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캐리어> 첫 번째, 너와 나의 역사
대학 졸업이 다가오도록 친구와 단 둘이, 혹은 친구들끼리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다. 물론 MT 같은 것은 제외하고. 졸업 문 앞에서 갑자기 친구와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우리 여행가자."라고 말을 건넸던 타이밍에 나와 친구의 지갑 사정이 여유로웠고, 모처럼 둘 다 바쁘지 않았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녀와 나는 나로호급 추진력을 갖고 있었는데, 말이 나온 며칠 후 바로 티켓을 구매했고 전화 통화 1시간으로 모든 일정을 정하고 예산을 책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배낭을 싸기 시작했다.
교양수업을 고르는 취향이 같아서 만난 우리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그것도 입학한지 얼마 안된 3월의 한 교양강의였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그녀와 경제를 공부하는 나는 신기하게도 4개의 교양강의가 겹쳤다. 언론학, 국제정치, 심리학, 연극. 한 수업에서 서로 알은 척 하기도 힘든데 교양 수업시간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느 순간 부터는 서로 알은 체 하기 시작했다. 2학기가 되어서 그녀는 내가 가입한 동아리에 가입했다. 어릴 적 무용을 했던 나와 고등학생 때 댄스 동아리 대표였던 그녀. 우리는 금광 캐듯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바빴고, 그만큼 가까워졌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모든 대학생활 속에 함께했다. 함께 축제 무대에 서고, 함께 시험공부를 했고, 시간이 나면 종종 놀러가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에 나눴던 대화, 그 대화엔 신입생의 패기와 열정이 가득했고, 각자가 그리는 꿈을 풀어 놓으며 '꼭 멋진 여자가 되자'하고 다짐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면서 우린 그 꿈을 실제로 옮겨오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 홍보처 소속의 취재기자로, 그녀는 대학 홍보대사가 됐다. 그녀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같은 기수에서 그녀는 당연 돋보였고, 힘든 홍보대사 일정 속에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여러 공부까지 병행했다. 그녀는 대학 중 내가 만난 그 어떤 선배나 동기보다도 열정적이고 멋있었던 친구였다.
그리고 3학년이 됐을 땐, 우리는 한국을 떠났다. 그녀는 교환학생으로 프랑스로 향했고, 나는 인턴으로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2015년, 이 해에 우린 내가 떠나기 전과 그녀가 떠나기 전, 딱 2번 만났다. 그녀는 내게 "언니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와."했고, 나는 그녀에게 "네가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다 하고 와. 유럽을 통째로 삼켜버려."했다. 그렇게 2년을 각자의 영역에 흠뻑 빠져있다가 2016년, 올해가 되서야 비로소 우린 다시 교정에서 만났다. 신입생의 풋풋함은 가시고 졸업반의 성숙함이 묻어났다.
나는 때때로 너에게 미안해
그래도 우린 여전했다. 서로의 대학생활을 공유한 우린, 언제나 옛 흑역사를 떠올리며 웃었고 불안한 미래를 서로 위로했다. 마치 '정설'처럼 떠도는 말, 대학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은 우리 관게에서 제일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고등학교를 소위 '재수'한 나는 21살에 신입생이 됐고, 생일이 빠른 그녀는 19살에 신입생이 됐다. 2살의 나이차가 무색하게 그녀는 내게 언니 같았고, 나는 마치 동생 같았다. 내 조급한 성격을 가라 앉혀주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항상 그녀였다. 언제든 내가 불안한 속내를 드러낼 때면 그녀는 내게 "언니, 나 빈말 못하는 거 알지? 언니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열심히 지내잖아. 언니는 반드시 잘 되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나는 언니가 잘 해 낼 것을 알아."하고 말했다. 그녀는 모른다. 그 말이, 내게 정말 큰 힘이 됐음을. 나는 내 모든 것을 한 줌도 남김없이 털어 놓을 수 있었다. 때론 이것이 나보다 어린 그녀에게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때로 그녀에게 내 불안과 걱정을 꺼내 놓을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혹시나 내 걱정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히 고마운데 항상 위로하는 말을 얹어주는 그녀에게 '언니다운' 의젓함, 혹은 어른스러움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마, 이런 이야길 하면 그녀는 그럴테다. "언제 언니였어? 그냥 친구지."
그녀는 이런 친구였다. 나이 차이를 무시하고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주는 친구. 언제나 그녀 앞에서 어떤 거짓 없진 '진짜 나'의 상태로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만드는 친구였다.
나는 그런데, 그녀도 과연 내게 그렇게 편히 있을 수 있을까 하며 미안해 진다. 너는 항상 내게 성숙한 언니 같았어서. 내게 필요한 말을 꼭 해주는 그런 언니 같았어서.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
비행기 티켓까지 예매하고 나서야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말레이시아랑 싱가폴에 가고 싶었어?"
"언니가 있었던 곳이니까. 나도 가보고 싶었어. 특히 싱가폴은 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언니가 다녀왔다고 했으니까 언니와 함께 가면 언니가 내게 더 많은 것을 보여 줄 것 같았거든."
나의 흑심을 정확히 찌르는 대답이었다. 내게 왜 그토록 지겹게 있었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거다. 너에게 내가 사랑한 말레이시아를, 내가 감동한 싱가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나만 알고 있던 그 곳의 진가를, 너와 함께 공유하고 추억하며 나의, 그리고 너의 젊음을 기억하고 싶다고. 내 젊음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너여서, 좋다고.
그렇게 우린 지난 4년의 우정을 배낭에 담기로 했다. 남은 기간, 우리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와 열정을 모두 쏟아 이열치열로 여름을 견디고, 여름의 끝자락에 떠난 그곳에서 재충전 하고 오자고. 그곳에서 지친 젊음, 200% 충전시켜 오자고.
그녀와 나의 말레이시아. 그곳에서 우리의 젊음이, 청춘이, 그리고 우리의 우정이 더 크게 피어날 수 있기를. Let us enjoy our youth.
다음엔 프랑스로 가자. 그땐 너의 파리를 내게 보여줘.
그거 알아? 5일 동안의 모든 식단은 이미 결정 돼 있어. 넌, 따라오기만 하면 돼. 이 언니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