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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해리포터 덕후, 에든버러로 떠나다.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by Daria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해리포터에 미친 덕후로서 이 에든버러 여행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침부터 든든히 밥을 챙겨 먹고 배낭 하나 짊어진 채 집을 나섰다. 어차피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라 단벌신사로 다닐 계획으로 옷이나 화장품도 챙기지 않은 채 세면용품, 책, 충전기, 여권 같은 기본적인 필수품만 배낭에 넣었다.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가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행기를 타고, 또 다른 하나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나는 이동 시간이 짧은 비행기를 선택했는데 이는 실로 근시안적인 생각이었다. 런던 1존에서 공항까지 가는 시간과 탑승 대기 시간, 비행시간을 모두 합치면 기차나 비행기나 총 이동 시간에 별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공항 철도 및 공항버스 비용은 얼마나 비싸던지.... 다음에는 기차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Tube를 타고 Tottenham Hale 역에서 내린 뒤 Stansted Airport(스탠스테드 공항)행 열차로 갈아탔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는데, 반드시 표를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여느 열차 타듯 개찰구에서 컨택리스 카드를 찍고 탔는데 나중에 공항에서 내리니 검표를 하더라. 난 분명 카드를 찍고 탔음에도 불구하고 표가 없으면 무임승차로 간주되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아니 그럼 개찰구에 좀 써붙여 놓든가...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은 말을 안 해주면 어찌 아냐고요. 아니면 카드 인식을 하지를 말든가요....




아무튼 열차는 출발했고, 나는 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런던 외곽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물론 이때까지는 곧 닥칠 일에 대해서 꿈에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설레고 행복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육아 난이도 최상을 자랑할 법한 천방지축 장난꾸러기였는데 아이의 부모님은 꽤 고생하고 계신 모습이었지만 제삼자인 나로선 아이가 그저 귀엽기만 하여 계속 눈을 마주치며 아이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부끄러워하면서도 흘긋흘긋 나를 보고 웃는 아이의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한참을 달려서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하나 타겠다고 참 멀리도 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갈 때도 또 이렇게 먼 길을 가야 하는 거잖아?

아, 스탠스테드 공항 말고 개트윅 공항도 있지 않냐고? 내가 오늘 이용할 항공사인 Ryan Air(라이언에어)는 스탠스테드공항을 거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저비용 항공사인 라이언에어를 이용하려면 스탠스테드 공항으로 가야지 뭐 별 수 없다.




공항 역에서 내리면 친절하게 라이언에어 탑승객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표시가 되어 있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앞서 말했던 검표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실물 티켓이 없는 경우엔 벌금과 열차요금을 합하여 35파운드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열차요금 £15와 벌금 £20가 합쳐진 금액으로, 한화로 67,000원쯤 한다.




나는 직원에게 절대 무임승차할 의도가 없었고, 분명 토트넘해일 역에서 컨택리스카드를 찍고 탑승했으며, 필요하다면 카드 내역도 보여줄 수 있음은 물론이고, 관광객이라 이런 사실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역사 내 그 어디에도 이런 사항은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고 열심히 애원하듯 설명했다. 완강하게 응대하던 직원은 나의 결백을 이해했는지 나중에는 본인의 상사가 다른 곳에 주의를 두고 있는 틈을 타 (당장 내 수중에 없는) 티켓에 대한 가격만 빨리 결제하라고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나는 크게 고마워하며 재빨리 티켓을 결제하고 무사히 공항으로 들어왔다. 다시 한번 그에게 매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니었으면 여행 시작부터 엉망진창이 될 뻔했다.

다들 스탠스테드 공항에 갈 때는 꼭 열차표 구입 여부를 확인하고 탑승하세요.. 저야 직원하고 협상이 잘 되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생돈을 날려야 한답니다..(나중에 들어보니 이렇게 해서 억울하게 벌금을 낸 한국인들이 많다고 하네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공항 안에 들어왔다. 이 공항의 이용객들 대부분은 라이언에어 탑승객 같았다.




작은 공항 같아 보여도 은근히 있을 건 다 있다. 식당가도 있고 면세점도 있고, 공항 직원들도 친절하니 이용하는 데 있어 전혀 불편한 점은 없었다. 보안 스캔할 때, 가방에 넣어둔 내 핫팩이 감지기에서 마약으로 인식되는 바람에 또 한 번 진땀 흘릴 일이 있었지만 그 문제도 유쾌하게 해결됐다.




뭔가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서 면세점을 둘러보던 중 Irish Gin이 들어간 초콜릿이 보여 궁금해서 사 봤다. 먹어보니 초콜릿 쉘 안에 약간 크리미한 질감의 필링이 들어 있었는데 특별히 위스키 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너어어어어무 달아서 겨우 한 조각조차도 다 먹기 힘들었다. (저 초콜릿은 지금도 여전히 냉장고 안에 있다.)




생각해 보니 (내일은 화장을 안 하더라도) 오늘 하고 나온 화장을 지울 클렌저를 챙겨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부랴부랴 면세점에서 여행용 클렌징 티슈를 샀다. 지금이라도 떠올라서 너무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화장도 못 지우고 그대로 잘 뻔했다. 면세점에서 기내 수화물 허용 기준에 맞는 다양한 액체류를 구매할 수 있으니 혹시라도 나처럼 세면용품이나 기초화장품을 깜빡하고 챙기지 않은 사람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제시간에 지연 없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니 됐다.




