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음악이 이미지가 되는 마법. 박재홍 피아노리사이틀.

Rachmaninoff | Piano Sonata No.1 Op.28

by Daria


응원하고 기대하는 피아니스트가 새 음반이자 첫 단독 음반을 냈는데 무려 스크랴빈의 전주곡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소나타 1번을 담았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신의 공식 단독 음반에 스크랴빈 담는 사람치고 연주 별로인 사람 못 봤다. 게다가 그는 직업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오래되거나 나이가 많은 연주자도 아닌데 그러한 신진 아티스트가 첫 음반의 수록곡으로 이들을 택한 것이 자못 당돌하고도 멋지다. 그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그를 지지하는 나의 ‘안목’이 제법 괜찮은가 보다 싶다. 정말이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연주자다.


(사실 내가 너무 늦게 글을 쓰게 되어 오늘 이야기하는 연주회의 시기는 좀 지나긴 했다만...)

여름의 기세가 꺾일 쯤의 어느 날, 그의 음반 발매를 기념하여 열린 리사이틀에 그의 신보를 품에 안고 발걸음하였다. 그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관객들에게 스크랴빈 24개 전주곡과 판타지 28번,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소나타 1번을 들려주었다. 여름이 서서히 저물고 가을로 넘어가려는 계절의 낭만이 한껏 서린 저녁이어서였을까. 그의 연주는 음반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깊게, 아니 그보다는 농밀하게, 다가왔다. 그가 건반을 섬세하게, 하지만 또렷하게 눌러 나가며 연주회장을 메운 선율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한 인간의 하나의 삶 전체의 파노라마를, 그리고 삶의 유한성을 머릿속에 그려 나갔다. 그가 전하는 음악의 길을 따라가는 동안 내 안에 펼쳐진 심상에는 똑똑똑 떨어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세찬 비가 되어 후두둑 쏟아지고, 창가에 앉아 그 비를 가만히 쳐다보던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체념했다가, 또 갑자기 욕망과 번뇌가 번뜩였다가, 또다시 해탈했다가를 번복하며, 마치 물통에 떨어진 수채화 물감처럼 방 안을 옅게 물들이던 작은 촛불의 불꽃 하나가 서서히 퍼져나가 온 방을 집어삼킬 듯 장악하고 종국에는 처음부터 둘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였다는 듯 이전의 형태를 소실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폭풍우는 눈이 되고 그 역시 어느샌가 봄비가 되어, 소실된 빈 터에도 다시 새순이 돋아난다. 그렇게 이 모든 과정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그의 음악을 듣는 동안에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격동적인 듯 단순한 것, ‘삶’을 보았다.


큰 키와 다부진 체격, 큰 손에서 참으로 섬세한 음악을 뽑아내는 피아니스트. 앞으로 연륜과 경험이 한 겹 한 겹 더해지며 만들어질 그의 색깔은 무슨 색일지 기대된다.


커튼콜 그리고 사인회 때 찍은 피아니스 박재홍.




Rachmaninoff의 Piano Sonata No.1 in D minor Op.28 : 1악장 Allegro moderato, 박재홍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들어볼 수 있는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란과 혼돈의 <투란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