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Schumann | Op.48 & Op.42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유난히 슈만의 곡을 들을 기회가 많은 것 같다. 슈만을 좋아하는 나로선 연주 레퍼토리로 슈만이 선택되는 일이 느는 것에 대해 반가울 따름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아쉬운 연주를 경험하는 일도 덩달아 늘어나기에 한편으론 슬프기도 한 양가감정이 들지만… 어쨌든 슈만 곡이 연주된다고 하면 기쁜 마음이 우선하여 든다.
이번 공연은 <그녀와 그>라는 주제로 소프라노 이명주, 테너 김세일, 그리고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여인의 사랑과 생애, Op.42’와 ‘시인의 사랑, Op.48’을 들려주는, 슈만의 가곡을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앞서 베이스 연광철 선생님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님의 슈만 ‘시인의 사랑’ 연주를 매우 만족스럽게 관람하고 온 바가 있어, 두 연주회의 각기 다른 매력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공연장 안에 착석하여 공연 전의 분위기를 살펴보는데 오늘은 왠지 초대되어 온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관크를 제대로 경험하겠구나 싶은 슬픈 예감이 잇따랐다.(정말 초대 손님들이 많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날 실제로 관크에 혹독히 시달리기는 했다.)
1부의 시작은 조재혁 피아니스트 솔로의 '아라베스크 Op.18' 연주로 이루어졌다. 이전에 수차례 좋은 연주를 들려주어왔던 조재혁 님이기에 내 기대치가 높았던 탓일까? 크게 인상적이지 않은 연주였고, 입에 맞지 않는 아페리티프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후 화사한 진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이명주님이 등장하여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노래하기 시작하였는데, 앞선 아페리티프의 맛이 떠오르지 않게 해주는 감미로운 요리와 같았다. 첫 번째 곡의 가사부터 너무나 깊이 공감되어 마치 내 얘기인 양 즐겁게 들었으나 결국 ‘그녀’는 ‘그’와의 결혼에 성공했으니 그때부터는 남 얘기 듣듯 들었다. 하하. 그 여인에게는 행복한 삶이었을 테지만 나의 기준에서 바라보기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만 모든 것을 건 생애였던 것 같아 그녀의 이야기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주님의 노래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훌륭한 노래에 풍부한 연기까지 더해져 특히 초반보다는 중반부,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노래하실 때 더욱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2부의 시작 역시 피아니스트 솔로의 '헌정, S.566' 연주로 이루어졌는데 이 또한 1부 솔로와 같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피아노 솔로 후 곧바로 김세일 님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시인의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슈만의 가곡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시인의 사랑’을 듣고 난 후였던 만큼 무척 좋아하는 연가곡집이기에 감정 이입도 더욱 잘 되었고, 김세일 님의 훌륭한 노래 덕분에 듣는 내내 정말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연광철 선생님의 홍삼캔디 향 나는 묵직한 ‘시인의 사랑’과는 또 다른 매력의 젊은 멋쟁이 ‘시인의 사랑’이었다.
비록 두 번의 반주 모두 내게는 다소 아쉬움을 전해주었으나 두 번의 노래 모두 황홀감을 선사해 주어서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았다. 다만 앙코르 때에는 관크가 더욱 심해져 아름다운 노래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정도였으나 무대 위 연주자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자 끝까지 자리에 남아 견뎠다. 소프라노 이명주님, 테너 김세일 님의 노래를 이보다는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기회가 머지않은 미래에 있기를 바란다.
테너 김세일이 노래하는 Robert Schumann의 Dichterliebe(시인의 사랑) Op. 48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