Welcome to Edinburgh!




공항에 내린 뒤 버스 타는 곳으로 나오면 에든버러 시내까지 이동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탑승과 동시에 편도 티켓 또는 왕복 티켓을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왕복 티켓을 사면 조금 더 절약할 수 있다.




비가 내리는 에든버러.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 너머 펼쳐진 에든버러 풍경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눈으로 포착하였다. 해리포터 덕후는 이 모든 풍경이 그저 황홀하고 감격스럽기만 하다.






드디어 목적지 정류장에 내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우산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제법 빗발이 굵었지만 왠지 우산을 사면 지는 것 같아서(?) 여행 내내 꿋꿋하게 우산 없이 버텼다.




일단 끼니부터 해결할 겸, 미리 봐두었던 유명한 해기스 맛집으로 향했다. 해기스(Haggis)는 주로 양의 내장을 사용해 만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음식이다. 한국인들에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요리라고 하던데 그래도 스코틀랜드에 왔으니 일단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왔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관광객들에게는 Makars Mash Bar라는 곳이 해기스 맛집으로 유명하다. 네이버에 '에든버러 해기스 맛집'을 검색하면 온통 Makars Mash Bar 게시글이니 말이다. 나중에 이곳의 직원과 친해져서 알게 된 건데 중국의 모 사이트에 이 식당이 소개되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엄청 유명해졌다고 한다.




웨이팅이 엄청 긴 식당이라고 해서 큰맘 먹고 왔는데 다행히 평일의 애매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곧바로 자리로 안내받았다. 내부는 캐주얼한 다이닝 펍 같이 생겼다. 해리포터의 저자인 J.K. Rowling이 소설을 쓰는 동안 에든버러에 거주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식당 한 구석 벽에는 해리포터와 조앤 K. 롤링이 그려져 있었다.






해기스와 스카치에그 두 요리가 매우 궁금했는데 양이 많을 것 같아 직원의 조언을 따라 미니 해기스와 스카치에그,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맥주도 직원이 추천해 준 것인데 어떤 맥주였는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별로 기억에 남는 맛은 아니었다.




(아마도)호박 퓨레를 두텁게 얹은 해기스는 그레이비소스에 푹 빠진 채로, 스카치에그는 반으로 갈린 두 조각이 소스와 함께 제공되었다. 스카치에그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유래된 영국의 전통 음식으로, 삶은 달걀을 소시지 고기로 감싸 빵가루를 입혀 튀기거나 구운 것이다. 해기스와 스카치 에그 둘 다 고열량 음식이라 이래 봬도 먹고 나면 포만감이 꽤 밀려온다.




다행히 두 음식 모두 내 입맛에 매우 잘 맞았다. 특히 해기스는 너무너무 맛있어서 다음날에도 사 먹었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해기스 통조림을 발견하고 살까 말까 엄청 고민했을 정도였다. 낯선 음식에 대해서, 그리고 내장 요리에 대해서 별로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꼭 해기스를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스카치에그는 크게 호불호 갈릴 음식이 아니라 부담 없이 시도할 만하다.




요리를 한창 먹고 있던 중, 쉬는 시간을 갖게 된 식당 직원이 내게 말을 걸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해져서 저녁때 또 만나기로 약속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뒤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만족스럽게 식당을 나왔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내리던 비는 식당에서 나오니 그쳐 있었지만 그 후로도 비는 계속해서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화창한 날씨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이렇게 흐린 날씨 또한 에든버러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나름대로 좋았다. 궂은 날씨 덕에 오히려 더 해리포터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달까.




다음으론 스코틀랜드의 내셔널갤러리에 갈 계획이었지만 처음 마주한 에든버러 풍경이 내겐 너무나도 멋있어서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한 장이라도 더 사진을 찍겠다고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으니 사진에 진심인 사람처럼 보였는지 주변 관광객들이 나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내게 사진을 부탁했던 관광객이 결과물을 보더니 혹시 한국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때부터 주변에 있던 다른 관광객들도 우르르 내게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사진을 찍어주고 난 후, 마지막엔 나도 한 장 부탁하여 에든버러 풍경 속의 소중한 내 사진을 건졌다.




어딜 찍어도 다 분위기 있게 나온다.



흐린 날씨 덕에 더 분위기 있어 보인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불빛의 호박색이 대조되어 오히려 더 멋졌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오후 네시쯤에 이르렀고, 오후 다섯 시에 문을 닫는 National Gallery of Scotland(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로 서둘러 향했다.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에서는 또 어떠한 훌륭한 미술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에든버러에서의 나의 첫날 저녁은 어떤 추억들로 수 놓이게 될까. '해리포터 성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또 다른 기대나 거창한 계획도 없이 배낭 하나 메고 찾아온 에든버러, 이곳에서 얼마나 소중한 기억들을 얻게 될지 모른 채 그저 설렘으로 부푼 마음만 끌어안고 미술관을 향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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