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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Sep 01. 2016

내 남자에 대한 자부심

 "너 같은 연애 하고 싶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굉장히 듣기 좋다. 솔로인 사람들이 부러움 반, 놀림 반으로 말할 때면 "좋게 봐주니, 고맙다"하고 멋쩍게 웃는다. 그런데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길 들으면 뭐라 반응하기가 애매하다. 남의 연애에 훈수를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래, 너 연애 지지리도 못하고 있네"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네 남자친구 같은 사람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다니?"하고 물으면, 나는 반문한다. "아니, 나 같은 여자친구는 어떻게 되는거냐고 물어야 하는 것 아냐?"하고. 상당히 거드름 떤 말이지만, 물론 친한 친구기에 농담으로 던지는 말이다. 사실 여러 질문 중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의 연애는 안정적이고 좋아 보이는데, 왜 내 연애를 이렇게 힘들까요?"하는 것이다. 어떤 대답을 기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딱 한 마디만 한다. "사랑이 있기에 평화가 있을 수 있다는 X소리는 UN이나 하라고 하세요. 전쟁 뒤에 평화가 오는게 연애니까."


솔직히 "비교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비교를 해요?"하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이 상당히 중의적으로 들리는 말이라, 제대로 된 의도로 전달할 자신이 없어 말을 아낀다. 나는 사실 여린 여자다.




이렇게 평생을 서로 사랑해온 노부부는, 과연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렀을까. 감히 상상해 볼 수 없다. 





비교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비교를 합니까. 

연애는 비교할 수 없다. 어떤 커플과도 절대적으로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 연애다. 근본적으로 연애하는 대상이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특히 나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 내가 선택한 남자인데, 그를 누군가와 비교한다는 것은 마치 내가 다른 여자보다 '못한' 남자를 고른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 반대가 되면, 기분은 좀 좋지만. 어쨌거나 남들과 연애를 비교하는 것은 연인과의 관계에 하등  쓸모가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 "누구 남자친구는 이랬대"하고 말하면 그 입을 콩콩 때려주고 싶다. "그 남자랑 네 남자랑 같니?" 하고. 착한 척, 성숙한 척 하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나 또한 언젠가 내 남자친구에게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누구 남자친구가 이랬는데.."하고 입을 뗀 순간 창피함과 후회가 파도같이 밀려들었다. 그 때 남자친구가 한 말이 선명히 기억난다. "그럼 그 남자랑 사겨. 나는 난데, 왜 다른 사람이랑 비교해?" 


맞다. 내 남자친구는 그 자체로 고유명사다.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다. 아니, 꼭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그 사람으로서 자체로 고유하다. 그러니 누군가와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어떤 '연애비법'을 다룬 모든 글에서 자신의 연애를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내가 당신에게 먼저 프로포즈 한 것은, 당신을 혹시라도 뺏길까봐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나는 수 천번, 수 만번의 고민 끝에 당신을 선택했다. 





당신과 연애하기 위해 <손자병법>을 읽었다

아버지조차 나에게 '의외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손자병법>을 읽을 때다. <손자병법>과 <북학의>를 처음 접하게 한 것은 아버지였으나 그 뒤로 계속 꺼내 읽는 것을 보니 아버지도 신기하셨던 모양이다. <손자병법>의 열렬한 독자로서, 나는 손자가 이야기한 모든 병법을 인생사에 대입하는 '변태스러운' 습관이 있다. 연애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애는 전쟁과 같아서, 내 남자친구는 단순한 처세술로는 감당이 안되는 남자라 병법으로 다스려야 해서 꺼내 읽었다. 



손자병법의 첫 장 '시계'는 전쟁(=연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병자, 국지대사. 사생지지, 존망지도, 불가불찰야. 고경지이오사, 교지이칠계, 이색기정]


'전쟁은 나라의 중대사다. 백성들의 생사와 나라의 존망을 달리할 일이니 신중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섯가지 사항을 헤아리고 일곱가지 항목을 비교하여 아군과 적군의 실정부터 정확히 파악해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계'는 전쟁에 대해 맨 처음 세우는 계획이다. 즉, 전쟁에 대한 총체적인 전략인 셈이다. 위의 문장 속 전쟁에 '연애'를, 백성과 나라, 아군에 '나'를 그리고 적군에 '남자'를 대입하면 더할나위 없는 연애 전략이 된다. 그러니까, '연애는 나의 중대사다. 나의 생사와 나의 존망을 달리할 일이니 신중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섯가지 사항을 헤아리고 일곱가지 항목을 비교하여 나와 남자의 실정부터 정확히 파악해 두어야 한다'가 된다.


