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질 좋은 오페라 공연의 관람 기회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는 더욱 관람 기회가 희박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느리지만 조금씩 꾸준히 오페라에 대한 수요 및 공급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2024년 <탄호이저> 전막 공연에 이어, 약 1년 뒤인 2025년 말에도 <트리스탄 이졸데> 전막 공연이 이뤄진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길이 수정을 위하여 약간의 편집이 수반되기는 했지만 전막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이다. 앞으로 질 좋은 오페라 공연이 계속해서 더욱 확대 및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사실 지난해의 <탄호이저> 공연은 그다지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는 없던 터라 금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공연에 대해 기대로 한껏 들뜨면서도 불안과 긴장 한 움큼이 들뜬 마음을 은근히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난 뒤, 작년 공연의 실망에서 비롯된 걱정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끼며, 깊은 감동과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이 가슴 안에 가득 찼다. 물론 금번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시 아쉬운 부분들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호연이었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가수와 오케스트라의 퍼포먼스가 우수했다. 긴 시간 동안 거슬림 없이 극으로의 몰입을 도운 서울시향의 연주(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를 리드한 지휘자 얍 판 츠베덴)와 주조연 가수들의 훌륭한 노래 및 연기가 작품의 감정선과 철학을 안정적으로 잘 전달해 주었다. 오, 감정선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트리스탄 역을 맡은 테너 스튜어트 스켈톤은 나로 하여금 극으로의 몰입을 자주 방해하곤 했다. 극 중 트리스탄이라는 캐릭터는 전장에서 공로를 세운 건장한 청년이자 이졸데의 호감을 얻는 매력적인 남성이어야 할진대, 무대 위에는 캐릭터 설정 붕괴현상이 일어난 듯한 트리스탄이 서 있었다. 옷이라도 좀 가볍고 멋진(?) 걸로 입혀 주었으면 더 나았을까 싶기도 하고, 극 내내 이졸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렇고, 한편 이졸데는 자신에게 반하지 않은 남성에게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 것인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기도 하였다. 트리스탄이 이졸데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분명하나, 이것저것 계산해 보고 그쯤 하여 (극 초반부에) 딱 선을 그었던 건 결국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르케 왕과의 신의를 저버릴 만큼 이졸데에게 반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자기를 봐달라고 칭얼대는 이졸데에게 달려가 당장에 입 맞출 만큼 이졸데에게 반하지 않은 것이다. 이졸데를 보면서 지나간 나의 흑역사라고 해야 할까, 지나간 사랑 역사라고 해야 할까(사실 ‘사랑’이란 수식어를 붙일 만큼 대단한 감정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나의 경험을 떠올리고 되돌아보게 됐다. 확실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판단의 옳고 그름과, 현명하고 어리석음에 대해 빠르고 명확한 분석이 가능해지는구나. 뜬금없지만 이래서 문학이 좋다. 자기 객관화의 기회를 제공해 준달까.
이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우주’라는 새로운 배경 설정으로 작품을 재해석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참신하고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원작의 ‘낮 vs 밤’의 이분법적인 관점을 해체하여 ‘존재 vs 소멸’이라는 새로운 구도로 사랑을 바라보게 만드는 시도였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사랑과 갈등 앞에서, ‘죽음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라는 누군가의 문장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는 한편, 사랑은 행복인가 고통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됐다. 내게 있어 사랑은 글쎄… 즐거운 순간도 물론 제공하지만 전반적으로 총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방향보다는, 내 평화를 깨트리고 결과적으로는 총 고통지수를 높여주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그래서 사랑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딱히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평화롭고 싶달까.
과연 ‘사랑의 묘약’이 개입한 이 둘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있는 것일까. 만약 그들에게도 이성적인 판단 하에 행복과 고통이라는 주제를 두고 고민해 볼 기회가 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음악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이런 재밌는 작품을 만들어낸 바그너란 사람은 새삼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