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ria Oct 26. 2023

이 가을에, 드보르작. 그리고 미샤마이스키와 장한나.

Dvořák | Cello Concerto & Symphony No.9



연주하는 곡 나름이기는 하겠지만 대개 첼로 연주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 선율이 듣는 나의 심장을 섬세하게 결결이 찢고 다시 보듬어 매만져 놓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듯하다. 내게 있어 첼로는 ‘애수’를 빚는 악기와 같이 여겨진다.

첼로만이 표현해내는 특유의 감정과 음색의 힘일까, 첼로 협주곡이라는 이름을 단 곡들 중에는 정말이지 하나같이 인상 깊은 좋은 곡들이 많다.



이렇듯 여러 쟁쟁한 첼로협주곡들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라고 불리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B.191>’. 명작곡가 브람스(Johannes Brahms)도 이 곡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이며, 드보르작 본인도 이 곡에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고 하니 음악을 듣는 감상자들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의 귀에도 매우 훌륭한 곡임이 분명하다. (물론 브람스는 원래 드보르작의 음악을 좋아했으며, 오랫동안 그의 작곡 활동을 지지하고 조력해 온 사람들 중 한 명이기는 하다.)



나는 이 곡이 드보르작의 순정을 꾹꾹 눌러 담아낸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바로 2악장과 3악장에 넣은 특정 선율 때문이다. 드보르작의 첫사랑이었지만 결국엔 그의 아내가 아닌 처형이 된 요세피나. 그녀가 가장 좋아했다는 가곡 <Lasst mich allein (from 4 Lieder, Op.82, B.157) >의 주제 선율을 이용해 2악장을 꾸리고, 마지막 3악장에도 또 한 번 동일한 선율을 등장시킴으로써 드보르작이 요세피나를 향한 그 자신의 순정과 그리움을 이 곡 안에 녹여낸 것이라고 여겨봄직하다. 드보르작이 2악장에 그 선율을 넣을 당시 요세피나가 심각한 병중에 있었다고 하니, 여름의 모든 뜨겁고 싱그러웠던 존재들이 안녕을 고하는 이 가을에 이 곡의 심상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 모든 뜨겁고 열정적이고 싱그럽고 반짝반짝 빛나던 모든 존재들이 안녕을 고하는 가을. 그러한 가을에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과 9번 교향곡을 명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와 디토 오케스트라(지휘 : 장한나)의 연주로 듣기 위해 또 여느 때처럼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예술의 전당은 사계절 중 가을에 가장 빛나는 공간인 것 같다. 약 10년의 시간 동안 매 주말마다 음악을 듣겠다고 뻔질나게 예술의 전당을 드나들며 축적되어 온 그 기억들의 더미 속에서 언제 건져 올려도 가장 선명함을 유지하는 기억 조각들은 대개 다 가을에의 것들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 ‘가을의 예술의 전당’의 시간이 찾아왔으니 참 반갑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누리는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과 신세계교향곡이라니!


가을의 예술의 전당





1부에서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협연자로서 첼로 협주곡 연주를 함께했다. 좋은 곡이 무색하게 첼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서로 잘 어우러지지 않는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웠다. 원래 공연장에서 듣는 첼로 협주곡에선 첼로 소리가 음반을 통해 듣는 것만큼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단순히 그러한 문제라기보다는 조화의 부족을 느꼈으니 그 연주에 아쉬움이 못내 가시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협주곡 연주가 끝나고 첼리스트는 독주 앙코르곡으로 J. S. 바흐의 Cello Suite No.2 중 Sarabande를 연주해 주었다. 노장들의 연주에서 찾을 수 있는 관록과 우아한 절제미를 미샤마이스키의 첼로 연주에서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에 귀 기울이는 시간 동안 인생에 대한 관조에 잠기게 하는 연주였으니 곡이 끝난 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인생의 덧없음에 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마음 상태로 공연장 근처를 산책하다가 다시 2부 감상을 위해 들어왔다.



2부에서 특별히 느꼈던 점은,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만큼은 이 자리에서의 음향이 매우 좋았다는 점이다. 2부의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을 듣던 중 눈이 뻑뻑하여 잠시 눈을 감았는데,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음들이 두둥실 천장으로 떠올라 나에게 날아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로, 느린 템포일 때는 음들이 넘실넘실 호수의 물결처럼 날아오고, 빠른 템포일 때는 음들이 마치 거대한 폭포수처럼 나에게 콸콸 쏟아지듯 날아왔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악기의 움직임에 따라 악기 끝에서 음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여 좋았고, 다시 눈을 감으면 음들이 다양한 움직임으로 나에게 날아오는 것 같아서 매우 재미있었다. ‘교향곡 9번에 대한 연주’가 좋았는지 생각해 본다면 분명 아쉬움이 있는 연주였다. 특히, 각 악기의 장점들을 조금 더 섬세하게 살리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내가 예매한 좌석의 위치상, 조금 과하다 싶은 강도와 템포가 결과적으론 내게 한 악기마다 각자의 음들이 나에게 날아와 꽂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었으므로 이것은 긍정적으로 보자면 꽤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은 워낙 유명하여 공연장에서 자주 연주되는 편이기도 하고, 일상에서도 심심찮게 접할 기회가 많아 꽤 자주 들었기에 지겨워질 만도 한데 언제 들어도 드보르작 특유의 건강하고 맑은 에너지가 느껴져 참 좋다. 방탕함이나 쾌락과는 거리가 멀었던, 성실하고 건실하게 한평생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드보르작. 작곡가의 그러한 건강한 에너지가 그의 음악에도 배어있기 때문일까. 그의 음악에는 확실히 듣는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더 큰 곳, 또는 꼭 크지 않더라도 또 다른 어딘가로 나아간다고 해서 그곳에 항상 더 나은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이를 통해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값진 것들이 있다. 큰 결심 끝에 건너갔던 미국에서의 시간이 드보르작에게 행복만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은 드보르작의 창작활동에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언제나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는 선택을 지향해 왔고 그 과정에서 항상 무언가를 배웠기에 나의 선택들에 대해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번에도 또 한 번 다른 곳을 향해 나가보려고 한다. 그곳에 낙원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배우고 또 배워서 ‘나’라는 사람을 양껏 채우고 싶을 뿐이다.






Dvorak의 <Cello Concerto in B minor>. Mischa Maisky가 첼로를 연주하고, Jacek Kaspszyk가 지휘하는 Warsaw Philharmonic의 연주 영상을 첨부한다.♪


Dvorak의 <Symphony No.9>. 그중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4악장만의 영상을 첨부해 본다. Gustavo Dudamel이 지휘하는 버전이다.♪





잠시 휴식을 위해 머지않아 런던으로 떠날 예정인 나의 마음은 이미 런던에 가 있다. <Big Ben> by Andrè Derain


매거진의 이전글 슈만과 시인의 사랑, 그리고 심준호 첼로 리사이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