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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런던살이 11~12일차 그리고 첫 선데이로스트

by Daria



런던에서 맞는 두 번째 일요일! 오늘은 비가 내린다. 사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선데이로스트를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일요일 아침이 되니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과식을 해 버렸다. 닭백숙에 밥도 무진장 많이 말아먹고 닭칼국수까지 해 먹었다. 하지만 유서 깊은 과식 가문(?)의 자손으로서... 나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 계속 미루다 보면 런던 떠날 때까지 못 먹는 불상사가 생길까 봐 그냥 생각났을 때 후딱 해치워 버리기로(?) 했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 선데이로스트 맛집은 피하고 싶어서 구글맵을 켜 집에서 가까운 몇 군데 중 후기가 좋은 곳을 찾아내 전화로 테이블 예약을 했다.




비바람이 부는 날, 선데이로스트를 먹겠다고 이를 헤치고 가는 중이다. 먹을 것에 환장한 사람 같다. (맞긴 해)




도착했는데 내가 생각한 캐주얼한 펍이 아니라 꽤 격식 있는 곳이어서 당황했다. 아니.. 구글맵에 Pub이라고 적혀 있기에 나는 그냥 맥주 마시고 떠드는 분위기인 줄 알았지.... 후드티에 운동용 레깅스 차림으로 온 것이 어찌나 민망하던지....






나는 선데이로스트 Pork로 주문을 했고 음료는 추가하지 않았다. 사실 와인 한 잔을 곁들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생각보다 높은 금액의 식사 가격에 감히 와인을 추가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선데이로스트 하나만 주문하고 한화로 대략 6만원을 지불했다. (결제 시, 메뉴판 가격에 Service Charge가 자동 추가된다.)




이날 살면서 처음으로 요크셔푸딩이라는 것을 먹었는데 그냥 속이 비어 있는 평범한 빵이었다. 하지만 그레이비소스를 흠뻑 끼얹어 촉촉해진 빵을 고기와 함께 먹으면 아주 맛있다. 특별히 간이 되어있는 빵은 아니라서 그레이비소스 외에도 다른 소스들과 다양하게 조합하여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모두 무난하게 먹을만했는데 감자만큼은 극찬하는 바이다. 한국과 품종이 다른 영국 감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어 웬만하면 런던에서 감자요리를 먹고 실망하는 법이 없는데, 이 감자 요리 역시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겉은 아주 바삭하다 못해 빠작빠작해 매우 매력적이었다. 배가 몹시 부름에도 불구하고 접시를 깨끗이 비웠을 만큼 맛있게 먹었다.




내 테이블 위에 걸려있던 그림. 조금 무섭긴 한데 익살스럽고 재미있다.




내 인생 첫 선데이로스트를 성공적으로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로스트비프로 한번 더 먹어 봐야겠다.




그렇게 먹고도 집에 돌아와 또 후식이랍시고 레몬케이크와 커피를 먹었다. 확실히 런던에 온 이후로 바른 식생활과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내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먹은 것들을 소화시킬 겸 집 근처 Tate Britain(테이트브리튼)에 방문했다. 집과 가까워서 접근성도 좋고 소장품의 수도 많은 데다가 양질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어 몇 번이고 방문할 만한 곳이다. 런던의 다른 미술관들에 비하여 관광객들에게는 비교적 덜 유명하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https://brunch.co.kr/@myhugday/108

(↑Tate Britain에 다녀온 날의 첫 번째 이야기)





William Hogarth(윌리엄 호가스)의 그림들은 하나하나 디테일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매우 사랑스러운 그림이라 (국내에서) 굿즈로도 많이 제작되는 편인 John Singer Sargent(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도 매우 크게 걸려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판 삽화로도 몽글몽글 귀엽지만 실제로 보면 더욱더 사랑스럽고 예쁘다.




역동적인 몸짓의 조각상 앞에서 열심히 데생 중인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도 한 번 그려볼까 생각하다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 크로키를 보고 웃참 챌린지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참았다.




<Woman's Mission> 연작 중 하나인데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화가들도 이런 그림을 그리면서 재미있었겠지 하고 생각했다.




매우 유명한 작품인 <오필리아>도 만나볼 수 있다.






Dante Gabriel Rossetti가 그린 수태고지. 수태고지 그림은 세상에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도 꽤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작품들도 여러 점 있어 아주 좋았다.










