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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 Mar 12. 2024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발터 벤야민(여자일 수도 남자일 수도) 을 초대하며



“나는 오래전에 데니스 윌슨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비치보이스를 떠난 뒤 그가 만든 앨범 <푸른 태평양>에 실린 곡이었다. 그 가사 중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고독은 아주 특별한 장소. Loneliness is very special place. 그때도 나는 자신을 그 도시의 거주자라고 여겼고, 윌슨이 그런 감상을 표현한 방식을 좋아했다.

 고독은 아주 특별한 장소. 윌슨의 발언에 담긴 진실을 보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그의 말이 옳다고 믿게 되었다. 고독은 가치없는 체험이 결코 아니며,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 그대로 가닿는다는 것을. 외로운 도시에서 경이적인 것이 수도 없이 탄생했다.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중에서 발췌.     


 오늘 서울숲에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지하철 안에서 울었습니다. 슬픈 생각을 하다가요. 서울 지하철은 울기 좋은 장소입니다. 나는 내가 가여워서 울었지만 서울사람들은 다들 바쁘기 때문에 우는 사람을 피하거나 흘겨봅니다. 나는 이 흔들리는 군중 속에서 눈물을 쭐쭐 흘리고 개운해졌습니다. 개찰구에 지하철 티켓 값을 카드로 계산하고 나오니 행인들이 허허실실 웃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그들의 표정을 보고 으히히 웃게 되었습니다.

 요즘 서울은 해피해피한 바이브입니다. 내가 해피해피한 것인지 내가 발견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해피해피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 며칠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도 스마일, 친구들에게도 스마일을 부탁합니다. 한국에는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하게 된다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데요, 제 생각엔 여기엔 강렬한 예언적인 힘이 느껴집니다.

 나는 요즘 혼자 있어도 사실 외롭다거나 고독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에세이책 <외로운 도시>를 발견하고 기뻤지만, 현재의 나 자신과 완전히 꼭 맞는 책은 아닙니다. 다만 저자의 섬세한 감수성이 예쁘고 관찰력과 표현력에서 많은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몇 년간 제가 애정을 갖고 찾는 공간이 몇 군데 있습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서울숲, 힙하고 소박한 망원동, 미술관들이 즐비한 삼청동, 이렇게 세 곳입니다. 다른 지역도 많이 가는데 이 세 구역은 제가 몇 년간 찾았던 빈도 횟수가 높은 거 같아요. 어느 대도시나 관광객이든 로컬 거주민이든 외롭고 고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도시에서 고독이란 감정은 낭만이라는 서사로 대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만의 통계로 볼 때 광화문에서 압구정에서 강남역에서 행인들이 모두 웃고 있더라고요. 이게 제가 변한 건지 시대가 변한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옛 유럽에서는 “관찰자”, “산책자”라는 발터 벤야민의 개념이 유행했던 걸로 어설프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만약 벤야민의 영혼과 친구가 되어 현대 서울을 산책하고 관찰한다면, 그를 기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맞다, 창경궁! 창경궁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지배했던 시절 수탈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는데요. 봄의 창경궁은 봄꽃들로 정말로 반짝입니다. 부활한 벤야민의 영혼이 서울에 온다면 일단 제일 먼저 창경궁 나들이를 하고, 한양도성 성곽길 투어를 같이 하며 역사와 울분을 가르치겠습니다. 만약에 그가 나와 친구가 된다면 내가 어디에서 행복하고 분노하는지 알면 우정에 좋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봄이니까... 서울숲은 또 무조건 가야 합니다. 돗자리 깔고 앉아서 호수 보면서 같이 브라질리언 음악을 듣겠습니다.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가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해 와야 합니다. 벤야민이 한국의 부드러운 자연에 대해 정확하고 창의적인 감탄을 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망원동에도 같이 가야 합니다. 망원시장에 가서 같이 망원 특산물을 함께 먹고 감각적인 커피숍에서 맛있는 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태원에서 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점점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제 말은, 멋쟁이 유러피안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고, 상상 속의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많이 많이 놀러오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책벌레다운 상상력으로 쓴 수필 한 편이 좀 허술해지는 것 같아요. 얼렁뚱땅 끝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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