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바로크 후기 작곡가
1671년 7월 8일에 베네치아의 종이 상인인 안토니오 알비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이올린과 성악을 배워 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와 성악가로 활동할 기회가 있었으나 연주자 길드(guild)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이내 작곡가의 길로 전향하게 된다. 1694년에 오페라와 12개의 트리오 소나타로 데뷔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사실 1709년 아버지의 죽음 전까지는 음악을 생계 수단이 아닌 하나의 희락으로 간주하였고 이러한 자기 자신을 딜렌탄테 베네토(Dilettante Veneto)라 칭하며 돈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해나갔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1700년에는 만투아의 공작인 카를로스 4세에게 바이올리니스트로 고용되어 작품 2를 그에게 헌정하였고 이듬해에는 작품 3을 메디치의 코시모 3세에게 또한 헌정하였다.
1705년 34세인 알비노니는 오페라 가수였던 마르게리타 라이몬디(Margherita Raimondi)와 결혼하였다. 당시 결혼식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음악감독이었던 안토니오 비피(Antonino Biff)가 증인으로 참석하였고 둘은 이후 절친한 친구사이로 지내게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당시 대부분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그는 교회나 궁정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음악을 독립적으로 작곡할 수 있는 선택권을 또한 가졌다. 알비노니는 81개의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주장하였는데 진위가 어떻든 유럽 곳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1740년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유작이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고 소문이 떠돌았지만 그 당시 그는 살아있었고 1751년이 돼서야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알비노니의 작품들 중 생전에 출판된 건 기악곡 아홉 작품뿐이다. 앞서 언급한 오페라 악보는 대부분 분실되고 제목만 겨우 확인된 건 50여 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왜 그가 살아생전 오페라 작곡가로서 이름을 날렸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길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비노니 하면 사실 이탈리아에서 오보에 협주곡을 가장 먼저 작곡한 사람으로 기억되겠다. 시간이 없어서 그의 작품들을 들어볼 기회는 없었으나 여럿 남아있는 증언들을 토대로 결론을 내려보자면 동시대 같은 무대에서 활동했던 비발디와 거의 쌍벽이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알비노니 하면 사실 우리는 아다지오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아래 나무위키 항목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 이미지 출처: Wikipedia
잠깐 들었는데 감미롭고 따스하고 편안한 선율이 너무 좋아 공유해 본다. https://youtu.be/LjgndGuy77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