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 Mozart | Piano Concerto No.9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20대 초중반 시기에 가장 많이 찾아들었던 것이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 님의 모차르트 및 쇼팽 연주였다. 피레스 특유의 맑고 아름다운, 이 세상의 악과 어둠은 모두 물리칠 것만 같은, 이 세상에 축복을 내리는 천사의 목소리 같은 연주가 한창 뜨겁고도 미숙했던 내 어설픈 청춘 시절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마치 거친 야생 동물을 길들이듯 보듬고 다독여 주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피레스 님의 연주를 듣는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에 피레스 연주는 ‘때로는 천사 같고, 때로는 큰엄마 같고, 때로는 자기 전 마시는 바닐라우유 같은, 맑고 따뜻하고 예쁜 연주’로서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 인생의 보석함이라는 것이 있다면 분명 피레스 님의 음악과 함께한 기억으로 빚어진 맑고 영롱한 진주가 하나쯤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한 피레스 님의 연주를 내 인생 처음으로 직접 듣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다른 리사이틀과는 달리 가슴 깊은 곳에서 괜스레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리사이틀은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 10번, 13번, 그리고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피아노를 위하여로 채워졌다. 연주회장 안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첫마디가 또르르 물방울처럼 흐르는데 그 음색이 어찌나 맑고 또랑또랑하던지 분명 모차르트도 무덤 속에서 박수치며 듣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별로 힘도 안 들이는 것 같은데 어쩜 저렇게 또렷하고 맑은 소리를 낼까. 새삼 대가는 대가이구나, 이 짧은 연주 하나에 얼마나 깊은 내공이 담겨 있을까 감탄하며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연주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맑고 예뻐서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드뷔시 곡은 예쁜 선율 안에 오묘한 슬픔과 외로움이 은은하게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공연에서의 피레스 스타일의 드뷔시 연주는 적어도 내 취향에 있어선 아쉬움이 남는 연주였다.
피레스 님이 실제로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 나로선 알 길이 전혀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았을 땐, 피레스 연주는 그야말로 마리아 조앙 피레스라는 사람을 그대로 음악화해놓은 것 같았다. 맑고 깨끗하며, 따뜻하고 포근하고, 곱고 예쁜 음악. 매력적인 사람은 그가 풍기는 음악의 향기 또한 역시 매력적임을, 마리아 조앙 피레스 연주를 들으며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