, '이때다!'하고 자식들, 남편 부리세요. 엄마 옆에서 나도 같이 갱년기 보낼게.




밥을 먹던 중 엄마가 하신 말이 있다.

"나는 아직도 네가 애기처럼 보이는데, 네 나이 25살에 나는 다 컸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해 12월에 결혼했지."



나는 아직도 '엄마'라는 단어만 보아도 눈물이 나는 어린애인데, 엄마는 내 나이에 결혼을 하셨고 2년이 지나 엄마가 되었다. 난 한 없이 엄마를 닮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엄마 그림자에 근처에도 가지 못 한 철부지였다.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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