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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년 만에 다시 만나는 친구와 함께 한 하루

by Daria



매우 화창하여 온 세상이 찬연하게 빛나는 가운데 런던에서의 열한번째 날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지난 런던여행 때 사귀었던 친구를 1년 만에 만나는 날이다. 때마침 날씨가 이리도 좋으니 오늘 하루가 얼마나 즐거울는지 몹시 기대된다. 아, 오늘의 아침식사는 닭갈비와 숙주나물볶음이다.




마이다스(Midas) 왕이 구석구석 모두 손을 대고 가기라도 한 것처럼 햇살 아래 어디 하나 빛나지 않는 것이 없다. 황금 햇살을 흠뻑 맞으며 소호로 향하는 길이 참으로 산뜻하고 경쾌하다.






그냥 보아도 반짝반짝 빛나는 빅벤이 눈부신 햇살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새파란 하늘 아래 놓인 흰색 외벽이 눈 부실만큼 더욱더 새하얗게 빛이 난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으나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다. 친구가 열차 문제로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는다고 하여 그동안 혼자서 커피나 한 잔 하려고 Monmouth에 갔는데 거리에는 별로 사람이 없어도 인기 커피숍은 역시나 만석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전부터 가고 싶어서 눈여겨뒀던 WatchHouse로 발걸음을 돌렸다.



깔끔한 녹색 외관이 분위기 있어 보이기도 했고 왠지 모르지만 커피도 맛있을 것 같아 보여서 전부터 언젠가 가봐야지 생각했던 곳이다.




빵 종류도 매우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데 모두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무엇보다 이 카페에 대해 가장 인상 깊었던 점으로 직원들의 친절함을 꼭 언급하고 싶다. 자리를 안내받으면서 직원에게 내가 지금은 혼자이지만 잠시 후에 친구가 여기로 올 예정이니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1층 창가 자리를 선호한다고 한차례 설명한 바 있는데, 그 뒤로 직원은 내가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혹시나 심심해할까 봐 일하면서도 틈틈이 내게 찾아와 이런저런 말을 건네주었다. 그 직원 외에도 주문을 받아준 직원과 테이블을 치우러 다니는 직원 역시 매우 친절하고 다정했다. 때마침 이 카페에는 매장 만족도 조사 같은 시스템이 있어서 이를 이용하여 내게 친절했던 직원의 이름을 언급하며 칭찬 리뷰를 남겼다.




다정한 직원들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따뜻한 플랫화이트를 홀짝이며 친구를 기다렸다.




잠시 후 친구가 도착하여 우리는 카페에서 1년간 쌓인 회포를 풀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달달한 간식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가 버킹엄 궁전에서 일할 당시에 자주 찾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가 소호 차이나타운에 있다고 하여 따라갔는데 하필 그 메뉴만 일시품절 상태여서 먹지 못 했다.




그리하여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대신에 내가 전부터 궁금히 여기고 있었던 'Donutelier(도넛틀리에)'에서 도넛을 사 먹기로 했다. 사실 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는데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내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닐라 라즈베리, 친구는 피스타치오 도넛을 골랐는데 두 사람 다 각자의 도넛을 맛있게 먹었다. 겉보기엔 무진장 달 것 같이 생겼는데 의외로 그리 달지 않아서 좋았다.




그다음 우리는 미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이곳엔 워낙 방대한 작품들이 있어 가도 가도 질리지가 않는다. 가장 먼저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역시 카라바조는 신이에요.... 그의 미술적 재능은 정말 독보적이다.




윌리엄 터너의 유명한 작품도 그냥 지나치면 섭섭하다.




주말이라 그런지 갤러리 안은 인파로 붐볐는데 사람들이 비교적 없는 곳을 골라 친구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했으나...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내 키가 170인데 친구가 찍어준 사진 속의 나는 150 남짓 되어 보여서 당혹스러웠지만 친구에겐 맘에 든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역시 사진은 한국인에게 부탁해야 하나 보다.... (친구야 미안. 하지만 한국어를 못 하는 친구니 이 글을 읽을 일은 없을 것이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몽글몽글 화사해지는 르누아르의 작품들도 훑고 간다.




렘브란트(왼쪽)와 반 다이크(오른쪽)의 왕족을 그린 웅장한 크기의 기마상도 지난다.




어릴 때부터 엘 그레코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했던 나. 이 작품도 그냥 지나치면 아쉽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정신없고 기 빨리는 편인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내셔널 갤러리임에도 어쩐지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혼자서 편하게 더 감상하라 이야기하고 아트샵의 서점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혼자 책을 살펴보던 중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영국계 프랑스인으로, 프랑스에서 쭉 화가로 활동해 오다가 지금은 영국으로 디자인 공부를 하러 왔단다. 그가 내게 프랑스 작품, 이를테면 모네나 르누아르 등의 작품들을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하여 다시 화랑으로 향하던 중 친구에게 이만 나가자는 문자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그와는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계단에서 헤어졌다.




친구는 내게 Buckingham Palace(버킹엄궁전) 및 St. James's Park(세인트제임스 공원)를 산책하자며 안내하여 분홍빛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걷게 됐다.




좀 춥기는 했지만 공기가 맑고 하늘의 빛깔이 너무나도 예뻐서 산책하기에 참 좋았다. 왕실 근위병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내게 열정적으로 궁전 일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버킹엄 궁전 뒤편으로 하늘에 분홍색 솜사탕이 뭉게뭉게 퍼지고 있다.




공원에서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참으로 평화롭고 예쁘다. 다음에 날씨가 좋으면 맛있는 빵을 사들고 혼자 다시 와야겠다.




친구가 자주 방문하는 적당한 가격대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현지인 추천 맛집이라고 하니 매우 기대됐다.




각각 와인 한 잔, 파스타 하나씩 주문하여 먹었는데 가격에 내심 놀랐다. 물가도 물가이지만 현재 환율 상태가 너무나도 나빠서 사실상 이렇게 먹으면 인당 (한화 기준) 10만 원 가까이 지불하게 되므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나로선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심지어 양은 너무나도 적어서 전혀 성에 차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친구는 내게 펍에 가자고 하였는데 여기서 돈을 더 쓰는 것은 분명히 무리라고 판단되어 친구에겐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작별한 뒤 집에 돌아와 간식을 먹었다. 오른쪽의 저 쿠키는 M&S(Marks & Spencer)에서 파는 피스타치오&아몬드 쿠키인데 정말 정말 맛있다. 런던 여행 시에 꼭 사 먹어봐야 하는 쿠키로 추천한다.




오늘도 하루종일 이것저것 많이 먹었기에 또 채비를 하여 러닝을 나간다.




이것의 템즈강세권(?)의 축복이구나!




오늘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에 크게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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