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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박 Nov 21. 2019

20대 후반을 준비하는 마음

패배자의 회상


10대 후반의 나는 어른이되기를 기다렸다.

교복을 입는 것도 싫었고, 7교시까지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답답했다.

염색도 하고 싶고 피어싱도 하고 싶은데?

공부 말고 그림이 그리고 싶었고 스스로 돈을 벌어 여행도 다니는 그런 어른.

어른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훈장 같은 느낌이었고 로망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기다리면 시간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줄 거야- 라는 생각 하나로.

그렇게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마음만 앞선 어른이 되고 있었다.


엄마는 네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


모든 부모가 그렇듯 엄마는 내가 남들과 똑같은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하기 싫은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길 거라 굳게 믿었던 나는 반발했다.


나는 남들과 똑같이 살기 싫어


청개구리 마음이었다.


나는 소심한  청개구리


부모님의 반대로 입시미술을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힘들게 무대미술 전공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미술수업이 완전 주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작화와 디자인 수업도 있었지만 공연 제작과 기술수업이 대부분이었던 전공)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1년 만에 학교를 자퇴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때였다. 나는 학교에서 주로 준비하던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보다는 밴드 공연 무대가 하고 싶었다. 그때 당시 홍대 근처에는 라이브클럽이 많았고, 웃거리다 우연한 기회로 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말에만 공연일을 도와주었는데 어느 날  클PD님이 넌지시 제안하셨다.


널 공연기획자로 키워주고 싶은데 내년부터 제대로 배워보지 않을래?


그 말이 왜 그리 달콤했는지 나는 바로 학교를 자퇴했다.

학교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으니 지금 기회를 잡겠어라는 마음이었지-

그렇게 공연장에서 공연 스케줄을 관리하고 공연 시간에는 관객들에게 맥주와 칵테일을 판매하면서 마치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착각.

하지만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하면서 내가 받은 월급은 10만 원.


공연장 상황이 좋지 않으니 네가 좀 이해해. 그래도 경험도 쌓고 배우고 있으니 괜찮잖아?

 

열정 페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PD님의 말은  자기 합리화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밑바닥부터 시작했지 나도 무조건 버티면 돼-

참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오전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공연일을 지속했다.


그림이 그리고 싶다며?


내 마음속 한편이 외쳤지만 인생에는 변수가 많으니 참고 기다리라고 다그쳤던 다른 나의 마음.


어느 날 공연이 끝났는데 PD님이 뒤풀이에 참여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셨고, 래도 좋은 마음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자리에 참여했다.

물론 홍대에서 우리 집까지 택시비만 3만 원 가까이 나오지만. (버는 돈이 10만 원인데 그중 3만 원이라니!)

한참 뒤풀이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공연장으로 들어왔고 갑자기 PD님이 나에게 속삭였다.


얼른 저분 앞자리에 앉아서 술 따라드려. 이 바닥에서 중요하신 분이야. 좋은 기회야 얼른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미련 없이 그 바닥을 떠났다.

한낱 자존심 때문에 인생 망쳤다는 모욕,

어려서 쉽게 포기한다는 비난,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들일 수 없을 거라는 협박까지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온전히 나답게 살고 싶은데?


그때 꾹 참고 더 버텼다면 나는 정말 성공한 공연기획자가 될 수 있었을까.


휴학했던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 정리하고, 그 후 몇 년간 방황이라면 방황이겠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시작하고 쉽게 변하며 쉽게 포기했던 어린날의 나의 마음을 떠올리며-

염색도 하고 피어싱도 하고 돈도 벌 수 있게 된 나는 진짜 어른이 된 걸까.


환상에 빠져있던 마음에 나는 결국 패배했지만, 다시금 나는 어떤 사람이고 진정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느꼈던 몇 년의 고민을 끝에.

이제 나는 20대 후반을 준비며 그림을 그려 나간다.

10대 후반의 내가 20대를 기다린 것처럼-

한 번 제대로 어른이 되고 싶다는 희망과 함께

다시 한번 지금의 마음에 환상을 걸어본다.



근데 어른이란 건 대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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