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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런던일상 -일상 속의 안정과 평화, 작은 행복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by Daria



에든버러 여행에서 밤늦게 돌아온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런던에서의 보통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런던이지만 한식으로 여는 아침.. 오늘의 메뉴는 숯불양념치킨과 이것저것 반찬들, 그리고 흰쌀밥과 시금치 된장국이다.




내 일상에선 식사를 마친 뒤에는 항상 후식 티타임이 빠지지 않는다. 밥을 심하게 많이 먹기는 하지만 후식으로 과자만 안 먹어도 훨씬 나을 텐데 티푸드 없이 커피를 마시기엔 영 허전하다.




눈 깜짝할 새 오전이 흘러가고, 정오쯤 간식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한량 같은 하루를 보낼 계획이다.




집에서 가까운 St. James Park(세인트제임스공원)에 산책을 하러 왔다. 버킹엄궁전과 맞닿아있다시피 한 공원이어서 그런지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관리되어 있으며, 부지가 꽤 넓어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연못가에 돌아다니는 다양한 종류의 오리들과 잔디밭을 쪼르르 뛰어다니는 다람쥐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 공원이다.




저 멀리 한 여성분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았다. 통통한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토도도돗 걷는 뒷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물 틈 사이로 빅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래, 너도 한 장 찍어줄게. 진정해.




세인트제임스 공원에는 커다란 인공 연못이 있는데 그 주변으로 다양한 동식물들 그리고 오두막이 둘러싸고 있어 평온하고 소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푸드덕푸드덕 사람을 향해 날아드는 비둘기들은 무섭지만 얌전하게 잔디밭 위를 종종종 걸어 다니는 오리들은 그저 신기하고 귀엽다. 바닥에 먹이라도 있는 것인지 다들 땅만 보고 걷고 있다. 오리들은 고개 숙여 땅만 보며 걷고, 사람들은 고개 숙여 핸드폰만 보며 걷는구나.




이 오리는 부리를 비죽 내밀고는 자꾸 울타리 바깥을 기웃거린다.




오리 한 쌍이 사이좋게 나란히 걷고 있다. (오리도 짝이 있는데....)




연못가 근처에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편하도록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도 마련되어 있다. 산책하다가 구두에 흠집이 나는 경험을 여러 번 한 사람으로서 이런 길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또 다른 오리 한 쌍을 마주쳤다. 언덕 위로는 여러 마리의 펠리컨들이 있었고,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The Guards Museum(근위대 박물관) 팻말을 보고는 호기심이 생겨서 안뜰로 들어와 봤다. 무료 관람이면 입장하려고 했는데 유료여서 도로 나왔다. 바로 맞은편에는 Wellington Barracks라는 근위대 본부 격의 건물이 있었고, 박물관으로 가는 입구 옆에는 귀여운 웰시코기 동상이 놓여 있었다. 영국 왕실에서 사랑받는 견종이자 The Welsh Guards의 마스코트여서 놓여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귀여운 걸 좋아하니까 말이다.




바로 인근에는 St. John's Chapel이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군인들의 예배당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군인들의 희생과 봉사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물과 유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이기도 하다. 들어가면 매우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작은 예배당 안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다. 말소리는 고사하고 발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홍차, 그리고 어제 사온 위스키퍼지와 함께 언 몸을 녹이며 런던에세이를 조금 끄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빵을 사 먹기 위해 집을 나와 소호의 Fabrique를 방문했다. 저번에 아몬드 번을 먹고 그 맛에 몹시 감동받아서 다른 제품들도 모두 먹어보겠노라 마음먹었던 그 빵집이다. 소호에만 오면 데이터가 안 터지는 탓에 이 빵집을 찾느라 또 한 번 헤맸다.




오늘은 Cardamom Bun(카다멈 번)을 먹겠다고 마음속으로 미리 점찍어뒀다. 카다멈은 매콤한 향이 나는 향신료의 일종인데 이것으로 만든 번은 과연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했다.




조금 아쉬운 얘기이지만 지난번에 먹었던 부드럽고 달콤했던 아몬드번과 달리 이 카다멈번은 비교적 건강한 맛을 지녔다. 물론 이것도 충분히 맛있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맛은 아니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카다멈의 양은 넉넉하여 적어도 향만큼은 부족하지 않았다.




빵을 먹고 난 뒤 St. James Park를 가로질러 집으로 걸어갔다. 런던은 낮과 밤의 매력이 뚜렷하게 다른데 둘 다 너무 좋아서 우위를 가릴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토르텔리니로 투움바(비슷한)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양조절에 실패하여 그릇 위로 넘쳐흐를 정도였다. 양 조절에만 실패한 게 아니라 염도 조절에도 실패해서 너무 짰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탁자에 눌러앉아 한없이 빈둥거렸다. 빈둥거린 이유는 헬스장에 가기 귀찮아서이다. 15분쯤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다 보니 매번 헬스장에 갈 때마다 강한 의지력과 추진력을 내게 요구한다.




그래도 한 번 약속한 건 꼭 지켜야 마음이 편한 인간이므로 오늘도 어김없이 귀찮음을 극복하고 헬스장에 왔다. 게다가 에든버러로 여행 간 이틀 동안 운동을 못 했으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운동을 해야만 했다.




2월의 찬 바람을 맞으며 집에 돌아온 후에는 꼭 따뜻한 차를 마셔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안심이 된다. 열심히 운동한 후 돌아온 안락한 공간에서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가만히 하루를 정리해 보았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소소하고 평화롭게 보낸 하루. (물론 런던에서의 생활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행이 주는 특별함도, 일상이 주는 평화로움도 모두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요소라는 것을 깊이 느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은, 여행에서 얻는 특별한 설렘만큼이나 중요한 감정인 것 같다.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여행에서의 새로운 경험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작은 행복들임을 새삼스레 느끼며.. 따뜻한 차에 스멀스멀 풀어지는 여독이 찻잔 저 아래로 깊이 가라앉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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