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것도 좋을 듯하다.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으로 세상은 180도 바뀌었다. 과거 직장이든 학교이든 사람 대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시 여겼다면 지금 세상은 IT 기기가 없으면 소통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컴퓨터를 몰랐을 때는 손글씨로 일기도 참 많이 쓰고 악보도 자필로 그리곤 하였다. 명필은 아니었고 교수님으로부터 악보 못 그린다는 핀잔(?)도 받았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생존수단이었기에 실력은 좀 부족해도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거 같다.
이러한 생활도 잠시,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할 수 있는 영역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고 아날로그 감성은 그렇게 조금씩 무디어져만 갔다. 하지만 완전히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기장과 필사 노트를 써왔고 재작년부터인가는 플래너도 쓰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그전만큼 '간절함'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클래식에 입문하던 과거 학창 시절에는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공테이프로 녹음하여 늘어날 때까지 듣는다던가, 상품권 받으면 음반 가게에 가서 또 좋아하는 음반을 고른다던가 그랬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음반을 구입하는 걸 꺼려하게 되었고(사실 가장 큰 이유는 놓아둘 공간이 없어서) 대부분을 유튜브나 음악 재생 전문 앱에서 찾아서 듣곤 한다.
사실 자필로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해 필기하거나 가사 번역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귀차니즘 등의 이유와 함께 나의 손글씨에도 변화가 생겼고, 무엇보다도 멀쩡한 컴퓨터를 놔두고 그걸 한다는 거 자체가 좀 한심스럽게 느껴져서 워드를 통한 문서 작성으로 모두 대체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기계도 소모품인지라 이렇게 편리하게 쓰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한 마음이 공존한다. 이미 기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로 홍역을 치른 적이 몇 번 있었던지라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다. 그래서 수시로 백업해두는 습관이 생겼고 중요한 것 역시 바로 프린트 아웃하여 보관한다.
이쯤 되니 옛날 시절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앞서 말했던 간절함 속에서 찾아왔던 나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어주었던 설렘.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떠한 새로운 것을 또 배우게 될까, 나를 한없이 호기심 대장으로 만든 수많은 일들 속에서 나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록을 해둠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것도, 여태까지 이곳에 써왔던 글들도 모두 기록의 일종인데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나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투자하였다면 요즘 시대에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함께 소통하는 장(場)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단순히 옛날이 좋았고 지금이 나쁘다가 아니라 어느 시대를 살든 이 둘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명한(smart)한 삶을 살아나가는 바람직한 인류의 모습이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본다.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책에서 나는 특유의 종이 냄새가 좋은 날씨.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아야겠다.
이상 Barroco의 주절주절 대책 없는 넋두리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