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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Oct 30. 2023

옥석을 닦아 빛을 내주는 스승과 그 제자

F. Schubert | D.947 "Lebensstürme"



올해부터 나의 이목을 끈 젊은 피아니스트가 있으니 그는 ‘박재홍’이다. 2021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1위를 한 바 있는,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출신의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인 그는 김대진(현 한예종 총장) 피아니스트를 사사하였다. 사제관계인 ‘김대진-박재홍’ 두 피아니스트가 함께 듀오 리사이틀을 진행한다고 하니 이 연주회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연주곡 프로그램 또한 구성이 좋아서 도저히 가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모짜르트의 <두 대를 위한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하여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 <인생의 폭풍> 그리고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두 곡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에는 다른 무엇보다 특히 두 사람이 피아노로 연주할 드보르작의 슬라브무곡이 매우 궁금했다.



이 글 바로 직전에 쓴 글에서도 드보르작에 대해 언급하였듯, 음악인으로서 건실하게 정진해 온 작곡가의 건강한 에너지가 배어있어서인지 내게 드보르작의 음악은 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 결국 그 주체가 ‘사람’인지라 그 활동의 객체에는 주체자 고유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AI가 만들어내는 예술에는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이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나는 드보르작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며, 또한 오늘 이야기하는 이 피아니스트의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모짜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448>로 연주의 시작을 명랑하게 알렸다. 곡 자체의 밝고 명랑한 기운의 효과인지 무대와 객석에도 사랑스럽고 유쾌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어 슈베르트의 D.940과 드보르작의 슬라브무곡 Op.48 그리고 Op.72를 지나 어느덧 이 애틋한 듀오 연주회의 끝을 알릴 마지막 곡의 차례가 되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인 슈베르트의 D.947 연주가 끝날 무렵 박재홍 피아니스트는 곡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여 열 손가락이 그 동작을 멈춘 후로도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건반 위를 흐느끼며 미끄러지고 있는 듯 보였고, 김대진 피아니스트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곡을 그려나가다가 초연히 모든 것에 대한 마침표를 찍는 듯 보였다. 같은 곡을 함께 연주하고 있는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에서 각자의 성격이 묻어나는 것 같아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곡에 담긴 상반된 정서를 각각 도맡아 효과적으로 드러내어주고 있는 것 같아 두 연주자에게 잘 어울리는 엔딩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스승과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가 한 무대에 함께 서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멋져 보이면서도 뭉클했다. 옥석을 알아보고 그 옥석이 영롱한 광채를 낼 수 있도록 잘 닦아준 스승도 멋지고, 그 스승의 가르침을 잘 헤아려 자신의 온전한 광채를 찾아낸 제자도 멋지다. 이 사제를 보고 있으니 나 역시 학생들이 제 빛을 찾아낼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연주도 연주지만 이번 공연은 감상 후 귀갓길에 긍정적인 에너지와 의지를 품고 떠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내게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이 젊은 피아니스트 박재홍 씨가 장차 나이 들어감에 따라 어떠한 음악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때마침 유튜브에 김대진 & 박재홍 두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한 드보르작의 슬라브무곡 Op.72 일부 영상이 있어 첨부해 본다. 4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영상이다.♪


이 연주회의 프로그램상 마지막 곡이었던 슈베르트의 <Allegro in A Minor Op.144, D.947 'Lebenssturme' >에 대한 영상도 첨부한다. Evgeny Kissin과 James Levine이 연주하는 버전이다.♪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 by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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