사실 연애가 내 생사와 존망까지 결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이라는 것은 연애가 끝나기 전엔 알 수가 없다. 전쟁처럼 끝나 봐야 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결정함에 있어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보수적이고, 누구보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까다롭게 연애를 시작한다. 손자는 전쟁에 5가지 사항을 헤아리고 7가지 항목을 비교하라고 했던가. [연애=전쟁]이라는 등식을 맹신하나, 비교는 해선 안 될 것으로 생각하기에 5가지 항목만 헤아렸다. 양심에 솔직해 지자면, 5가지 이상 됐다.  


손자가 말하는 5가지는 도, 천, 지, 장, 법이다. 순서대로 군주와 백성이 한 마음인지, 시간의 변화가 전쟁을 치를 시기에 적합한 지, 전쟁을 치룰 지역이 대한 분석, 장수의 역량, 그리고 군대 편제와 명령 계통같은 체계다. 내가 처음 이 비유를 친구에게 이야기 했을 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젠 별 미친x을 다 보겠네." 하고. 연애라고 해서 전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연애를 시작하기 앞서 누구나 그렇듯 (1) 상대와 내가 서로 한 마음인지 (2) 나와 상대의 상황이 연애를 해도 좋을 지 (3) 단거리 연애인지 장거리 연애인지 (4) 상대는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5) 나와 상대의 연애관은 과연 건강하고 건전한지 따지기 때문에.


위의 다섯가지엔 순서가 없다. 그러나 각자마다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인데, 내게는 4번과 5번이 가장 중요했다. 상대방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인 것'과 내 연애관이 '상대방의 연애관과 충돌하지 않아야' 했다. 이 두 가지는 내가 가졌던 여러 기준 중에서 가장 까다로웠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지 않으면, 그 시간동안 제법 깊은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남자친구를 고르는 방법은 마치 조선시대 때 중전을 간택하는 것과 흡사했다. 이 이야길 두고 "결혼도 아니고 연애에 뭘 그리 예민하게 구니?"하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연애하고 결혼하는거다. '여러 남자 만나보라'는 말도 결국엔 '결혼하기 좋은 남자'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란 소리다. 그 안목이라는 것, 처음부터 공들이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안목을 기른답 치고 여러 남자를 만나면서 감정 에너지, 혹은 기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딱히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어떤 남자던 간에 그 남자와 연애라는 관계를 맺는 순간 내 인생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인데, 내 인생이 소위 말하는 '똥차' 같은 남자와 공유되는 것은 싫다. 그렇다고 벤츠나 롤스로이스 혹은 벤틀리 같은 남자들 하고'만' 공유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남자를 차의 등급으로 비유하는 것도 별로다(내가 차로 비유된다면 어떤 등급에 있을지 겁이 나기도 하다). 그저 세상엔 '나와 잘 맞는 남자'와 '나와 잘 맞지 않는 남자'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나와 잘 맞는 남자, 그것도 나와 '제일 잘' 맞아서 시너지까지 낼 남자를 가려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당신은 정말 자랑스럽다. 내 안목을 믿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그런 나를 더 없이 사랑해 주기에 나는 당신에게 최고의 여자가 되고 싶다. 




