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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Oct 21. 2023

그네 타기와 슈만 피아노협주곡 = “씩씩하게 전진!”

R. Schumann | Piano Concerto, Op. 54



좋아하는 슈만의 곡들을 들으며 한강 공원을 산책하던 길에 작은 놀이터를 발견하곤 반갑게 뛰어갔다. 그네를 타기 위해서다.


나는 그네 타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놀이터를 발견하면 괜히 그곳에 가 그네를 꼭 타 보곤 한다. 놀이터에는 그네뿐만 아니라 시소, 흔들의자, 구름사다리, 미끄럼틀 등 재미있는 놀이기구들이 여러 가지 다양하게 있지만, 나에게 있어 그네는 여타의 놀이기구들과는 달리 조금 더 특별한 의미와 애정을 투사하게 되는 놀이기구다.


그네의 어떤 점이 내게 그리도 좋은 것일까.

모두 알고 있다시피 그네는 두 줄 끝에 달린 작은 의자에 앉아 몸을 앞뒤로 움직여 타는 놀이기구다. 앞뒤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위아래로 움직이는 놀이기구이기도 한데, 나는 그네가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점에 조금 더 포인트를 두는 편이다.


그네를 타고 금방이라도 하늘에 닿을 것처럼 날아오르는 것도 좋고, 그네가 움직이는 높이에 따라 시야가 극적으로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도 좋다. 특히 두 발은 하늘을 향하고 등은 바닥을 향하여 있을 때 나의 시야는 하늘을 향하게 되는데, 짧은 순간이지만 이 순간의 시선이 참 좋다. 하늘과 내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 같달까. 또한, 그네가 빠르게 움직이며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시원함도 좋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른다는 점일 것이다. 그네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지금 이 순간처럼,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있어서도 높이 높이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도 같은, 막연하게 희망으로만 가득 찬 그 기분은 곧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미래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어린 시절로 말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많은 것들을 꿈꿀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란 확신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을 때라야 꿈도 꿔보고 도전도 해본다. 어른이 되면 좋은 의미에서는 현명해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반대의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일들에 쉽게 한계를 두게 된다. 환경이 이래서, 현실이 이래서, 조건이 이래서,....

그러나 어린 시절 우리는 어떠했는가? 내가 꿈꾸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 못 할 일이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설령 어떤 장애물이 나타난다 해도 내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내가 가는 길 누가 막을쏘냐!”였다.


이처럼 씩씩하고 희망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그네. 그래서 그네를 타는 일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잠시나마 근심이나 걱정 따위를 잊고 어린 내가 될 수 있어서 참 좋다.

우리는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때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장애물도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장애물을 돌아서 다른 길을 찾아가는 방법도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시작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측면을 보고 한계를 짓기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앞으로 한 발 내디뎌보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어린아이처럼.


한바탕 그네를 타고 내려온 나는 씩씩한 발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그네를 발견하기 전, 공원을 산책하던 때에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네에 올라탔을 때 서정적인 2악장을 지나 3악장으로 들어섰다.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서로 리드미컬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밝고 희망찬 분위기를 그려 나가는 선율이 그네가 반복적으로 상승하고 하강하며 빚어내는 리듬과 심상에 매우 잘 어우러졌다. 둘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 순간이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그네에서 내려온 후에도 며칠간 이 곡에 푹 빠져 지냈다. 그네를 타고 있지 않더라도 이 곡을 듣는 것만으로 희망과 기쁨의 단꿈에 젖어드는 것 같았다.


우연히 발견한 ‘그네와 슈만 피아노협주곡의 조화’. 앞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이 없고 불안할 때, 나는 그네에 달려가 이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것이다.


공원 한가운데서 발견한 반가운 그네, 그리고 그네 타며 마주보는 하늘.






피아니스트 Krystian Zimerman과 Herbert Von Karajan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Schumann의 Piano Concerto in A minor, Op. 54 유튜브 영상을 첨부한다.♪


보고 있으면 동심이 솟아나는 그녀의 그림.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참 잘 어울린다. <Full of Flowers> by Eva Armi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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