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stakovich | String Quartet No. 4
런던에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여러 공연장 중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으로 'Wigmore Hall(위그모어 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런던 메릴본 지역에 위치한 이 공연장은 특히 실내악과 같은 소규모 연주회에 특화되어 있으며, 공연 기획 및 연주자 섭외에 있어서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하여 나 역시 런던에 머무는 동안 위그모어홀에서의 공연에 한 번 이상은 꼭 참석하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그렇게 Jerusalem Quartet(예루살렘 콰르텟)의 리사이틀에 참석하게 됐다.
예루살렘 콰르텟은 그 창단 역사도 꽤 깊고, 창단 이래로 현재까지 꾸준히 음악계에서 호평을 받아오고 있는 우수한 사중주단이다. 특히 쇼스타코비치 곡 연주에서 그들만의 개성과 깊이가 두드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번에 내가 참석하는 리사이틀에서 바로 이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제4, 5, 6번을 연주하였으니 관객인 나로선 운이 아주 좋았다.
나는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그의 음악은 마치 '웃는 가면을 쓴 울고 있는 사내'와 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이는 음표 아래에 음울하고 날카로운 메시지가 숨죽여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상반된 두 심상이 공존하며 빚어내는 뒤틀린 이미지가 내겐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이를 통해 개인적인 위로를 받기도 하고 말이다.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내가 좋아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쇼스타코비치 연주에 능한 우수한 현악사중주단이 들려주는 공연이라니,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 차지 않을 수가 없는 저녁이었다.
예루살렘콰르텟은 격정적인 연주보다는 정제되고 섬세한 연주를 들려주는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그들의 음악이 지루한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은 관객을 다짜고짜 흥분시키고 빠른 속도로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감는 것이 아니라, 우아한 음색을 통해 오히려 그 음악이 품고 있던 메시지에 관객이 직접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이러한 그들의 연주 방식은 그야말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특성과 아주 잘 어울리니, 쇼스타코비치 곡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 세간으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흐름이 아닌가 싶다. 이 날의 공연은 제4번 곡으로 시작하여 5번을 지나 6번으로 마무리되었는데, 특히 마지막 6번 곡을 통해 앞서 표현한 바 있는 '웃는 가면을 쓴 울고 있는 사내'와 같은 심상이 강렬하게 두드러지면서 내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당시에야 런던에서 속 편히 놀고먹고 지내는 처지였으니 그 감정의 고조가 덜하였지만, 만약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그 여파가 훨씬 컸으리라 예상한다.
곡 그 자체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연주자의 해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듣는 이에겐 그 음악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정도의 감동이 겨우 전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둘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상승효과를 발휘한다면 듣는 이에겐 뜻하지 못한 감동이나 충격이 전해지기도 할 것이다. 이 날의 공연은 후자에 가까웠고, 평생 동안 남을 위그모어홀에서의 나의 첫 경험을 아름다운 것으로 추억할 수 있게 됐다.
비로 축축이 젖은 달빛이 유리창 아래 놓인 내 얼굴 위로 아른거리는 깊은 밤, 매우 야심한 시각까지 그날의 연주의 여운을 홀로 곱씹다가 빗물이 흙에 스며들듯 나도 스르르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