내가 '선택한' 남자라는 자부심

그렇게 남자를 이것 저것 재고 만나면 그 남자에 대한 일종의 '애착'이 더 생긴다. 신중히 골랐기 때문에 그 남자가 더욱 소중해 진다. 아니, 자부심이다. 이 남자보다 더 좋은 남자는 없다는 자부심. 그것이 생기면 연애를 쉽게 끝내려는 유혹에 시달리지 않는다. 별 시덥지도 않은 이유들이 연애를 종결짓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닌데'하는 이유로 이별을 고민하게 된다면, 애초에 그 남자를 선택한 것도 그다지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 한 명 한 명 참 많이 '쟀다'. 참 허세 가득한 말이다. 그래봤자 성인이 되고 나서 현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에 사겼던 남자라곤 1명 밖에 없다. 물론 내게 들이 댄 남자도 몇 없다. 외모나 몸매도 딱히 보잘 것 없었고, 성격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중학교 동창이 내게 "넌 우리집 개와 참 많이 닮았어." 할 정도니. 어쨌거나 내가 내 남자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참 까다로웠다. 그 기준들을 일일히 늘어 놓고 싶진 않지만 여러모로 참 많이 쟀다.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그 조건들이 외모나 재력 따위의 것들은 아니었다. 남자의 외모를 따지기엔 내 외모가 미안했고, 그의 재력을 따지기엔 내가 가진 것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것 저것 재는 것이 많았던 까닭은, 앞뒤 가리지 않고, 어떤 것도 재지 않고 감정에만 충실하기엔 그 남자와 공유하게 될 인생의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20대, 시행착오가 낭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했던가.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남자와 사귀고 난 후 내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게 될 지, 최악의 경우에 '남성 혐오증'같은 것이라도 생기게 될 지 누가 아는가. 혹시 모른다. 엄한 남자에게 코 꿰여 벌써 유부녀가 됐을 지도. 극단적인 경우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마냥 낭만적으로 생각하기엔 내가 내 인생을 너무 사랑했다. 단 한 번의 시행착오라도 줄이고 싶었다. 


인생에 단 한 명의 남자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마지막 남자가 결정되는 그 순간까지, 내가 만나온 남자들이 어쩌면 나의 수준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선택한 남자는 그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남자다. 그러니 그 남자는 그 시점에서 내가 가졌던 안목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인고의 시간을 겪은 끝에, 험난한 '자체' 간택과정을 치른 끝에 만난 남자인데 어떻게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까. 최고의 남자를 선택하니, 그 남자에게도 최고의 여자가 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 신중히 선택했는데, 당신에게도 내가 까다롭게 선택된 여자이길 바란다는 마음.  

"당신은 내 선택을 받은 남자야. 감사하게 여겨." 따위의 건방을 떨 수가 없다. 만약 그런 같잖은 건방을 떨었다면, 내가 어떤 남자를 선택한다 한 들 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남자는 나를 만났던 그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했을거다. 그렇다고 남자를 '떠 받들어 모셔라'하는 말도 아니다. 연애 관계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받들어 모신다고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럴 성격도 못되고. 



내 남자에 대한 자부심

본인의 연애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친구들의 공통점이 있다. 남자친구의 어떤 성격이나 습관, 취향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이다. 물론 서로 다름을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며 맞춰가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나 또한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이 그 남자를 선택할 그 시점에 그 남자는 그 자체로 최고의 남자가 아니었느냐고. 그 친구의 안목이나 선택 기준을 탓하라는 건방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 할 어떠한 권리도 없다. 그렇다고 '그땐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한다면 나도 딱히 할 말은 없다. 


연애를 하다 보면 당연히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진다. 아쉽게도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좋은 점 보다는 아쉬운 점, 안좋은 점이 더 눈에 들어 오게 된다. 그것을 감당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서로 맞춰나가며 극복할 수도 있고, 혹은 '이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이다'하고 엄청난 이해력으로 포용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 남자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엄청난 힘이 됐다.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다 보면 '그를 바꾸겠다'는 마음보다 '보다 더 멋진 남자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마음의 변화는 말하는 방식 또한 변화시킨다. 


"오빠의 이런 점이 나를 좀 속상하게 하는 것 같아. 나는 오빠에게 좋은 여자친구가 되고 싶은데, 이런 것들이 나를 많이 힘들게 해."


이렇게 말하는 여자친구에게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일 남자(혹은 새끼)는 없다. 적어도 "그래? 나는 이래서 이런 말을 한 것이었어." 혹은 "나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거야" 하는 반응이 나온다. 그럼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싸움이 아니라. 여기서 로맨스 소설에서 본 것을 덧붙이자면(ㅋㅋ) "내게 사과해 줘서(혹은), 설명해 줘서 고마워. 나도 앞으로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게."하고 대화를 끝내는 것이다. 소설이라고 무시하지 말라. 내가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남자친구는 그 다음 날 내게 8번 전화했다. 



남자친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 남자친구가 최고야!'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남자'라는 자부심. 그 자부심에서 관계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다.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진다. 남자친구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남자친구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지금 내 인생을 공유하고 있는 이 남자를 훗날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은 최고의 남자로 채워져야 한다. 





"오빠, 오빠도 날 신중히 선택했어?"

"그럼."

"가끔 후회하는 것 같던데?"

"종종."


나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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