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달콤한 한여름밤의 꿈같았던 에든버러 마지막편

by Daria



Greyfriars Kirk(그레이프리어스 교회)에서 나와 카페를 찾는다는 핑계로 조금 더 걷기로 했다.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하루일진대 어떻게 실내에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내가 한참 동안 구글맵을 뒤져 신중한 고민 끝에 방문한 곳은 바로 에든버러 시내에 있는 서점 Waterstones이다. 문자 그대로 서점이므로 책을 둘러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서점 위층에 자리한 카페가 아주 좋다는 후기들을 보아서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방 안에 이미 읽을 책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또 내 마음을 잡아끌 운명의 책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서점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 이를테면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곳은 언제나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책을 둘러보며 한 층 한 층 올라와 카페에까지 이르렀다. 서점 안에 있는 것 치고는 제법 큰 규모의 카페였고, 자리는 거의 다 차 있었다. 두 명 이상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을 정도였지만 나는 혼자이므로 긴 아일랜드 탁자가 있는 자리에 무사히 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자리는 통유리창을 통해 창밖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명당이나 다름없었다.




이 카페의 메뉴 가격은 대체로 다른 카페들에 비해 약간 더 합리적인 편이었다. 카페 분위기도 좋고 빵 종류도 이렇게나 다양한데 가격대까지 좋은 편이니 평일 대낮에 이토록 사람들이 많은 사실에 전혀 놀라울 것이 없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알았지만 아래층에도 카페 공간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이 아늑한 카페 안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노트북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겨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공부를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말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에든버러의 소박한 풍경을 배경 삼아 같은 공간 안에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뤄내는 이 차분하고도 자연스러운 하모니가 참 좋았다. 이런 좋은 카페를 찾아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에든버러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스콘을 먹고 싶어서 에스프레소와 스콘을 주문했다. 클로티드크림과 잼은 직접 만든 것이 아닌 시판 제품이 제공됐다. 이번에도 역시 버터는 빠짐없이 함께 나왔다. 숙소에서 주던 조식도 그렇고, 아까 로열 마일에서 들렀던 Deacon's House Cafe도 그렇고, 에든버러에서는 어딜 가나 이 버터를 주는 것 같다. 먹어보니 그렇게 맛있는 버터도 아니던데 왜 다들 이 버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스콘은 먹을만했고 클로티드크림은 의외로 꽤 맛있었다. 커피는 안타깝게도 내 취향의 맛이 아니었다.


다 같은 사진 같지만 아주 약간씩 구도 높이가 다르다.^^;;



스콘과 커피를 먹고 난 뒤 나도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페이퍼백 형태의 작은 크기 책이라 휴대하면서 읽기에 참 좋다. 내용은 읽는 이를 다소 축축 처지게 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종국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아직 완독하지 못해서 책에 대해 함부로 논할 수 없으니 다 읽고 나면 그때 다시 호불호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어쨌든 커다란 유리창 너머 고요한 풍경이 보이는 이 차분하고도 활기찬, 마치 여러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균형 잡힌 소리를 내는 듯한, 잘 구성된 챔버 오케스트라와 같은 이 공간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참 좋았다.

한창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중, 언제 왔는지 모르지만 오른편에 앉아있던 다른 이용객이 말을 걸어서 대화를 시작했다가 그대로 쭉-, 에든버러를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하게 됐다. 때마침 특별한 계획도 없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현지인 친구를 사귀어 알찬 관광을 하게 됐다.




새 친구와 함께 카페를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현지인이니 믿고 따라가면 분명 좋은 곳이겠거니 싶어서 그가 이끄는 대로 잠자코 따랐다.




그를 따르며 마주한 곳들은 하나같이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하며 평화롭기 그지없는 전원풍의 장소들이었다.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아기자기한 개울가이지만 에든버러만의 가옥 양식 그리고 신비로운 빛깔의 흐린 하늘과 함께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의 전원 풍경을 자아냈다.






(미안하지만 해리포터 얘기를 또 꺼내자면)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의 금지된 숲(Forbidden Forest) 부근 같기도 하다. 뒤편으로 저 멀리 보이는 건축물들이 그러한 느낌을 더욱더 극대화하는 듯하다.




(그냥 사방이 해리포터 세계 아니냐고요...)




이곳저곳 귀엽고 예뻐서 (그리고 해리포터 세계 같아서) 연신 곳곳의 사진을 찍어댔다.




사실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티타임 후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 다시 한번 더 들를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산책을 하게 됐다. 내가 미술을 아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여행 시에는 그 지역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을 주요한 일정으로 삼는다는 것을 그에게 넌지시 드러냈더니 그는 나를 이 현대미술관으로 인도했다. Modern (Art) Two라고 명명된 이곳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내에 있는 현대미술관 중, 문자 그대로 2관에 해당하는 곳이다.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의 일부로, 정식 명칭은 National Galleries of Scotland - Modern Art이며 두 개의 관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1관과 2관의 전시 성격은 약간 다른데, 2관의 경우 1관에 비해 확실한 현대 시기의 미술을 다루고 있으며, 비교적 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편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국립 현대미술관 2관은 과거 사유지였던 Clifton House(클리프턴 하우스)를 국립미술관에서 매입하여 현재의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라고 한다. 현대미술관이지만 고전적인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현대미술관답게 건물 앞 정원 곳곳에서도 여러 설치미술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미술관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Everlyn Nicodemus의 단독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그녀는 작품을 통해 개인, 나아가 사회 집단으로서의 트라우마를 표현하며 또한 동시에 치유하기도 한단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그녀가 어떠한 아픔과 고민을 겪어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혹시 Everlyn Nicodemus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다음 웹사이트를 통해 조금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링크 첨부 : https://ocula.com/artists/everlyn-nicodemus/)




미술관을 빠져나온 우리는 그다음으로 Dean Cemetery(딘 묘지)에 방문했다. 공동묘지에 해당되는 이곳은 스코틀랜드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이 묻혀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산책로로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라고 한다. 조용한 가운데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 새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며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만이 이 공간을 메웠다. 아, 그리고 우리가 흙을 밟는 소리도 함께.




