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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런던살이 8일차, 인생 첫 펍에 방문하다

by Daria



런던에서의 여덟 번째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려 축축한 공기가 콧속으로 전해지는 기분이다.


아침식사로 지*바 스타일의 매운 양념 숯불 닭요리와 밥을 먹었다.




커피와 함께 레몬케이크, 그리고 카페라테와 피넛버터 샌드위치로 채워지는, 한시라도 위장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 나의 오전이 흘러간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정오쯤 되니 어느새 비가 그쳐 구름 틈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계속 비가 왔다면 집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금세 날씨가 화창해졌기에 집 근처의 테이트브리튼을 향해 길을 나서 보았다.




남들은 런던이 비도 많이 오고 우중충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내 생각에 런던의 날씨는 너무나도 러블리하고 매력적이다. 비가 오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오래, 많이 퍼붓듯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추적추적 내리다가 어느샌가 그치고 갑자기 선물처럼 햇살이 내리쬔다. 은빛 구름 틈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짠 비칠 때 풍경이란 참으로 예쁘고 아늑하기 그지없다.




왜 이렇게 늘 거리가 예쁠까 생각해 보니 문득 런던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양식의 고층 아파트가 도통 보이질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런던살이 1일차에 방문했다가 시차 적응 문제로 감상하지 못하고 도로 되돌아 나가야 했던 Tate Britain (테이트 브리튼)에 다시 왔다. 오늘은 컨디션도 좋고, 몹시 기대된다.




테이트브리튼에도 소장 중인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이런 귀한 작품들을 보는 것이 무료라니! 역시 런던은 미술을 즐기기에 참 좋은 도시이다.




Francis Bacon(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은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물론이고 감상자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그의 작품들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작품을 느껴 보았다.


Francis Bacon의 작품들.


Henry Moore의 작품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의 작품들도 매우 많이 만나볼 수 있다. 테이트 브리튼의 장점은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도 윌리엄 터너의 작품들을 다채롭게 실컷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특장점으로 꼽고 싶다.






















이 그림은 정말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보고 나서 걸음을 옮긴 뒤에도 다시 찾아와 또 보기를 반복했을 정도이다.




강렬한 색상으로 표현하는 그림의 심상이 매우 압권이다.




일부 몇 점만 찍었을 뿐인데도 터너의 작품들이 매우 많다. 뿐만 아니라 John Constable(존 컨스터블)의 작품들도 많고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역시 많으니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테이트 브리튼을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테이트 브리튼의 소장품들은 시대와 화풍에 있어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확실히 세계대전기 시기에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이 배출된 것 같다.




거울을 소재로 한 작품 공간이 있어 지나가다가 내 모습도 한 장 찍었다.




아트샵 쇼핑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사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지만 이제 겨우 런던 온 지 일주일쯤 지났고 아직 한창 읽고 있는 중인 책이 있어서 일단 책 구입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참고로 런던 내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책들의 컬렉션은 모두 다 비슷비슷하는 것이 경험상 내린 결론이다.




뮤지엄에 들어올 당시에 출입구에서 보안요원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이후 그를 또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내게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였고 대화가 점점 길어지자 아래층의 카페테리아 쪽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에서 그와 약 1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번호는커녕 메신저 아이디도 안 알려주었겠지만 이 전화번호는 어차피 유효기간이 한 달뿐인 임시 번호라서 별 거리낌 없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그는 이 날 이후로 메시지를 통해 노골적으로 내게 호감을 드러냈고, 그저 친구 관계만을 원했던 나는 그의 감정 표현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차단해 버렸다.




나가는 길 쪽에 설치미술 작품이 하나 놓여 있어 영상으로 담아 두었다.




계단의 벽화마저도 예술로 가득한 이곳 테이트브리튼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미술관이었고 런던을 여행하는 누구에게라도 꼭 추천하고 싶다. 대영박물관처럼 사람들로 북적북적 미어터질 것 같은 곳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지하게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이 경우에 따라선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들어올 때는 환한 낮이었는데 나오니 어느덧 깜깜한 저녁이 되어있다.




오늘은 계획했던 대로 내 인생 첫 펍 방문의 날이다! 때마침 집 앞에 펍이 하나 있어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이곳의 기네스 생맥주가 맛있다는 추천을 전해받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네스를 주문했다. 사실 난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맥주는 어쩜 정말 맛있다!




사람이 정말 많아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 시끌시끌하니 괜히 흥이 나는 기분이다.




런던에 머무르는 동안 언젠가 한 번은 꼭 피시 앤 칩스를 먹어볼 생각이었는데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아무튼 피시 앤 칩스도 주문했는데 항간에 퍼져있는 소문 때문에 기대치가 낮아서 그런가 생각보다 맛이 훨씬 괜찮았다. 영국에서 먹는 감자요리는 웬만하면 다 맛있는 것 같다. 감자튀김도 정말 맛있었고 생선튀김도, 완두콩(?)도 정말 맛있었다.




이 펍은 주로 퇴근 후 직장인들이 동료와 함께 무리 지어 방문하는 곳이라 각자 무리들끼리만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펍에서 친구를 한 명 사귀어 보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실패하고야 말았다. 다음에는 좀 더 번화가 쪽의 펍을 방문해 봐야겠다.




집에 돌아와 사과를 먹고 조금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템즈강변으로 밤 산책을 나섰다.




다리 위에서 분홍빛 런던아이를 배경 삼아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너무너무 춥고 피곤하여 몹시 힘들었다.




찬 바람맞으며 산책하고 돌아와 언 몸을 녹이기 위하여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설탕을 조금 넣어 마셨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니 몸속에 훈훈한 온기가 서서히 퍼지는 듯하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고요한 집 앞 골목의 모습이 고즈넉하여 참 좋다. 괜히 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게 된다.




알차게 보낸 런던에서의 여덟 번째 하루가 달빛 속으로 사라져 간다. 오늘은 Tate Britain(테이트 브리튼)에서 양질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했고, 인생 통틀어 처음으로 영국식 Pub(펍)을 방문해 보았다. 내일의 태양빛 틈 사이로 피어날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하며 나도 이만 달빛 속으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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