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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 몸 Sep 07. 2019

[전문] 8화. '썅년의 미학' 민서영 작가의 몸

"내게 어떤 끔찍한 일이 생겼다. 이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덮어버리고 싶은데 나는 작가이지만 여자이기도 하기에 내게 일어난 그 최악의 일로 나라는 사람이 정의되길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인격이 그런 방식으로 소비되기를 원치 않는다. 내 작품 또한 그 끔찍한 일 하나를 바탕으로 소비되거나 해석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침묵하고 싶지 않다. 침묵할 수가 없다. 끔찍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척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짊어지고 다니던 그 모든 비밀을 더 이상 나 혼자 짊어지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한다면 내 언어로 필연적으로 따르게 될 관심에 개의치 않고 내 식대로 하고 싶다. 나는 용감하지도 않고 영웅적이지도 않다. 나는 강인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다. 나는 이 세상에 수많은 여성이 경험한 것을 경험한 한 여성일 뿐이다." (록산 게이의 '헝거' 중에서)


"안녕하세요. 웹툰 그리고 책 '썅년의 미학'을 쓴 민서영 작가입니다. '썅년의 미학'은 책으로 출간된 이후에도 아직도 웹툰으로는 계속 작업 중이에요. 저스툰에서 만나보실 수 있고요. (웃음) 


성인 웹소설을 쓰는 걸로 작품 활동을 처음 시작했어요. 성인 웹소설이니까 야한 이야기겠죠? 앞에 두 챕터는 남자의 시선으로 전개가 되고 뒤에 두 챕터는 같은 사건인데 여자의 시선으로 전개가 돼요. 그래서 처음에 읽으시는 분들이 제가 약 서른네 살의 남성 작가라고 생각했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뒤에 같은 사건을 여성의 시선에서 다룬 걸 보고 '아 이거 여성 작가가 쓴 거구나'라고 했다는 피드백을 들었었거든요. 그렇게 쓰는데 여성작가라는 걸 알고 난 다음에 제가 마주치는 어떤 무례함들이 좀 있는 거예요. 저는 성인 웹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거든요. '아니, 이게 내 일인데 뭐가 어때서'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뭔가 어째서인지 모르겠는데 성인 웹소설을 쓰는 여자, 성에 개방된 여자라고 하면 뭔가 이런 무례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는 쉽게 보인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쉽다는 건 결국 뭐겠어요. 나랑 쉽게 섹스해줄 것 같은 여자, 그런 이야기겠죠. 그런데 이제 결국에는 되게 웃긴 게 '이거는 내 욕망이야, 내 시선이야'라고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마주치는 그런 무례함들 때문에 제가 짜증이 났고 열이 받았어요. 


일단 '썅년의 미학'에서 '썅년'이라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남의 시선보다 우선시하는 여자라고 제가 항상 정의를 내려왔어요. 그러니까 사실상 여성의 욕구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굉장히 큰 욕망으로 치부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가장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제일 아래 단계가 허기, '잠자고 먹고'에 대한 욕구인데 잠자는 건 어떨지 모르겠지만 먹는 것조차 제한을 당하잖아요. 너 이렇게 몸이 이래서는 안 돼, 너 먹는 거 줄여, 먹는 거 이런 거 먹지 마, 이런 식으로 재단을 당하는데 그러면 여자는 이런 것, 저런 것, 먹고 싶은 것만 해도 욕망이란 단어를 붙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니 어차피 내가 뭔 말을 하든 내가 뭔 이야기를 하든 이걸 굉장히 큰 욕심으로 생각을 할 거라면 나 그냥 욕심부릴래' 보통 이런 자기 욕구대로 행동하는 여자들을 부르는 단어가 되게 몇 백 년 동안 계속 있어 왔어요. 


진짜 옛날에는 '마녀' '모던걸' '신여성'이었고 제일 오래된 건 결국 '썅년'이 아닌가 해요. 얼마 전까지도 '김치녀' '된장녀' 이런 게 다 포함이었으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나 썅년 할래. 나 내 욕망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살래. 하는 게 이제 결국 '썅년의 미학'에서 썅년이 가지는 의미인 거죠. 


