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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함께 그리는 방랑자의 서사

by Daria


예술의전당에서 2024년 하반기에 세 차례의 보컬마스터 시리즈 공연을 기획했는데 그중 마지막을 장식한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공연이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공연에 있어 소개내용을 자세히 확인해보지 않고 주요 연주자와 레파투아 정도만 살펴보아 맘에 들면 "일단 Go!" 하는 편인데 이 공연 역시 레파투아도 아주 좋았고 사무엘 윤의 노래도 매우 듣고 싶은 마음에 예매했다. 공연 테마도 ‘보컬마스터’였고 공연 제목에도 ‘사무엘 윤’이라는 이름만 기재되어 있어서 당연히 성악과 피아노(또는 현악기) 반주 정도로 이뤄진, 사무엘 윤의 노래에 집중한 공연일 거라고 생각했다(어쩐지… 장소가 왜 오페라하우스인가 했다). 프로그램 중 교향곡들도 몇몇 눈에 띄긴 했으나 너무나 당연하게 가곡이나 실내악곡 형태로 편곡해서 어쨌든 초점은 가곡 독창회 성격에 맞추었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해 버렸다. 그러한 마음으로 찾은 이 공연은 내게 다소 당황감을 느끼게 했고, 전반적으로 좋기는 했지만 아쉬움도 제법 남았다.




고독, 슬픔, 혼돈, 절망과 죽음, 그리고 구원과 소망이라는 다섯 개의 테마로 구성된 이 공연. 대충 훑어봐도 부정적인 느낌이 지배적인 단어들인데 마지막을 희망적인 테마로 설정하여 나름 고진감래, 해피엔딩이다. 물론 ‘구원과 소망’이라는 것이 꼭 생의 지속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니 일단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는 해피엔딩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깜깜한 무대 위 한가운데 홀로 외로이 놓인 피아노 앞에서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슈베르트 방랑자환상곡 연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비록 이 방랑자환상곡 연주가 내 취향이 아니긴 했지만 이어진 사무엘 윤의 <방랑자> 노래가 참 좋아서 앞으로 전개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두 번째 테마부터는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사무엘윤의 드라마에 호흡을 맞추며 감성을 더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슈만의 가곡들을 사무엘 윤은 음색, 음처리, 감성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노래해 주었고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슬픔’에 깊이 몰입해 보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옆의 무용 때문에 이따금씩 산만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이 무용의 비중은 세 번째 테마에서 더욱 커져 점차 나의 귀를 멀게 했다. 감각적인 연출과 섬세한 무용은 분명한 볼거리였지만 온전히 노래에만 집중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여 ‘성악’에 초점을 맞춰 기대하고 온 나로선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네 번째 테마에서는 더욱더 무대 구성이 다채로워지고 현악사중주단 아벨콰르텟까지 등장하여 이 공연 전체 전개에 있어 가장 절정단계와 같다고 할 수 있었는데, 비록 성악에 비해 기악의 비중이 매우 높은 테마이기는 했지만 아벨콰르텟의 연주가 정말 좋았고 이 공연의 콘셉트와도 매우 잘 어우러졌다. 특히 이들이 연주해 주는 브람스와 말러의 교향곡은 오케스트라의 버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너무나 처연하고 아름다워 연주를 듣는 내내 나에게서 눈물을 자아냈을 뿐 아니라 이 공연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되었다. 이는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문제인 것이, 분명 ‘보컬’ 공연인데 성악가의 훌륭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컬 외적인 것들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무대 위 성악가와 연주자들의 훌륭한 퍼포먼스로 좋게 마무리될 뻔했던 이번 공연은 마지막 테마의 무대 연출로 인해서 어긋나고야 말았는데… 관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 같은, 연출가의 예술적 욕심만이 반영된 이 마지막 조명 연출은 솔직히 말해서 짜증까지 나게 했다. 속된 말로 눈뽕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뭐 짧은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연출이지만 거의 공연 말미 내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노래도 없이 객석에 이 강렬한 눈뽕을 선사하는 통에 대체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치밀어 오른 짜증을 미처 달래볼 기회도 없이 공연은 끝이 났고, 결국 나는 이 공연의 전반적인 연출에 대해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 채 공연장을 나와야만 했다.




이번 <보컬 마스터 시리즈Ⅲ-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정말 많이 기대한 공연이었는데 예상과 다른 형태에 흥미롭기도 했지만 다소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윤의 멋진 노래와 아벨콰르텟의 섬세한 연주는 너무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다음에 또 다른 공연들을 통해 이들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로비에 걸린 현수막 그리고 커튼콜 때 찍은 출연진들의 모습.


공연 전 무대 위 피아노, 오른쪽은 피아니스트 박종화님이 인사하는 모습(커튼콜 중).


커튼콜 중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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