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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혼돈의 <투란도트>

Puccini | <Turandot> "Nessun dorma"

by Daria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감히 이 작곡가를 빼놓고 논할 수 있을까. 불귀의 객이 되고야 말았던 1924년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현대에까지 여전히 널리 상연되는 여러 오페라 명작들을 만들어냈던 그는 바로 ‘푸치니(Giacomo Puccini)’. 현대의 영화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푸치니답게, 또한 베르디를 이어 이탈리아에서는 당대 최고의 인기 오페라 작곡가이기도 했던 푸치니답게, 그의 오페라는 그야말로 심금을 간질간질 간질이는 한 편의 서정적 드라마다. 물론 그의 오페라 작품들 중에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내용들이 꽤 많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음악만큼은 정말이지 듣는 이에게 어떤 서사든 다 납득시켜 줄 수 있을만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푸치니가 작업 도중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직접 온전한 마무리를 짓지 못한 그의 마지막 작품 <투란도트>는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과 그간의 경력에서 쌓인 연륜이 환상의 결합을 이뤄낸 명작이라 할 수 있는데, 투란도트 연주 음반은 아무리 들어도 좀처럼 질리지가 않을 정도이다. 물론 투란도트의 아리아 중 가장 유명한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부른 테너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의 공로가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지만 말이다.


푸치니의 마지막 역작인 <투란도트>가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올해 하반기에만 두 차례의 국내 대규모 공연이 이뤄지는데 그중 한차례가 지난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되었고 오늘은 그를 다녀온 이야기를 이어나가보고자 한다. 이 공연은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버전을 그대로 들여왔음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지휘자와 무대 연출가를 섭외함으로써 공연 한참 전부터 국내에서 꽤 화제였으며 나 역시 그로 인한 기대 반, 그리고 공연장소에 대한 걱정 반으로 어쨌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찾았다. 그러나 공연 전부터 내심 우려했던 바는 과연 사실로 드러났고, 비단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했던 수많은 관객들이 동일한 불만을 안고 집에 돌아가 이 공연은 이후 또 다른 화제가 되고야 말았다.


우선, 해당 공연에서 느꼈던 좋은 점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겠다. 아레나 디 베로나 무대의 초호화 세트장을 떼어와 이곳 KSPO 공연장에 구현했다고 하더니 정말 무대의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시각적으로 풍성한 즐거움을 주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무대 규모와 정교한 무대 연출에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 2막 무대는 이보다도 더욱 화려하여 청각뿐 아니라 시각적인 만족감을 충분히 채워 주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매우 훌륭하였고 가수들의 노래 또한 아주 좋았다. 투란도트 역을 맡은 옥사나 디카(Oksana Dyka)의 노래는 1막에서 2막 전반부까지만 해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으나 뒤로 갈수록 목이 풀렸는지 아주 훌륭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사실 투란도트의 아리아들이 워낙 고성 대잔치라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열악한 이 공연장에서 이 정도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칼라프 역의 마틴 뭴레(Martin Muehle) 역시 끊임없이 대중가요 소음이 합주를 자처하는 이 환경 속에서 우수한 노래와 연기를 이어나갔다. 개인적으로 류 역의 마리안젤라 시실리아(Mariangela Sicilia)의 노래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녀는 1막부터 3막까지 기복 없이 안정적으로 아름답고 편안한 노래를 들려주며 납득하기 어려운 류의 사랑 서사 따위에도 기어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자, 이제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좋지 않았던 점들에 대해 펜을 놀려 보겠다. 이 모든 것은 관람 전부터 우려했던 이 공연 장소의 공간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오페라를 공연하기에는 음향 환경이 적합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가수들의 노래 모두 훌륭한 흔치 않은 공연이었는데 공연장 특성상 소리가 너무 거칠고 투박하게 객석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주말마다 대중음악 위주의 크고 작은 콘서트들이 열리는 공연장들이 한데 밀집되어 있는 이 올림픽공원 단지에서는 네 공연 내 공연 할 것 없이 이들의 합주가 공연 내내 끊임없이 펼쳐졌다. 두 번째, 플라스틱 싸구려 접이식 좌석의 불편한 착석감은 그렇다 치고, 누군가 움직일 때마다 끊임없이 “삐걱삐걱” 소음을 만들어내는 통에 수많은 관객들로 빼곡한 이 공연장 안은 공연 내내 귀를 긁는 “삐걱삐걱” 또는 “쿠당탕” 소리로 가득했다. 세 번째, 절로 정숙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의 공연장이 아니라 올림픽체조경기장이어서인지 많은 관객들이 흡사 야구 경기 관람하듯 공연을 감상하여 굉장히 산만했다. 머리 위 박수를 치고 음악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둠칫둠칫 춤추는 아이들을 전혀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 끊임없이 부스럭대며 봉지 과자를 먹는 관객들, 장면 하나하나 해설을 자처하는 관객들, 공연이 한창인데 인증샷 또는 영상을 찍는 관객 등… 도무지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 2막이 끝나고 그냥 귀가할까 말까 고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고민하는 동안에 어느덧 인터미션이 흘러가버려 정신 차리고 보니 3막이 시작된 공연장 객석에 앉아 후회와 함께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힘겹게 버텼다. …세 번째까지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1막이 끝난 후 막 전환을 위해 아주 잠시 소등이 되었는데 그때 대규모의 관객들이 앞다투어 자리이동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 공연은 티켓 가격이 매우 높기도 했지만 좌석 등급별 금액 차이도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그래서인지 입장 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금액대가 높은 좌석은 공석이 많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금액의 좌석을 구매한 수많은 관객들이 막간을 틈타 그보다 훨씬 높은 금액의 좌석으로 너도나도 아무렇지 않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시민성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하여 인터미션 때 관계 직원에게 문제점을 전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조치를 취하는 시늉조차도 보이지 않은 채 변함없는 카오스 속에서 3막이 진행되었고, 나는 그저 아까운 시간을 날렸구나 생각하며 그날의 공연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렸다. 그러나 그 후 많은 관객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주최 측으로부터 재관람 티켓을 제공해 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러나 재관람한다고 뭐가 다를까… 나의 소중한 시간을 또다시 낭비하고 싶지 않아 재관람은 가지 않았다.


공연을 보았던 그날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그 공연, 이 글을 쓰겠다고 잠시 기억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끄집어냈는데 이제 다시 쓰레기통으로 돌려보내 주어야겠다. 잘 가렴.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오페라 <투란도트> 커튼콜.




모두가 아는 세계적인 테너 Luciano Pavarotti가 부르는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 영상의 유튜브 링크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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