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낫고 성숙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독서에 관한 글을 계속 올리다 보니 너무 단조롭고 딱딱한 거 같아서 오늘은 부끄럽지만 나 개인의 경험담이 담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늘 그렇지만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것보다 가끔씩은 이렇게 어떤 방법이든지 풀어내는 과정이 또한 필요한 법이다.
초등학교 시절, 병원에서 오랫동안 지내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입원해 있는 곳이 가톨릭계 병원인지라 로비에는 항상 성모상이 있었고 수녀님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북(book)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시던 분이었는데 병원 생활이 너무 적막하고 심심했던지라 거기에 있는 어린이용 도서를 몇 권 빌려 열심히 읽곤 하였었다. 여러 권을 보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책은 몇 번씩이나 정독하곤 하였었다.
집에 와서도 나의 책 사랑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에는 어린이용 위인전과 문학전집이 있었고 같은 동네 몇 발자국밖에 안 떨어진 큰집에도 만화로 된 역사책 같은 것이 있어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른 채 그야말로 책 속에 파묻혀 지내곤 하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서 클래식, 그중에서도 바로크 음악에 입문하여 좋아하게 되자 나는 17세기 혹은 18세기 서양 역사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 거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되어서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결심을 하자 음악을 제외한 다른 책들은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음악에 관한 책, 영화, 라디오 방송, 티비 프로 등은 사족을 못 썼는데 반면 정치, 경제, 과학 등의 다른 분야의 책은 표기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으며, 펼치면 그야말로 수면제나 다름없었다. 이 현상은 학교 공부로까지 이어져 나는 그야말로 영어 수학밖에 모르던 바보였다. (그나마 이 둘은 할 줄 알아서 중상위권은 유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심각한 편식은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다.
내성적이고 낯가림도 심하고 학교 축제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틈만 나면 학교 도서관에 처박혀 그야말로 도서관 놀이에 열중을 하곤 하였다. 위의 사진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책도 전공서적이나 클래식 음악에 관련된 책만 읽었고 아주 예외적으로 학창 시절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람세스를 즐겨 읽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 지금은 신관이 중축되어 존재하지 않을 법한 지하 '보존자료실'인데 책장 모서리의 래버(?)를 돌리면 책장이 스르륵 움직이고 그 안에는 6, 70년대에 출간되었을 법한 오래되고 누렇게 변색된 악보들이 가득했다. 물론 학교 공부를 위하여 다른 깨끗한 새 악보들도 많이 보았지만 이곳에서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은 그야말로 고고학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무튼 무사히 졸업하고 미국에 왔는데 한국에서 짐 부치는 과정 속에서 더 안 볼 책은 남주고 진짜 볼 건 짐 잘 싸고 그렇게 해서 내 손아귀에 들어온 책이 스무 권 정도에 달했다. 그리고 이후 미국에서 한국 책 살 수 있는 사이트도 알아내어 조금씩 내 방의 자그마한 책장을 채워나가는 중이다. 이 중에서 가장 골칫덩어리가 있는데 그건 바로 한국문학전집. 난 어릴 때 강제로 책 장수한데 속아서 구입한 걸로 기억하는데 엄마는 외숙모한테서 받은 거란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일제나 한국전쟁 시대에 출간된 짤막짤막한 한국소설들임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내 취향과는 전혀 맛지 않고 별로 정이 가지 않는다. 이건 나보다 책을 훨씬 더 좋아하고 잘 읽는 내 동생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무튼 이 전집을 제외한 다른 책들은 가까이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브런치를 통하여 하나씩 차근차근 기록해나가는 중이다. 다른 식구들은 짐을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사실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될지 아니면 훗날 독립해서 혼자 살면서 언젠가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바로 책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전보다 사물이나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악에만 꽉 막혀있던 내가 책과 공부를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또 이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비록 늦은 나이에 독서라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되어 여기에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오늘 하루도 책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아무쪼록 좋은 습관을 계속 잘 유지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