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전에는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는 시간이 많은 편인데, 그 때 책을 읽는다. 올해 나의 독서 취향은 ‘위트 있는 다독가의 에세이’다. 취향이라는 말이 납작하게 느껴진다. 왜냐면, 취향은 물질적인 기호이기도 하지만, 어떤 삶의 방식-태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많이 영향을 받았다. 마음가짐이나 생각이 변하기도 하고, 행동이 달라졌으며, 인간의 분위기도 달라졌고, 인생의 계획도 새로 세우게 되었다.
영화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는 이다혜 작가님의 에세이들을 접하며 내가 담백하고 위트 있는 에세이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게 되었다. 내가 읽었던 이다혜 작가님의 에세이들은 다음과 같다. <출근길의 주문(일에 대한 에세이)>, <처음부터 잘쓰는 사람은 없습니다(글쓰기에 관한 에세이)>,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페미니즘적 책읽기)>,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여행에세이)>. 그리고 음식 에세이인 <조식: 아침을 먹다가 생각난 것들>을 다운로드 받았다. 책 제목들을 나열한건 내 독서근황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요즘의 내 성향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이 책들의 말들을 빌려 나를 드러내고 싶다.
이다혜 작가의 글의 매력이라면, 간결하고 담백하다는 것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촉촉한 기분파인데, 이다혜 작가님은 뽀송뽀송한 기분파인 것 같다. 나는 이 뽀송함을 닮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다혜 작가님의 에세이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예컨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주관이 있으면 덜 다치고 덜 헤멘다는 것,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나의 입장, 그리고 활자로 인간과 세상을 배우는 것도 꽤나 즐겁다는 것.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박현주 작가님의 에세이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를 아껴 읽고 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다가 울었다. 요즘 나는 책을 읽으며 자꾸 운다. 하지만 당신이라도 울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여러 대목이 눈물나지만, 오늘 읽은 챕터는 정말 나를 울보로 만들었다. 저자의 친구 T는 아이를 잃고 저자는 장례식에 참석한다. 추도사 후 성경 구절을 읊는 설교가 이어진다. 다음은 에세이 본문 내용을 필사한 것이다. (파랑색글자 부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빵, I am the bread of life) 이니”
‘아이가 좋아하는 빵에 착안해서, 군목이 어떤 문맥을 잡았을지 이해할수 있었다. 생명의 빵을 만난 사람은 절대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다. 그리고 영생을 살게 된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나는 종교적 신앙이 없지만 이 비유 만은 무척 직관적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A small good thing> 단편에서 주인공 앤은 토요일 오후 아들 스코티의 생일 케이크를 맞추기 위해 제과점에 간다. 월요일 아침에 케이크를 찾으러 가기로 했지만, 바로 그 날 생일를 맞은 스코티는 친구와 함께 걸어가다가 차에 치인다. 부부 앤과 하워드는 절망 중에 불쾌한 전화를 받는다. 당신의 스코티를 준비해 놨다고. 그 전화의 목소리는 케이크를 주문한 제과점의 제빵사 목소리인 것을 기억해내고 앤과 하워드는 한밤중에 제과점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제빵사는 밤까지 일해야 하는 지친 남자일 뿐이다. 아이의 사망소식을 들은 제빵사는 앞치마를 벗고 그들을 바라본 후 자리를 권하고 용서를 구한다.
제빵사는 커피를 따르고, 크림과 설탕을 탁자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갓 구운 롤을 권한다. 그는 말한다. 먹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먹는 건 이런 시기에는 사소하지만 좋은 일이라고. 앤과 하워드는 따뜻한 롤의 냄새를 맡고 포크를 든다.
군목의 설교 를 들으며 레이먼드 카버가 요한복음의 이 구절을 알았을까 잠깐 생각해보았다. 신은 우리를 먹이신다, 아무리 힘든 시기에서도. 그리고 다시 일어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빵을 나눠 먹고, 이야기를 하고, 한 번도 와본적리 없는 길을 지나 서로 만나러 올 수 있는 사이이다. 그렇기에 슬픔조차 나눌 수 있다. 슬픔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수 없는 그 날 내가 발견한 위로의 의미였다. 어쩌면 누구의 슬픔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는 위로가 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 구절에 울고, 신과 가까운 말과 행동을 한 소설 속 제빵사 때문에 울었다. 무엇보다 친구가 아이를 잃었을 때 가슴으로 울었던 박현주 작가님의 슬픔, 그리고 그냥 그 비극이 슬퍼서 울었다.
특히 박현주작가가 인용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 놀랐다.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정말 좋았다. 제빵사, 그는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행동을 했는데, 그것은 천사의 행동이었다.
박현주 작가님은, 레이먼드 카버를 읽고 거기서 자신의 삶과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슬픔을 달랠 수 있었던 것 같다. 상상력으로 빚어낸 문학이 주는 위로와 힘을 느꼈다.
나는... 책읽기가 좋아졌다. 슬퍼서 눈물을 흘릴 때도 좋고, 못말리는 유머에 웃을 때도 좋다. 때로는 억지로 읽기도 한다. 그래도 억지로 읽다가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뭔가를 얻어가기도 한다. 활자가 다시 좋아졌다. 생각에 둔한 나를 일깨우고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앞으로도 느리게 느리게 책을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