사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좀 부담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내가 하는 활동을 제가 하는 활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말로 옮기도 싶지도 않은 어떤 언어폭력 같은 걸 겪는데, 또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 부담감이 항상 있는 거죠. 어설프게 얼굴이 드러나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여성 엔터테이너들이 겪는 일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남자 엔터테이너들과는 달리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하잖아요.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고 심지어 어떤 여성 연예인은 짝다리를 짚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과문을 써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그런 정말 여성의 행동은 너무나 재단당하기 쉽고 평가당하기 쉽기 때문에 그러니까 사실상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 


페미니스트 진영 내에서 제가 제 사진을 올리는 것이 타인에게 코르셋을 조장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그걸 딱 보니까 저라는 사람이 굉장히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저는 그냥 제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맥락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겠어요. 그런데 그 맥락은 알겠지만 깡마른 몸을 선호하고 굴곡 있는 여성을 우상화하려는 사회가 만들어낸 코르셋 때문에 여성들끼리 서로를 감시하고 부정하는 이 유구한 역사가 이런 식으로 또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감시하고 평가하고 그럴 게 아니라 그 힘을 우리끼리 좀 더 인정하고 이해하고 연대하는데 썼으면 한다고 글을 끝마쳤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 생각은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결국에는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는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어요. 그게 중학생 때쯤이었는데 그래서 저는 이제 그 자기의 신체를 부정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내 몸이 좋은데 누군가가 '야 아니야 너 못생겼어' '아니야 너 별로 안 예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더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더구나 저는 굉장한 '팔랑귀'예요. 되게 팔랑귀거든요. 그래서 누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어? 그런가?' 싶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몸이 좋아요. 그냥 결국에는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건 나잖아요. 내 몸을 긍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나고. 타인이 아무리 긍정을 해줘 봤자 내가 안 믿으면 그건 끝장이죠. 


굳이 그걸 적극적으로 '아 아니야 내 몸은 너무 사랑스러워 내 몸은 너무 소중해' 이렇게 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냥 '그래 아님 뭐 어때. 어쩌라고' (웃음) 이런 식으로 다들 좀 그냥 긍정할 수 있을 만큼 긍정하고 안되면 안 되는만큼 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신경 쓸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데 내 몸까지 내가 혐오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에너지가 들잖아요. 


저는 사실 치장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화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옷뿐만이 아니라 화장, 장신구, 이런 것도 분명 화려한 걸 좋아하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웃음) 방도 휘황찬란한 거 걸려있고 그런 걸 굉장히 좋아해요. 원래 취향이 그렇게 먹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게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이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사람은 화려하게 꾸미고 안 꾸미고 싶은 사람은 안 꾸미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굉장히 시각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패턴을 좋아하고 화려한 걸 좋아하고 시퀸을 굉장히 좋아해요. 시퀸 지금 오늘 입은 옷도 시퀸이 잔뜩 달려있는데 시퀸이 달려있고 벨벳이 있고 자가드 원단 우리가 흔히 말하는 커튼 원단 같은 것 있잖아요. 사실 오늘 입고 온 옷도 제일 좋아하는 옷 중에 하나인데 벨벳 끈이 달려있고요. 그리고 쭉 굉장히 긴 원피스예요. 오렌지색이랑 보라색이랑 파란색에 시퀸들이 잔뜩 쭉 줄무늬 모양으로 쭉 내려와 있는 그런 종류의 옷이고요. 


또 하나 좋아하는 것도 있는데 한복을 굉장히 좋아해요. 한복을 저는 화려하게 해석한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동양풍의 어떤 꽃 원단보다는 자가드 원단이나 좀 외국 원단을 화려한 원단을 사용해서 위에다가 망사나 이런 걸 금빛 가루를 막 뿌린 그런 옷 같은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옷들 중에 하나예요. 


제 욕망이라는 건요. 온전히 내가 바라서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보통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외형이 아름다운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성격이라든가 개성이라든가 취향이라든가 말투라든가 이런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런 걸 아울러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그 중심에는 무조건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타인을 위해서 스스로를 꾸미거나 아니면 거세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잣대로 사는 게 제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1769459?e=22819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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