마티스의 그림 중 이 작품은 처음 본다. 필라테스를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전신 누드화를 보면 거북목, 굽은 등, 골반 경사 등의 특징들이 먼저 눈에 띄곤 한다.




선을 활용한 아이디어가 매우 돋보이던 작품이다.




집에 가는 길에 남의 집 울타리에 핀 장미가 너무 예뻐서, 그리고 비 내리는 저녁 분위기가 매우 멋지고 운치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나도 나중에 주택에 살면서 울타리에 장미를 심고 싶다.




집에 돌아온 후로 운동 가는 것이 영 귀찮아 미루고 미루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헬스장에 갔는데 이게 웬걸. 일요일이라고 17시까지만 영업이란다. 헬스장 앞까지 힘들게(?) 갔는데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0 고백 1차임과 같은 처지가 되어 버렸다. 어쩐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헬스장에 가기가 싫은가 했더니 내 몸은 이미 미래를 예견했나 보다....


헬스장 앞에서 룸메이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인생 첫 선데이로스트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테이트브리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열한번째 런던 하루가 저문다.


로투스 비스코프 샌드 쿠키! 정말 맛있다. 추천!






열한번째 하루에 이어서 열두번째 하루를 기록해 본다. 확실히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오늘 아침식사는 빨강, 초록, 노랑이 한데 어우러진 알록달록 밥상이다. 이건 마치 신호등 밥상?




아침 식사 후 오늘도 레몬케이크를 꺼내 커피와 함께 후식으로 먹는다. 창밖을 보니 오늘은 영 날씨가 좋지 않다. 비가 와서 몸도 축축 처지는 것 같아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어야겠다.




식사 후 레몬케이크로 후식을 먹고도 성에 안 차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 하에) 사과와 치즈를 꺼내 먹었다. 이전에 버로우마켓에서 샀던 그 고트치즈인데 너무 맛있어서 다 먹으면 또 꺼내고, 다 먹으면 또 꺼내기를 반복하였다. 사과와 고트치즈의 조합은 정말 단순하지만 환상적인 마리아쥬를 이룬다.




사진을 보니까 정말 끝도 없이 먹었구나.... 살구잼을 바른 식빵과 밀크티로 또 한차례 티타임을 가졌다. 집에 있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뭘 자꾸 먹게 되니 차라리 뭐라도 하러 나가는 게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나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뒹굴할 계획이지.




집콕의 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집에만 있지는 않았다. 채소와 과일, 그리고 빵을 사기 위해 집 앞 Sainsbury's로 장을 보러 나갔다. 영국에서는 마트에서도 흔하게 글루텐프리 빵을 살 수 있는 점이 정말 좋다.




장 보느라 에너지를 소모했으니(?) 집에 돌아와 감자칩 그리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잠시 여유로운 독서의 시간을 즐긴다. 정말 게으른 먹보의 하루가 따로 없다.




온종일 먹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찾아왔고 저녁으로 치킨텐더와 달걀프라이 그리고 lettuce를 먹었다. 비루해 보이지만 아주 맛있었다.




그러나 결국 참지 못하고 라면을 또 끓여 먹었다. 아, 이건 우리 집의 비밀 레시피인데 라면에 땅콩버터를 넣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어릴 때 미국에 사시는 외가 분들께서 한국에 방문하시면 항상 땅콩버터를 잔뜩 사 오셨는데 그로 인해 넘쳐나는 땅콩버터를 처리하고자 우리 집은 온갖 음식에 땅콩버터를 다 넣어 먹었다. 그중 가장 맛있던 것이 땅콩버터를 넣은 라면이다.




오늘은 집에서 푹 쉬었으니 열심히 운동을 하고자 gym에 왔다. 독학으로 헬스하는 헬스 초보였던 내가 점점 헬스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이 매우 뿌듯하다.




운동하고 돌아와 Layla Bakery의 레몬 머랭 빵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머랭도 전혀 느끼하지 않았고 레몬커드도 상큼달달하니 패스츄리와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 런던엔 정말 맛있는 빵집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빵순이인 나에겐 위험한 곳이다.




런던에서의 소소하고 행복한 나날들이 계속해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아직 한국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꽤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생각만 하면 너무 아쉽다. 런던에서 계속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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