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 런던살이 둘째 날의 하루

by Daria


비빔밥으로 시작하는 둘째 날 아침이다.




오늘은 정말 정말 설레는 날이다. 왜냐하면 바로 내셔널갤러리의 반고흐 특별전시를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화가를 꼽자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Vincent Van Gogh는 각별히 사랑하는 화가들 중 하나로, 나의 한국 집에 걸어둔 이미테이션 작품들 중 무려 세 점이 고흐의 작품일 정도이다.


이번 고흐 특별전시는 세계 각지의 미술관으로부터 빌려온 고흐의 유명 작품들로 매우 알차게 채워져 있어 고흐의 그림을 사랑하는 애호가라면, 그리고 방문 여건만 된다면 절대 놓쳐선 안 될 좋은 기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전 세계에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이 전시는 예매 과정도 매우 치열했다. 나 역시 이 전시를 예매하기 위해 티켓 오픈 당일 노트북 앞에서 하루종일 대기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침실 밖에 펼쳐진 하늘의 색깔이며 산뜻한 공기가 매우 좋다. 쾌청한 날씨 속 산책과 함께 내셔널갤러리로 향해 본다.




집으로부터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트라팔가 광장 및 소호구역으로 향하는 길엔 항상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나치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집을 일단 나서기만 하면 어딜 걷든 그림 같은 런던 풍경이 펼쳐진다. 트라팔가 광장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정도 소요되지만 이러한 풍경을 즐기다 보면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솜사탕처럼 엷은 하늘색을 배경 삼아 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빅벤, 이 모든 풍경이 무척이나 조화롭고 사랑스럽다.






기분 좋게 산책하다 보니 어느새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기념탑이 보인다. 내가 사랑한 내셔널갤러리를 이렇게 다시 마주하니 꼭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라는 특별한 이벤트와 함께 만나는 것이니 그 기쁨이 더욱 배가되는 기분이다.


내셔널 갤러리, 트라팔가광장 분수



빈센트 반 고흐 전시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표를 구매하였음에도 그렇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The Lover(밀리에 중위의 초상)>(1888)이 보인다. 빈센트 반 고흐 특유의 색감과 붓터치가 강하게 드러나는 그림이며, 그뿐만 아니라 초상화 속 인물의 제복차림 때문인지 마치 만화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The Lover (Portrait of Lieutenant Milliet)



이 초상화를 시작으로 하여 각종 풍경화, 초상화 그리고 정물화들이 가득했으며, 그중에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이를테면 <Rose>나 <Starry Night>, <Yellow house>, <Self Portrait>, <Oleanders>, <Sunflowers>…. 오… 추리고 추려 내어도 막상 이름을 나열하자니 끝이 없는 것 같아 그만해야겠다.


Rose
Starry Night Over the Rhône
The Yello House
Self-Portrait
Oleanders
Sunflowers
Sunflowers, Portrait of Madame Roulin
Bedroom in Arles
Wheat Field with Cypresses



고흐의 작품들로 가득한 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공간에서 지금 나가면 다시는 올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도 슬프게 했지만 전시장 안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괜히 뭉그적거리며 더 머물러있기도 불편하여 이쯤 보면 됐다 하고 나왔다.


Art Shop



내셔널 갤러리와 인접한 소호 구역.


연극인지 뮤지컬인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꼭 봐야지!



전시장을 빠져나와 근처 소호의 유명한 티룸 ‘Maison Bertaux’로 향했다. 워낙 유명한 맛집이라 대기 시간이 발생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운이 좋게도 바로 테이블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카운터 앞에는 먹음직스러운 스콘이 가득 올려져 있었고, 바로 옆 진열장에는 온갖 종류의 케이크들이 귀여운 조명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곧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하므로 티룸의 근본 메뉴인 홍차와 스콘을 주문했다.





약한 온기가 느껴지는 스콘이 쨈 그리고 클로티드크림과 함께 나왔다. 클로티드 크림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데다가 맛도 좋았다. 쨈 역시 싸구려 공산품 맛이 아니었고 클로티드 크림과 매우 조화로운 맛을 이루었다. 더욱이 심지어 차도 맛있었다. 스트레이트티보다는 밀크티를 선호하는 편이라 우유를 부었는데도 차 향이 사라지지 않고 향긋하게 살아남았다.




슬쩍 둘러봐도 낡고 오래된 인테리어가 이 티룸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무려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빈티지 티룸에서 맛있는 스콘과 차를 먹으며 친구와 함께 러블리한 시간을 보낸 뒤 저녁을 먹기 위해 런던의 인기 음식점인 ‘Dishoom’으로 향했다.




‘Dishoom’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런던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맛집으로 저녁시간대에는 줄 서서 기다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런던의 겨울은 한국만큼 춥지 않기도 하고, 야외에도 난로를 틀어줘서 춥긴 하지만 적당히 기다릴 만했다.



기다리는 동안 마시라고 준 짜이티라떼.



약 45분쯤 기다린 후에야 드디어 테이블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필수주문 유명 메뉴인 Chicken Ruby와 직원에게 추천받은 House Black Daal, Chef’s Special, 그리고 내가 먹고 싶어서 고른 Mutton Pepper Fry를 추가 난, 밥과 함께 주문했다. 세 명이서 메인 메뉴를 네 개 주문한 셈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Dishoom을 비롯한 인도요리 음식점에서는 메인 디쉬 한 두 개에 난을 여럿 주문해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메인 메뉴를 네 개나 주문한 우리는 음식을 남긴 것은 물론이고 결제 금액이 20만 원 가까이 나오는 경험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뭐 맛있게 먹었고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으니 그걸로 됐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한국에서의 환율을 고려했을 때) 한국인 여행객들이 굳이 런던까지 와서 Dishoom을 꼭 방문할 가치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이 정도의 만족감은 한국 외식 환경에서도 충분히 경험 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용 면에서도 영국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다.


우리가 주문한 것들.



친구들과 소호에서 집까지 함께 걸어가는 동안 왁자지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린 술이라곤 단 한 방울도 마신 적이 없는데 마치 얼근하게 취한 사람들처럼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어대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하 호호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낸 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수다 떨다가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었다.

집 가는 길에 본 빅벤.



런던에서의 두 번째 날을 매우 알차게 채웠다. 내가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귀중한 특별전에 다녀왔으며, 런던의 유명한 티룸 ‘메종 베르토’와 유명한 레스토랑 ‘디슘’까지 도장 깨고 왔다. 매일매일이 오늘처럼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이지만 적어도 오늘의 추억을 오래오래 품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런던에서의 낭만 가득한 두 번째 밤이 저문다.


Good night!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 런던살이 첫날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