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밤 중에 잠이 오질않아 새벽까지 술에 관한 에세이책을 한권 다 읽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술에 대해 한번 써보고 싶어졌다. 술은 잘 못하지만 말이다.
나는 술을 처음 마신게 대학 입학 환영식때였다. 소주를 연거푸 마시고 대학가의 한 거리에서 토를 했다. 그 때 이후로 소주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생겼다. 하지만 대학시절 초반에 유행했던 과일주로 술에 마음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마음 착한 영화동아리 선배들이 달짝지근한 과일주들을 많이 사줬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술을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술에 대한 환상과 동경이 커져 갔다. 술을 잘하던 친구들은 왠지 인생의 맛을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호쾌해 보였고, 사람들과도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술 잘하는 친구들 옆에서 해물파전만 축내던 모지리였다. (양파가 들어간 간장에 찍어 먹던게 어찌나 맛있던지)
술친구들과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는 기회의 문도 닫혔다. 대학 졸업후 나는 잠깐 영화를 공부하다가 때려치고, 결혼하고 싶어했던 옛애인과의 결혼을 기다리다가 취업도 늦어졌다. 사실 경제적인 생존력이 부족해서, 퇴사가 잦았다.
그래도 마지막 직업이었던 그림책 서점은 정말로 좋아했다. 책방 직원으로 일했던 것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퇴근하고 맥주 일잔씩 할 수 있었던 튀김덮밥가게가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텐동을 맛있게 먹기 위해 맥주를 시켰다. 사실 맥주가 시원하다고 느끼는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었지만. 어쨌거나 삼십대 여자가 퇴근하고 술을 혼자 마시는 장면에 낭만은 없었지만, 뿌듯함은 있었다.
또... 술에 대한 기억을 헤집어 보자면, 아끼던 후배와 신촌에 있던 바에 가서 유명한 바텐더가 만들어준 칵테일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후배는 문학을 전공으로 했는데, 나를 무척 따랐다. 아마 내가 멍청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게서 멀어져간 것 같지만, 아무튼 그때 그 동생이랑 무척 친했다. 그래서 그 동생이랑 마시면 항상 내가 술을 샀다. 그 날도 내가 술을 샀는데, “언니가 가진 게 돈 뿐이야” 라고 취해서 한 농담도 기억이 난다. 그게 기억에 남는건 지금 내가 돈이 없기 때문인가? 허허.
참, 내가 기억하는 맛있었던 술 베스트 1위는, 친구와 호캉스를 가서 컵라면과 함께 마신 독일산 복숭아 맥주였다. 취기가 오르면서 나는 즐거웠고 핑클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럼에 대한 기억도 좋다. 밴쿠버에서 잠깐 살 때, 현지 친구들의 파티에 놀러갔었다. 그 때 만난 샤스키란 친구가 내게 줬던 럼이 기억난다. 해적들이 마시는 술, 럼. 과연 그때 어울렸던 친구들은 몸에 문신 한 개 이상 그린 날라리(?)들이었는데, 난 걔네들이 좋았다. 샤스키가 준 럼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는 술을 한잔만 마셔도 온 얼굴과 몸이 빨개지는 술치였으므로. 그래도 나는 그 술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샤스키와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환대가 좋았다. 또다른 친구 재키는 내게 “I want you involve” 라고 말해줬다. 나는 샤스키가 준 럼을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역시 술보다 커피파다. 그래도, 내가 앞으로 술을 잘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술은 참 매력적인 것 같다. 아, 술 맛을 알고 싶어라. 이런 상상도 해본다. 만약 언젠가 다정한 애인이 생긴다면, 그가 가끔 술을 마시고, 술을 좋아한다면, 술에 맛난 안주와 대화를 곁들여 대작하고 싶다고.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다가, 취기인 듯 치기인 듯 프로포즈를 하고(혹은 받고) 그 남자의 곁에 서는 결단을 내리고 싶다고. 왠지 술에 관한 이런저런 상상과 생각을 하게 되는 겨울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