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ria Feb 10. 2024

미안하지만 네게 줄 환희는 없단다?

L. V. Beethoven | Symphony No.9



친구들이여. 좀 더 기쁨에 찬 선율을 노래하자.

합창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본격적인 환희의 송가가 시작되기 전 바리톤의 외침을 통해 울려 퍼지는 가사(의역)이다.

*원가사
O Freunde, nicht diese Töne!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Sondern laß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좀 더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교향곡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 합창교향곡 9번은 전체 길이가 매우 길기도 하고, 화려하지만 한편으론 다소 요란하다고 느껴져 평소엔 거의 듣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캐럴을 찾아 듣듯, 어김없이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인형 발레 모음곡과 함께 이 곡을 떠올리게 된다.


단독주택이 아닌 집에서 적정 음량으로 맞춰 듣기에는 꽤 역동적인 음폭 변화를 보이는 곡인지라 감상하기에 쉽지 않아, 연말마다 연례행사처럼 이 곡을 연주해 주는 수많은 공연장들을 이용해 듣는다. 올해(2023 연말)에는 오래간만에 비구를 덮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헝겊도 모두 벗겨졌으니 더욱이 ‘합창’ 교향곡을 듣기에 좋은 때였다.


예매는 제법 이른 시기에 해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올해 나는 피에타리 잉키넨(Pietari Inkinen)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합창 연주회에 참석하였다. 예매할 당시 “크리스마스이브에 별 일정도 없을 것 같은데 나가서 음악이라도 듣고 오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찾아온 12월 24일, 나는 과거의 나 자신을 원망하며 맹추위를 뚫고 공연장까지 다녀왔다.


연말 기념일의 연주회장은 쾌활하고 정다웠지만 한편으론 산만하였다. 저마다 짝을 지어 온 사람들은 일행과 함께 즐거운 연말의 한 때를 그들의 추억 속에 아로새기고 있었다. 공기들이 방랑하듯 어수선하게 자리를 잡은 가운데 연주가 거행되었고, 그 어수선함이 꽤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라도 한 것인지 마지막의 화려한 합창이 포효하듯 공연장의 벽과 천장을 울릴 때조차도 내 마음에는 아무런 감동이 전해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3악장의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선율이 나의 마음을 간지럽혀 주었지만 으레 이 교향곡에서 기대하는 ‘벅차오르는 환희’와 같은 것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환희 없는 환희의 송가는, 어쩌면 나 빼고 모두가 향유한지도 모르는 환희, 정신 차리고 보니 황망하게 떠나가버린 후였다.

얼떨떨하게 연주회장을 빠져나와 뜨거운 쌀국수 한 그릇을 뱃속 가득히 채우고 집으로 향했다. 올해(2023년)의 환희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겠다.



Riccardo Muti(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Chicago Symphony Orchestra 연주, Camilla Nylund 소프라노, Ekaterina Gubanova 메조소프라노, Matthew Polenzani 테너, Eric Owens 베이스바리톤, Chicago Symphony Chorus 합창 - Beethoven Symphony No.9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2023. 12. 24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매거진의 이전글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고 했던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