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HEE Aug 26. 2016

설렘을 걷고 보면, '여행'은 '불안'과 동일하다

여행,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세상에 설레지 않는 여행이 어디에 있을까. 같은 곳을 여행한다 하더라도 여행은 설렌다. 그리고 불안하다. 길을 잃을까봐, 숙소를 찾지 못할 까봐. 기대한 관광지가 생각보다 별로 일까봐.




우리는 여행이 완벽하길 바란다.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이 되길 바란다. 쓸데없이 SNS가 발달한 탓에 멋있게 걸어 놓을 사진도 몇 장 찍어야 한다. 내 여행 코스는 남들이 따라해 보고 싶은 것이어야 하고.



그래서 여행에서 느끼고 경험할 것들을 모두 정해 놓고 간다. 인터넷을 통해서.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

얼마 전, 집 앞 도서관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열심히 노트에 무언가 써내려 가고 있었다. 일본 여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여행정보를 얻고 있는 중이란다. 일정을 짜고, 관광지나 숙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노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방법, 티켓 가격과 소요 시간, 내려야 할 역 이름을 한자와 히라가나로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관광지의 입장료를 할인 받을 수 있는지, 어느 도시에 가서 어떤 음식을 어디서 먹어야 하는지. 그녀의 모든 여행이 작은 노트 위로 드러났다. 심지어는 위성사진까지 봐가며 루트를 확인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철두철미하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멋쩍은지 웃으며 이야기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잖아요. 왠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기껏 갔는데 맛있는 곳에서 먹지 못하면 아쉬우니까요."



그녀와 반대로 내 말레이폴(Malaysia+Singapore)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에 진득하게 살아왔던 곳이었기에 여유롭게 출국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숙소위치가 낯설어 지하철 노선도만 한 장 출력한 정도. 커피 한 모금 마시고는 책을 집어 들었다. 다시 책을 들었다가, 이내 책을 접고 고민에 빠졌다. 나도 보다 계획적이게 준비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잡념을 버리고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종종 그녀가 내게 와 일본어를 묻곤 했다. '언니 이게 무슨 뜻이에요?', '언니, 그러니까 여기서는 지하철보다 택시가 낫다는 거죠?'. 철두철미는 넘어 그녀는 여행 시뮬레이션을 하는 듯 했다. 그녀는 온 세상 모든 정보가 책으로 담겨 있는 도서관 안에서, 노트북과 책을 옆에 두고 세세한 선택과 결정을 모두 내렸다. 아직 일본엔 입국허가 도장조차 찍히지 않았는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저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였다.



"언니, 둘 째 날에 이 식당을 가려고 하는데요, 메뉴는 같은데 어느 곳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결국 나는 읽던 책을 접고, 가상 일본여행에 빠져들었다.


"글쎄. 그때 상황 봐서 조금 더 가까운 쪽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아?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혹시 몰라서 미리 예약하려고요. 사람 많으면 어떡해요. 여기 여행객들에게 완전 유명한 맛집이래요."



왜였을까.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녀의 준비가 안타깝게 보였던 것은. 그녀가 그렇게 준비에 철두철미 했던 것은, 보다 여행을 완벽하게 즐기겠다는 당찬 마음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모은 돈을 들여 가는 곳인 만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길을 잃어 시간을 낭비하거나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굉장히 맛이 없어 여행의 오점을 남기면 안된다는 부담.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것 : 여행

사람들이 여행을 앞두고 '설렌다'고 이야기하지만, 여행에 설렘을 걷어내면 두려움과 불안이 남는다. 그 불안의 증명이 무한한 '검색'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고, 보다 나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맞는 말이다. 비용을 조금 더 절약할 수 있고, 보다 좋은 위치에 숙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없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어떤 종류의 일이, 혹여 그것이 조금 부정적인 일 일 때 '여행지니까'하고 쿨하게 받아 들일 자신이.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 내던져 지는데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행이니까, 어차피 나는 잘 모르는 곳이니까 조금 헤매도 괜찮지 않을까.



