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밑줄그으면서 읽고, 스티커를 붙이고, 필사를 하면서 책 한권을 “뗀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뗀 책들이 많지는 않다. 어떤 책들은 손을 많이 태우지 않고 후루룩 읽기도 한다. 그런데 손을 많이 쓰고 여러번 눈에 담아 기억하려고 꼭꼭 씹어 먹는 책들이 있다. <나의 덴마크 선생님>도 그럴 것 같은 책이다. 오늘 자원봉사 글쓰기 수업을 하러 가기 전에, 좋아하는 동네 커피숍에 들러 이 책을 읽었다. 맛있는 아이스 그린티 라떼와 파운드 케이크를 냠냠 먹으면서...
책이 참 좋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행동도 현명한 좋은 사람들일 거란 생각이다. 좀더 높게 바라보고 바르게 행동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운 사회를 꿈꿀 것 만 같다. 세상엔 수많은 책이 있어 정말이지 나와 연을 맺게 되는 책들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의 훌륭함을 닮고 싶어 진다.
이 책은 정혜선 저자가 덴마크의 세계시민학교에 다녔던 배움의 기록이다. 눈이 펑펑 내린 날의 저녁. 나는 이 책을 따라 적으며서, 그러니까 필사를 하면서, 저자의 생각에 스며들어갔다. 깊은 사유도 좋았지만, 심경의 변화를 느껴지게 하는 일상의 소소한 관찰도 좋더라.
24p. 덴마크 사람들은 북유럽 신화에서 순박하고 정의로운 농업의 신 토르를 가장 사랑한다는데.
25p. 고민 끝에 나는 앙헬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가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배워가야할 지혜란 삶을 즐기는 법일지도 모른다.
33p. 나는 이제 향기 짙은 히아신스와 튤립을 파는 꽃집은 어디인지, 맥주 종료가 제일 많은 슈퍼마켓은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42p. “너 자신이 중요해”
43p. 지금보다 훨씬 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해야 할 것만 같은 일이 아니라.
48p. 먹고, 자고, 놀고, 살림하는 현장 자체가 교육인 이곳.
49p. 그렇지만 학교에는 먼저 마음을 열고 도움을 청하면 손을 잡아 줄 준비가 된 사람이 많다. 경쟁해서 누군가를 이겨야 살아남는 곳이 아니다.
51p. 눈부신 은빛 햇살이 마법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런 날은 학교에만 있으면 안된다. 친구들과 산책을 나갔다.
52p. 노랑 너도바람꽃. 연약해 보이는 꽃이지만, 이 추운 계절에 피어나는 것으로 보아 보통내기가 아니다.
54p. 내 안에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본 것만 같다.
64p. 큰 숙제를 끝낸 기쁨을 동료로서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만은 또렷이 읽을 수 있었다. 소통했다는 느낌, 연결되었다는 느낌보다 더 좋은 감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 어딘가 인류애가, 희망이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완전히 펼쳐 보일 수 있는 어떤 것을 찾기란 무척 힘들 수도 있다. 예컨대 개개인마다 자신의 가능성을 펼쳐보일 수 있는 것이 일일 수도, 인간관계일수도, 취미일 수도, 운동일 수도, 정치일수도, 예술일수도, 학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 저자에겐 그게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곳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저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기뻤다. 아직 완독하진 못했지만, 배움과 공동체살이의 기쁨과 어려움, 행복을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저자의 발자취에서 용기를 얻었다. 떠날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음에. 낯선 곳에서도 이방인을 환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삶에는 슬픔도 있지만 기쁨도 많다는 것에. 세상엔 서로에게 마음을 열 줄 아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진실에.
개인의 솔직한 기록이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을 더 사랑해보자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다니, 에세이란, 책이란, 정말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