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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Apr 10. 2024

'성숙'이란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노부스콰르텟.



런던앓이가 한창이던 때에 노부스콰르텟의 <브리티쉬 나잇>이라는 제목을 단 현악사중주 연주회 일정을 알게 되었다. 실력 있는 현악사중주단 노부스콰르텟이 연주하는 영국 음악이라니! 이건 꼭 가야만 해! 라는 생각으로 단박에 예매했다.


노부스콰르텟은 몇 년 전부터 멘델스존, 쇼스타코비치, 브람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전곡연주 프로젝트를 차례차례 진행해 온 바 있는데 올해는 (전곡연주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윌리엄 월튼, 벤저민 브리튼의 곡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런던 위그모어 홀 상주음악가로서의 이력이 반영된 곡 선정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영국 작곡가들의 현악사중주라니! 게다가 모두 근현대 작곡가들의 곡이니 참신한 매력과 재미가 가득한 시간이 꾸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연주회 당일, 참 애석하게도 나는 간발의 차로 지각을 하였다. 어떻게든 안 늦어 보겠다고 딱딱한 구두굽을 아스팔트 바닥에 퉁퉁퉁 울리며 열심히 달리다가 이내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들어간다 한들 차분하게 음악에 집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그냥 체념하고 걸어가는 쪽을 택했다. 거의 정각쯤 도착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닫힌 문 밖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첫곡인 에드워드 엘가의 현악사중주를 감상하였다. 한 곡 밖에 연주되지 않는 엘가를 놓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렇게 텔레비전으로나마 듣게 해 주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 말고도 늦은 사람들이 꽤 많아 다 같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송출된 음악을 들었는데 이 지각생들의 모임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다행히 엘가 곡 완주 후 윌리엄 월튼의 곡부터 콘서트장 내부에 입장할 수 있었다. 월튼의 현악사중주는 바이올린의 애절하고 구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극도로 돋보였는데 전반적으로 쇼스타코비치를 떠올리게 하는 우울하면서도 아름답고, 긴장감이 한껏 감돌면서도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곡이었다. 노부스콰르텟은 곡이 주는 이 긴장감의 밀당을 유연하게 이끌어나가며 화려하고도 강렬하게 4악장을 마무리지었다. 네 대의 현악기가 마치 늦어서 열심히 달려가던 나처럼 맹렬히 질주하다가 또한 체념하고 평정심을 찾았던 나처럼 막힌 응어리가 뻥 뚫리듯 시원한 엔딩을 맞이하였다.


인터미션 후 2부는 두 곡 모두 벤저민 브리튼의 곡들로 구성되었다. 벤저민 브리튼의 현악사중주 곡들은 현악기 소리의 재미에 풍덩 빠져볼 수 있는 곡들이었는데, 나는 노부스콰르텟이 현을 통해 빚어내는 리듬과 미묘한 소리 그리고 진동의 변화를 느끼며 동시에 머릿속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악장이 바뀔 때마다 나는 다른 색감의 물감들을 꺼내 들었고, 붓의 필치 또한 변화무쌍하게 캔버스 위에 이리저리 휘둘렀다. 곡을 들으며 동시에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런 경우는 곡이 리드미컬하고 재미있을 때에 일어나는 편인데 오늘 그들의 연주가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한결같이 진지한 연주를 들려주며 계속해서 성숙해 나가는 노부스콰르텟. 몇 년 전 IBK 챔버홀에서 노부스콰르텟의 연주를 듣던 기억이 문득 새록새록 나는데 오늘은 이렇게 콘서트홀에서 듣고 있다니 새삼스레 감동이 일었다.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 몇몇이 알려줘서 깨닫게 된 나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성장 집착인간(?)이라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 노부스콰르텟의 이러한 성장 역시 새삼 감동적으로 다가왔달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노부스콰르텟의 멋진 연주들을 기대해 본다.


Novus Quartet <British Night>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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