대체로 여행을 가기 전, 이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운다. 여행 가이드북, 여러 블로그들을 들락날락 하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져다 본다. 정보가 많을 수록 레스토랑에 대한, 숙소에 대한, 그리고 어떤 관광지에 대해 실패할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 그런데 조금만 틀어서 보면, 결국 내 여행은 남들이 다녀온 여행을 조각조각 모아 짜집기 한 것이 된다. 모자이크야 말로 그 짜집기의 매우 완벽한 결과물이지만, 그것이 온전히 내 여행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 '정말 최고의 맛집이네요'했던 곳이 내게 최악의 식당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 '다신 이용하지 않을 호텔'이라고 했던 곳이 내겐 더 할 나위 없는 호텔이 될 지도 모른다.



온전한 '내' 여행을 꾸릴 것. 여행을 가는 모든 이가 지닌 최종미션이다. 타인의 정보에 의존해 가기 보다, 나만의 맛집을 찾고, 나만의 명소를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기억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완벽한' 여행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것. 그것이 여행을 '여행 답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쏟아진 비에 온 몸이 젖은 것, 길을 잃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한참이나 길을 헤맨 것. 추천받은 레스토랑이 젓가락질 2 번이 불가능할 정도로 맛이 없어 결국 빵으로 식사를 대체한 것. 그 모든 것들이 여행을 추억하게 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좋았던 기억보다  '멘탈 붕괴'를 만든 사건 사고들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는 거다. 마냥 좋았던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움과 미련을 남긴다. 내 일상이 지루하고 힘들 때 '그 때가 좋았는데'하는 미련을 계속 주는거다. 그런데 '젠장, 이게 뭐야!!'했던 여행은 다시 되돌아 봤을 때 추억과 유쾌함을 남긴다. 힘들 때 언제든 떠올려도 '그땐 진짜 미쳤지ㅋㅋㅋㅋㅋ'하고 웃을 수 있는거다. 내게 여행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검색을 통해 완벽한 여행을 꿈꾼다. 완벽한 숙소와 완벽한 레스토랑. 아니, 어떻게 하던 완벽하지 못할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하고자 애쓴다. 그런데, 어떻게든 완벽할 수 없다면, 그냥 완벽하길 포기하는게 속이 더 편하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친구를 만나며 힘들었던 것은 일본 여행에 대한 내 환상이 깨지는 데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연히 들어간 선술집에 '이랏샤이마세-'하고 인사해주는 사장님과 친해지는 것. 배낭을 메고 지도 하나를 들고 헤매다가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설픈 일본어를 말하니 나보다 더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해 주는 것. 한참을 걷고 돌아다니다가 날이 더워 찾은 카페에서 마신 커피가, 그곳에서 먹은 디저트가 너무나 맛있어 한 참을 카페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  나는 상상하는 것이 많다. 꼭 그 상상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 여행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김민철 작가가 말하길, '여기서 행복할 것'을 줄여 보니 '여행'이라고 했다. 아니, 내게는 앞으로 펼쳐질 여행을 상상하는 '여기서부터 행복한 것'이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검색을 하지 않기로 한 결심을 굳혔다. 다가오는 여행을 상상하는 것은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 보다 10배는 더 설레니까.







#1

2015년의 말레이시아.

언젠가, 한 후배가 '말레이시아는 어땠어요?'하고 물었다. 좋은 점 10가지를 말해준 것 보다 도착한지 사흘만에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모든 카드와 현금을 잃어 고생한 이야기를 더 재밌어했다.

친구에게 울며 돈을 빌린 것, 통장을 한국으로 보내려니 그렇게 물가 싼 말레이시아에서 통장 한 장에 돈을 3만원이나 내야 했던 것. 돈이 없는 동안 거지 깽깽이로 산 것.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 일 다 겪은' 곳이 말레이시아라서,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2

2016년의 싱가포르

친구와 함께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여행길에 올랐다. 싱가포르로 가는 버스 티켓이 모두 매진돼 30분 만에 근처 카페에서 국내선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그 때의 30분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웬걸. 싱가포르에 가니 호텔 보증금을 200달러나 내야 한단다. 그것도 현금으로. 우리는 가진  현금을 모두 탈탈 털어주고, 결국 신용카드로 거지처럼 쓰다가 돌려받은 현금을 환전했다. 젠장.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캐리어를 싸기로 결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