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 타는 아이

by 빌런 사냥꾼

"언니, 여기야."


회사 근처라고 했더니, 현서 언니가 점심을 사주겠다고 회사 앞으로 오라고 했다.


"뭐 먹을래?"

"언니 밥 먹고 바로 올라가야 하지? 멀리 가지 말고 언니네 회사 지하 식당에서 밥 먹자."

"그럼 너무 미안한데... 고마워.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 꼭."


지하 식당에는 이 건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로 붐볐다. 언니가 식권 2장을 내고 식판 하나를 내게 줬다. 밥과 반찬을 담아 자리로 돌아와 언니 앞에 앉았다.


"요즘에도 그거 해?"

"응, 적당히 나쁜 사람은 어딜 가나 있더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콕 집어서 말하기 거북한 상황을 만들어. 괜히 나서기도 애매하고, 참고 있자니 억울한 상황?"


현서 언니와 나는 8개월 전, 공원에서 만났다. 그날 저녁 난 다이어트를 위해 혼자 공원을 뛰고 있었다. 한쪽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웅얼거리는데, 반대편에서 전동킥보드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면 도망칠 생각조차 할 수 없다더니, 좌우로 주춤될 뿐 도망칠 생각을 못했다. 10미터, 7미터, 5미터... 그 순간 내 손을 잡고 숲 속으로 당긴 사람이, 현서 언니였다. 킥보드는 바로 뒤 숲 속에 처박히고 중학생 아이는 다리를 절며 일어났다. 그 아이는 나와 언니를 번갈아보더니 고개만 약간 숙이고 사라지려 했다. 작은 빌런에게 작은 악몽을 선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언니는 나와 아이를 보며 둘 다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학생, 다리가 많이 아픈 거 같은데 부모님 오시라고 해. 혼자서는 못 가."

"......"


킥보드 중학생은 휴대폰을 꺼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이 다쳤다는 말에, 어머니는 곧 오겠다고 했다.


"일단, 어머니 오시겠다고 하니까 여기 여학생이랑 같이 저기 벤치에 앉아 어머니 기다릴까?"

"네......"


벤치에 자리를 잡자, 언니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제 진정됐지? 학생, 이 학생에게 할 말 없어?"

"...... 죄송... 합니다."

"뭐라고 안 들리는데?"

"...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안 그러겠습니다."


언니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벤치에 앉아있는 학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면허 없이 전동킥보드 타면 안 된다, 공원에서 전동킥보드 타면 안 된다, 속도를 즐기면 운전자와 보행자 둘 다 위험하다 등. 곧이어 학생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거듭 죄송하다며, 다리 아픈 아들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다. 어머니한테 끌려가는 학생을 보며, 언니와 나는 웃었다. '작은 악몽 대신 어머니한테 혼나는 게 더 힘들겠다.'


"아까 말씀 못 드렸는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인사 잘 받을게요. 학생도 밤에 혼자 이어폰 끼고 러닝 하는 거 조심해."


거듭 감사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언니가 뒤따라온다. 또 하실 말씀 있냐고 물으니, 신호등 앞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한다.


"나, 저 아파트 살아요."

"저도요. 우리 같이 걸어갈까요?"


같은 아파트에 살며 언니와 여러 번 우연히 만나다 보니 우리는 친해지게 되었다. 동생이 갖고 싶었던 언니와 언니가 갖고 싶었던 나, 우리는 고민과 비밀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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