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나

by 빌런 사냥꾼

식당을 하느라 바쁜 부모님은 병설 유치원, 초등학교가 방학하면 나를 시골 할머니집에 맡겼다. 표면적인 핑계는 '남들은 돈 들여 자연체험도 숲 속 유치원도 다닌다, 너는 방학 동안 맘껏 자연을 누려라'였다.


"아빠랑 둘이서 가게를 꾸리느라 어린애를 봐줄 수 없어 어린애 혼자 시골 할머니집에 맡겼다"

엄마는 사과 한쪽을 내 입에 넣어주며 훌쩍였다. 가게를 낼 땐 진 빚 때문에, 도우미도 구할 수도 없고 남들처럼 예체능 학원도 뺑뺑이 시킬 수 없어 방학마다 시골에 맡겼다며, 중학생 딸 앞에서 눈물바람이다.


엄마의 걱정과 달리, 할머니 동네에는 신기한 게 많아 방학마다 할머니집에 머무는 게 좋았다.

잠에서 깨자마자 엄마를 찾아 우느라 할머니가 진땀 꽤나 뺀 적도 있지만, 그건 일단 무시하기로 하자.

부모님의 십여 년 고생 끝에 가게 대출도 다 갚고 살림도 안정을 찾았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엄마와 아빠는 본인들의 한을 풀려는 듯, 어릴 적 가고 싶다던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을 고루 보냈다. 물론 흥미를 잃은 나는 두세 달 다니다가 그만뒀다. 부모님은 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초등학생 사이에서 중학생은 창피하다고요!'


자연스레 중학생이 된 이후 할머니와 방학을 통으로 보낸 적이 없다. 어른의 관심은 귀찮은 것, 보육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었다. 방학마다 학원 특강을 들으며 친구들을 만나는 게 더 좋았다. 할머니도 다 컸다며 기뻐하셨지 서운함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졸업을 앞둔 열 다섯 겨울방학, 할머니는 해줄 말이 있다며 오랜만에 방학을 같이 보내자고 했다. '혹시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신가, 그래서 나와 함께 있고 싶으신가, ' 지레짐작 걱정하며 짐을 쌌다. 문제집과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노트북도 챙겨서.


할머니가 다정하지만 말수는 적은 분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좋아하셨지만 자주 한숨을 쉬었다. 열다섯 나에게 할머니 본인이 평생 간직한 비밀을 털어놓자, 할머니의 한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취객과 취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