점점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다. 친구는 저녁 선약이 있어서 함께 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그 대신 괜찮은 위스키 바를 추천해 주겠다 하였다.

해가 넘어가고 난 뒤의 에든버러는 또다시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로 짙게 물들어, 곧 떠나야만 하는 나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해가 넘어가니 또다시 환상적이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는 에든버러 풍경.



그가 나를 데려다주고 떠난 곳은 Dirty Dick's라는 펍 앞이었다. 가게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가게 안은 매우 어두웠고 빈티지한 느낌이 가득하여 마치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의 아지트로 자리해 왔을 것만 같았다.(그저 내가 느낀 느낌일 뿐이다. 실제로도 그런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바텐더의 추천을 받아 가장 오른쪽의 위스키를 골랐다. 그 바텐더는 강한 스코틀랜드 억양을 지녔고 나는 그가 한 말을 항상 되물어야 했지만 그는 조금도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밝은 미소로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그의 추천으로 시음해 본 위스키들은 모두 다 맛있었다.




제대로 된 해기스 요리를 먹기에는 아직 위장이 충분히 비지 않아 해기스볼을 주문했다. 전날 먹었던 해기스보다야 당연히 덜했지만 이 역시 맛있었다. 해기스를 동그랗게 탁구공 모양으로 빚어 기름에 튀긴 뒤 그레이비소스와 함께 내놓은 안주거리인데, 해기스 자체가 맛있는 별미여서 그런지 아니면 튀김요리여서 그런지 몰라도 매우 맛있게 먹었다. 함께 마신 위스키와도 제법 잘 어울렸고 말이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술과 음식 모두 맛있는 데다가 가게 분위기도 아늑하고 좋았던 Dirty Dick's Pub. 다음에는 더 두둑한 지갑과 함께 다시 방문하고 싶다.




펍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붙들고 있다 보니 어느덧 공항을 향해 떠나야 할 때가 코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떠나기 직전에 쇼핑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 채 부랴부랴 공항행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미리 공항으로 떠나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가며 마음 졸이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아서 보통 이동 시간을 여유롭게 계획하는 편이다.



Welcome to Edinburgh를 보며 입국한 것이 마치 몇 시간 전의 일 같은데, 지금은 이렇게 출국장 앞에 와 있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짧구나.




면세점에서 해기스 통조림을 보고는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요리조리 살피며 살까 말까 고민하였는데 결국 내려놓았다. 제대로 된 소스와 퓨레가 없다면 식당에서 먹은 그 해기스 맛은 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까 사지 못했던 위스키 퍼지는 공항에서 간신히 하나를 찾아내어 겨우 살 수 있었다. 공항에 여러 종류의 퍼지가 판매되고 있었지만 그 많은 퍼지들 중 위스키 퍼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긴 시간동안 스탠스테드공항에서 샀던 아이리쉬진 초콜릿을 먹었다.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이륙 전까지 매우 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드디어 출발한다.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기 직전이다.




다시 또 스탠스테드공항으로 돌아와, 또 긴 시간 동안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집에 왔다. 어찌나 피곤하던지 말 그대로 몸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고, 머리는 누군가가 빨래 짜듯 쥐어짠 것처럼 지끈거렸으며, 그 와중에 졸음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눈꺼풀을 제대로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공항버스에서 막 내리자마자 찬란하게 빛나는 런던아이가 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는데,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겨주는 듯이 느껴졌다. 런던아이와 빅벤이 보이자마자 정말 집에 왔구나라는 생각에 포근한 안도감이 온몸을 휘어 감쌌다. 새삼 (지금 상황이 절망적이란 뜻은 전혀 아니지만) 절망을 버틸 수 있는 힘은 고지가 눈앞에 있음을 아는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낀다. 끝이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마라톤은 마라토너를 지치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강사 초창기 시절, 나를 착취했던 학원에서 일하는 동안 매우 강하게 느꼈더랬지.

아무튼 지금 나는 집이 코 앞에 있음을 알기에, 배터리가 1%밖에 남지 않은 이 몸뚱이를 이끌고 힘내어 걸어가는 중이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꽉 찬 이틀을 보냈더니 꽤 긴 시간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해리포터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갔던 에든버러.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해리포터 분위기를 한껏 만끽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야말로 한여름밤의 꿈과 같았던 여행이었다. 낭만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도시, 에든버러. 육신이 좀 고생하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값진 추억을 정신에게 돌려주었으니 둘 사이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런던살이가 내게 holiday였다면 에든버러에서의 이틀은 마치 daydream과도 같았다. 그것도 아주 달콤하고, 너무 생생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꿈 말이다.


에든버러의 여름은 매년 축제로 들썩들썩하다고 한다. 다음에는 초록 잎이 우거진 싱그러운 에든버러 거리를 거닐 수 있길 바라며, 에든버러의 페이지는 여기서 이만 접도록 하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5] 신비로운 마법세계 같은 도시 에든버러 구석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