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Saëns | Danse macabre op.40
출근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쉬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예매한 연주회다.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의 연주는 그때껏 음반으로만 들어왔고, 그의 연주, 특히 협주곡보다는 피아노곡 연주를 매우 인상 깊게 여기고 있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꼭 실연으로 들어보고 싶었다. 어떤 잡지사에서 그에 대해 ‘리스트의 환생’이라고 표현한 바 있을 만큼 그는 피아노를 정말 ‘잘!’ 친다. 단순히 악보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구현해 낸다기보다는 무생물인 피아노에 생물학적인 영혼을 부여하는 느낌이다. 약간 마녀가 주술을 부리는 느낌이랄까. 혹여나 음반에서 느낀 그만의 연주 분위기가 실연에서는 느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기우도 내심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와 한 공기를 공유하는 공간에서 듣는 그의 연주는 오디오 기기를 통해 전해 듣던 연주보다 훨씬 더 뜨겁고 영묘했다. 그가 이 공연을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이 곡 저 곡, 이 작곡가 저 작곡가가 한데 섞여있는 프로그램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캉토로프의 리사이틀에서는 그러한 기호가 이 순간만큼은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어찌나 몰입하였던지 (인터미션 포함)약 두 시간의 시간이 마치 20분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잠시 마녀 캉토로프의 주술에 홀렸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기요, 오늘이 몇월 몇일 몇시 몇분입니까? 예?? 뭐라고요?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요? 여긴 대체 어디죠…?”와 같은 기분이었달까.
연주회가 끝난 뒤 캉토로프의 사인회가 진행되었다. 나 역시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집에서 음반 한 장을 야무지게 챙겨 왔지만 이 근처에 사는 친구와 저녁 약속을 잡는 바람에 사인받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워낙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언제나 회전초밥식으로 사인회를 진행하기에 어차피 연주자와는 말 한마디조차도 주고받기도 힘든 환경이라 굳이 그 긴 줄을 기다려 사인을 받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여유가 된다면 안 받을 이유도 없지만 말이다.
자기만의 연주 철학이 확실한 그의 단단한 연주가 참 인상 깊다. 한국에 또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