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피자 덕후의 최후

by blue

요즘 동생과 냉전기다. 이유인 즉슨 내가 밤낮이 바뀌었고, 핸드폰 중독이기 때문이다. 내 생활패턴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생에게, 나는 그냥 내 방식을 고집했다. 그랬더니 동생은 제멋대로인 내가 참기 힘들다며 소리를 질렀다. 동생의 마음은 알겠지만 밤에 잠이 안오는 걸 어떡해. 나는 시무룩해 하다가 흥, 하고 말았다.

오늘은 새해 들어 두 번째 날이었고 동생과 아빠와 성당에 갔다. 할머니 제사 1주기라서 기도를 드리러 간거다. 우리는 거의 15년도 더된 그랜져를 타고 성당으로 향했다. 이 그랜져는 참 가족같다 이젠.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주고 수많은 출발과 귀향을 함께 했었다. 곧 새차를 산다고 하던데, 그랜저와 이별하는게 자못 섭섭하다.

정자동 느티마을의 성 마태오 성당으로 향하던 창밖으로 인스타그램을 팔로하는 작은 책방인 ‘좋은 날의 기억’이 보였다. 난 무심코 “저기 내가 좋아하는 책방이야. 나랑 저 책방 갈 사람?” 하고 외쳤다. 그러나 책방에 관심이 없는 아빠나 아직 냉전중인 동생 모두 말이 없었다. 심심해진 나는 풀이 죽었다.

아빠가 주차를 했고 차에서 내린 우리는 성당입구를 향해 함께 걸었다.

성당 근처에 도착하자, 성당 마당쯤 되는 공터에서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신부님들이 한 검은 차량에 성수를 뿌리고 계신 걸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장례 미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새 차를 산 한 남자의 부탁으로 신부님들이 새 차를 축복해주시고 계신 거였다. 신기했다. 물건에도 생명이 있고, 축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수명을 다해가는 우리 가족의 그랜져가 더 애틋했고, 우리 그랜저의 마지막에도 축복을 해주고 싶어졌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빈 성당에서 신부님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저절로 공손한 인사가 나왔다.

아빠와 동생과 함께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보며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집에 돌아와선 방에 틀어박혀 노트북만 했고, 나이가 꽉 찼는데 낮잠이 너무 많다며 아빠에게 혼이 났다. 백수의 민망한 시간이었다. 동생도 아빠와 한 편이 되어 나의 한심함을 공격했다. 나는 뾰루퉁해졌고 방콕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거실로 나오자 맛있는 냄새가 났다. 부엌으로 가니 피자 한판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반올림피자샾 피자였다. 엄마은 동생이 배달시킨 피자라고 했다. 나는 갈등했다. 내게 모진 말을 한 동생이 산 피자를 가오도 없이 구질구질 하게 한입만 달라고 할 것인가? 나는 내방 침대로 돌아와 군침을 다시며 번뇌했다.

짜식이 돈 좀 더 번다고 언니 무시하고 말이야. 그치만 피자가 너무 먹고 싶었다. 피자가 먹고 싶으니까 동생과 화해할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어짜피 화해할꺼 피자는 좋은 구실이기도 했다. 피자 덕후는 이렇게 최후를 맞았다. 사소한 구실 덕분에 살았는지도 모른다. 가족은 내게 글쓰기만큼 소중한 겄이다. 아마 내일 화해하면 다시 동생과 투닥거리고 웃고 떠드는 사이로 돌아가, 내 글쓰기의 진행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나는 우리 가족 사랑해. 피자 덕후는 이렇게 속없이 “쎈척”을 버리고 피자를 맛있게 먹는 결말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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