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아침. 오늘도 날씨가 제법 화창하니 그야말로 lovely다!
매운 돼지고기 요리와 계란국으로 든든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한국에서는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이상 도통 한식을 먹지도 않을뿐더러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머나먼 타국에서 먹는 한식은 이토록 꿀맛일 수가 없다.
영국의 우유는 한국보다 맛있어서 이곳에서는 항상 블랙커피보다 라테를 마시게 된다. 포근포근 따뜻한 카페라테와 함께 오전 찰나의 여유를 느껴 본다.
한국에서는 몇 년째 개인강습으로 필라테스를 해 오고 있는데 런던에서 필라테스 PT를 받기엔 비용 부담이 너무 커 차선책으로 Gym(헬스장)을 다니기로 했다. 오늘은 앞으로의 런던 생활 동안 다닐 헬스장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날이다. 가성비가 나쁘지 않아 런던 사람들도 애용한다는 프랜차이즈 헬스장이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여 일찍이 운동 갈 채비를 마치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The English Tea Bus'라는 것을 발견하고 신기하여 사진을 찍어 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저 버스 안에서 영국식 Afternoon Tea Time을 즐기는 것 같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뜨거운 차를 마신다는 것이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지만 런던 거리를 거닐다 보면 제법 심심찮게 이 버스가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적잖은 사람들이 이 버스를 이용하는가 보다.
어딜 가든, 어딜 걷든 항상 예쁜 거리 풍경 덕분에 가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드디어 헬스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멤버 등록 후 PIN 번호를 발급받아 매 입장 시에 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생소하면서도 왠지 좀 멋있어 보이는 시스템이다.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어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유산소 구역만 조심스레 찍어 보았다. 런던의 가성비 헬스장인 만큼, 최신식 고급 운동기구들은 없지만 전문 운동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운동하는 데 필요한 기구들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 나의 경우 헬스는 문외한인 왕초보인지라 이 정도 기구면 충분하게 느껴졌다. 여자용 탈의실 거울 앞에서 아무도 없을 때 사진도 한 장 남겼다. 나의 첫 런던 Gym 인증샷!
런던에 올 때 옷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계획하여 가져왔더니 결국 추가 옷을 구입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이곳에서 값비싼 옷은 살 여력도, 이유도 없어 영국의 가성비 의류 매장으로 유명한 'Primark'으로 향했다. 런던에서는 이곳이 굉장히 저렴한 옷을 판매한다고 취급받고 있지만 사실 현재 한국 환율을 고려하면 명성(?)만큼 아주 저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할인 상품 위주로 찾아다니며 편하게 막 입을 수 있는 옷들을 골라 집었다. 오랫동안 진열되어 있었던 이월 상품인지 천에는 보풀이 우르르 일어나 있었지만 어차피 공용 세탁기에 막 돌려질 신세인 옷이니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호에서 무사히 옷 구입을 마치고 전부터 점찍어뒀던 'Buns from home'에 방문했다. 이곳은 달콤한 페이스트리(pastry)를 판매하는 제과점으로, 상호명만 보면 bun(부드러운 둥근 빵)을 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나몬 롤과 비슷한 부류의 페이스트리만을 판매하고 있다. 지나가다 보면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런던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 있는 베이커리인 것 같았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과 가격에 대한 부담감 사이에서 몹시 갈등하던 중 때마침 매장 내 간이 의자에 한 무리의 가족이 이 베이커리에서 산 빵을 나눠 먹고 있기에 작은 목소리로 맛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빵은 정말 맛있으며, 다만 시나몬은 차갑게 식었고 아몬드가 따뜻하니 가장 추천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믿고 아몬드를 주문했다. 빵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촉촉하고 달콤하고 맛있어서 정말이지 몸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얼마나 버터와 설탕을 많이 넣었으면 이런 맛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소름 끼쳤다.
오늘 목표했던 과업을 모두 수행했다. 헬스장 가기 그리고 옷 사기. 과업이라고 칭하기 민망하지만 어쨌든 적어도 내겐 중요했던 임무들을 마쳤다. 소호에서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스름이 젖어드는 한가운데 빅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모양이 꼭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등대와 같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나의 경우 빅벤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집이 가까워져오고 있다는 표식과도 같아 등대에의 비유가 정말 적절하다.
런던에 온 후 한 번도 과일을 먹지 못한 것 같아 과일을 사러 집 근처 마트 'Sainsbury's'를 방문했다. 런던의 외식 비용은 충격적일 만큼 높은데 식료품점에서 직접 장을 보는 비용은 꽤 합리적이다. 게다가 종류는 또 어찌나 많은지! 사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참느라 혼났다. 나는 사과와 피넛버터, 그리고 글루텐프리 식빵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한국에선 글루텐프리 빵을 사려면 그러한 빵을 만드는 극소수의 전문점을 찾아가야만 하고 가격도 거의 두 세배 비싼데, 여기선 동네 수퍼마켓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집에 돌아와 곧장 사과 하나를 먹어 보았는데 정말 달콤 새콤하고 맛있었다. 그냥 달기만 한 것도, 마냥 새콤하기만 한 것도 아닌, 새콤달콤한 맛 좋은 사과였다. 한국의 높은 과일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구매인 것 같다.
저녁으로 라면, 떡볶이, 치킨 삼합 그리고 화이트와인까지! 아주 호사스러운 식사를 했다. 런던에 와서 굶기는커녕 어째 포식만 하고 있는 것 같다. 금전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 강제 다이어트가 될 거라고 기대한 것이 무색하도록 너무나 잘 먹고 다니고 있다.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수다 속에 나흘째 밤도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