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가을에서 겨울로 변화해 가는 시기가 되면 현악기의 소리가 유난히 깊어지고, 가슴에도 깊이 전달되는 듯하다. 지나고 보니 11월에 간 세 번의 공연 중 무려 두 번의 공연이 바이올린을 주축으로 한 듀오 리사이틀이었으니, 본능적으로 이쯤 되면 현악기 소리를 즐겨야 한다고 몸이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날의 공연은 미도리 고토(五嶋みどり, Midori Goto)의 바이올린 리사이틀로, 앞서 관람했던 장 기엔 케라스 & 알렉상드르 타로 듀오 리사이틀처럼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 둘이 함께 음을 빚어내는 듀오 방식의 공연이었다. 함께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는 이에바 요쿠바비추테(Ieva Jokubaviciute)라는 이름의 다소 생소한 연주자였는데, 미도리와 함께 주고받는 리듬의 밀당이 꽤 좋았던 터라 그녀의 연주 첫 감상이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았다. 두 사람의 합이 꽤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더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두 사람이 음악 파트너로서 함께 해 온 세월이 꽤 오래됐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어디선가 주워들은 거라 확실치는 않다.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대중적인 것 같으면서도 낭만적이고, 연주자의 기량을 아쉽지 않게 잘 보여주도록 설계된 것 같아 부담 없이 즐겁게 듣기에 좋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5번으로 친숙하게 시작하여, 슈베르트 환상곡으로 미도리의 음색을 여실히 보여주고, 풀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미도리의 기량을 한번 쫀득하게 뽐내준 뒤, 클라라 슈만과 로베르트 슈만의 각각의 로망스로 듣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고, 마지막으로 슈베르트 론도 브릴란테로 강렬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무대로 걸어 나오던 미도리의 모습은 요정처럼 아담하고 야무진 느낌이 들었는데, 그녀의 연주 또한 그처럼 단단하고 세밀하게 응축된 느낌이 드는, 여리고 아담하면서도 야무진 음색을 지녔다. 딱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정교하게 잘 정리된 연주였다. 프로그램 구성도 그렇고, 미도리의 연주 특징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듣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부드럽고도 단호하게 다가가는 모양새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내 주변 객석만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관객 평균 연령대가 평소보다는 조금 되는 것 같았고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연주회가 모두 끝난 뒤 나와 바라본, 온통 검붉은 빛으로 물든 예술의전당의 서늘한 풍경은 새삼스레 흐르는 세월과 시간에 대해 생각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몇 번의 계절이 더 바뀌고 난 후에야 나의 인생에 마침표가 찍히게 될까. 내 인생은 어떠한 계절로 마무리될 것이며, 어떠한 색깔로써 남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