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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예술과 같은 삶. 런던일상 9일차.

by Daria



오늘 아침 날씨가 정말이지 감동적일 만큼 화창하여 마치 하늘에 바다가 있는 것처럼 새파랗다. 이런 날은 밖에 안 나갈 수가 없지!


아침으로 돼지불고기와 밥을 먹고 간식으로 레몬케이크와 커피도 알차게 챙겨 먹었다.




오늘은 걸어서 버로우마켓과 테이트모던을 가기로 정했다. 템즈강 위 다리를 건너면서 본, 새파란 강물 위에 놓인 그보다 더 새파란 하늘의 조화가 눈부시게 환상적이다. 흐린 날씨는 흐린 날씨대로 매력이 있고, 맑은 날씨는 또 맑은 날씨다운 매력이 있는 런던.




이런 멋진 풍경을 찍지 않고서야 어떻게 배길 수가 있을까.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런던살이 9일차의 런던 풋내기는 아직도 구석구석 모든 거리들이 새롭고 예쁘고 신나기만 하다.




지나가다가 예쁜 공원과 바글바글 모여 있는 어린이들을 보고 무엇인지 궁금해 살펴보니 전쟁역사박물관이란다. 조만간 이 박물관에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어뒀다.




남의 집 마당에 핀 흰색 꽃이 한줄기 햇살을 받아 실크 모자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꽃송이가 몇 개 없어서인지 그 모습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 새삼스레 '햇빛'이라는 것은 인간 삶에 있어서 참 귀중하고 커다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다가 인도 위 한복판에 까마귀 한 마리가 홀로 나돌아 다니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찍었다. 지나다니는 사람 따위는 아랑곳 않고 혼자서 열심히 길 위를 종종걸음으로 배회한다.



버로우마켓에 거의 다 왔을 때쯤 Honest Burger를 발견하고는 먹을까 말까 심한 내적갈등을 겪다가 결국 가격이 부담스러워 다음을 기약하고야 말았다. 사람마다 각자 돈을 쓰는 포인트가 다 다를진대 나의 경우 햄버거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단지 맛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심지어 아직 배도 부른데 햄버거에 5만원을 태우기에는 심리적 부담이 좀 컸다.




약 한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걸어 드디어 버로우마켓에 도착했다. 1년 만에 다시 방문한 버로우마켓은 처음과 같은 큰 감동은 분명 없었지만 여전히 활기가 넘치고 둘러보기에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기분 탓은 아닌 것 같고 확실히 전보다 평균 가격대가 조금씩 올라있다. 거기에 환율 이슈까지 겹쳐 무언가를 마구 사들이기에는 조금 겁이 날 정도였다. 사실 사진 속의 저 치즈 샌드위치도 너무너무 먹고 싶었는데 겨우 한 줌 크기밖에 안 되는 작고 납작한 샌드위치가 10파운드(약 1만 8천 원)라고 하여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감히 사 먹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치즈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버로우마켓에서 가장 먼저 치즈 가판대부터 둘러보았다. 그중 'Fresh Goats Cheese'라는 글자가 매우 선명하게 눈에 띄는 한 가판대에서 고트치즈 한 덩이를 구매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손쉽게 다양한 치즈를 구할 수 있지만 여전히 고트치즈는 구하기 쉽지 않으므로 런던에 있는 동안 먹을 수 있을 만큼 실컷 먹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한 상인이 내게 다른 치즈들도 맛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모두 다 신선하고 맛이 좋아서 그에게 다른 치즈를 사러 며칠 뒤에 또다시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저께 갔던 첫 펍 방문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또 펍을 가보고 싶어 마켓 초입에 있던 'The Wheatsheaf'에 들어갔다. 맥주를 잘 모르는 나는 직원에게 맥주 추천을 부탁했고 직원은 내게 몇 종류의 맥주를 맛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중 가장 괜찮았던 (아마도) 캠든 에일을 주문했는데 사실 전부 다 썩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에일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야외 스탠딩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문득 방금 전에 산 치즈가 생각이 나 조심스레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귀퉁이 한쪽을 뜯어먹어 보았다. 음! 역시 맛있다. 얼른 다 먹고 또 다른 치즈를 사러 와야겠다.




한국보다 덜 춥기는 하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야외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한기가 돌아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실내 테이블은 모두 만석이었는데 손님들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시끌벅적 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편이었다. 이전의 펍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나에겐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는 펍이었다.




맥주잔을 모두 비운 후 머지않은 곳의 Tate Modern(테이트모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테이트모던에서 한국 작가 이미레의 전시도 진행되고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는 무척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전시를 보기 전에 에너지를 조금 채우고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테이트모던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빵을 사 먹었다. 통유리창을 통해 바로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참 매력적인 카페이다.




레몬과 라벤더, 블루베리 콩포트 등이 들어간 듯한 빵이었는데 꽤 먹을만했다.




에너지도 보충해 주었으니 이제 정말 전시를 보러 들어왔다. 테이트모던은 현대미술관으로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 몹시 훌륭하여 이곳에 있다 보면 정말이지 세상엔 참 재능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자코메티는 그의 조각 작품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회화 작품들도 몹시 인상적이다.






모딜리아니의 작품들도 꽤 여러 점 있었던 것 같다.








멀리서 대충 보고도 눈에 띄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피카소의 작품이었다. 피카소의 작품 중에선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역시 피카소는 부정할 수 없는 미술 천재임이 분명하다고 또 한 번 깨닫는다.










왼쪽의 그림은 정말 홀린 듯 한참이나 계속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 작품과 함께 찍힌 여성은 모르는 사람이다.










달리 특유의 기묘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참 좋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작품들도 너무너무 사랑한다.








도슨트 무리에 끼어들어서 나도 같이 들었던 작품들.




작품 설명을 읽고 나니 인상깊게 와닿았던 작품.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창 밖을 구경했다. 오늘은 어쩜 해 질 무렵의 풍경도 아름답구나.




출입구 쪽에 놓여있던 설치미술 작품인데 보기와는 달리 악취를 풍기거나 하진 않았다.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무언가 먹고 싶기도 한데 외식 비용이 부담스러워 결국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테이트모던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템즈강변을 따라 이어져있어 풍경을 즐기며 산책하다 보면 어느덧 집에 도착하게 된다. 오늘은 하루종일 하늘이 예술작품 못지않게 무척 아름답다. 새삼 예술은 자연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느낀다.






강변길에서 한 남성이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밝았던 하늘은 어느새 깊은 해저의 빛깔로 변모해 있었다. 오래 걸어서 몸은 힘들었으나 아름다운 풍경에 모든 피로를 잊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밀크티와 빵, 사과, 치즈, 치킨 등을 먹었는데 한 팩 샀던 치킨을 화수분처럼 계속 계속 꺼내어 먹다 보니 결국 한 팩을 다 비워 버렸다.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먹성도 큰 편이라 어떤 음식을 하나 사서 두고두고 천천히 오래 먹는 건 못 하는 성격이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 거실에 드뷔시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혼자만의 저녁 여유를 느꼈다. 런던에 온 후로 내내 공동생활만 해 오다가 오랜만에 갖게 된 이 혼자만의 여유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귀했다. (그러나 그 여유도 오래 가진 못 했다.)




저녁을 먹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헬스장에 운동을 다녀온 후 잠자리에 들었다. 런던에 온 지도 일주일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푸르고 아름다웠던 아홉 번째 하루에 암막이 드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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