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한량.

수필공모전 상금타서 ㄷㅔ이트 하고 싶어라~! 못쓴글이라 삭제할지 모름

by blue

비가 내리는 수요일 오후. 한량인 나는 친구가 보고 싶었다. 친구에게 보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친구는 피곤한 지 만나주지를 않았다. 대신에 나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하는 <모네에서 세잔까지> 전시회를 보기로 하였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미술관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쓰고 총총걸음으로 미술관까지 걷는데, 왠지 미술관에 가까워질수록 오길 잘했다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밖을 나가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 것 같다. 뽀송뽀송하게 차려 입고, 기분을 내러 밖에 나오니 정말 마음이 동해 기분이 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량 최고. 나는 티켓 매표소에서 티켓을 발권하는 다른 한량들을 보니 웃음이 푹 나서 그들이 모르게 고개 숙여 웃었다. 우리 정말 팔자 좋네요. 사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나는 일에 치여 꾀죄죄한 몰골로 다니던 노동자였는데 말이다. 신분이 상승한 건지 추락한 건지 나는 당당한 한량으로서 전시회장에 입장하였다.

아! 그림들은 정말로 좋았다. 나도 좋은 거 보구 근사하게 “너무 좋다” 한 마디 만 딱,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나의 주둥이는 전생에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며 소문을 옮기던 처자였는지... 이러쿵 저러쿵 좋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비록 미술공부도 한 적 없는 인간이지만... 현대미술보단 유화같은 커다란 그림들이 나를 울렸다고 말이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그린 풍경화에서, 툭 하고 눈물을 쏟을 뻔하였다. 그 그림이 내 가슴을 왜 건든 건지는 나도 모른다. 아름다운 햇살 속에서 하루하루의 일과를 소중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순간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특히 붓터치 같은 게 멋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너무 좋았다.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좋았지만, 폴 고갱이 몹쓸 놈이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술가 그룹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지만, 예술을 위해 가족을 버렸다고 한다. 차암내, 미쳐버린 것 아니오?)

그리고 정물화- 르누아르가 사과 정물을 그린 그림을 보고는 한동안 멍하니 쓸쓸해졌다. 그 사과의 모양과 생명이 영원토록 그림으로 남았는데, 그 옛날 그 순간의 사과를 비추는 햇볕과 공기가 비록 순간이지만 영원인 듯이 느껴져서 좋았다... 사실 나는 내 언어가 없는 사람이라 뭘 보구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잘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암튼 이 그림은 정말 미쳤다. 미친 그림. 사람 쓸쓸하게 환장하게 만드는 그림. 나는 그 그림 앞을 서성거리며 이 환장하게 쓸쓸한 그림이 왜 내 눈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는지 몰라서 슬펐다.

그리고 이 전시가 참 훌륭했던 것은 시간의 흐름대로 화가들이 어떻게 자연과 세상 사회를 바라보고 표현하려 했는지 그 구성이 참 괜찮았던 것 같다. 풍경화에서 정물화로, 그리고 산업화 시대를 맞아 도시 풍경을 그려내는 화가들. 산업화 시대(18세기에서 19세기 즈음으로 추정)의 한량은 도시문화의 관찰자로서 의식있는 산책자로서 기록에 남아 있었다. 샤를 보들레르의 한량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재밌었다. “캐주얼한 몸짓”! 나는 한량으로서 뜨끔했다. 나는 보들레르 시대 한량들만큼의 사유의 폭이 깊지 못한 것 같아서. 또한 스스로 노동계층에 속했던 사람이라 생각해서, 풍경화들 속 공장에서 나오는 검은 구름들 밑에서 일하는 사내들을 보고 눈물을 쏟을 뻔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해변가에서 아름다운 햇살을 맞으며 독서하고 있는 정숙하고 고결한 여인의 표정에도 무심결에 기분좋게 웃고 말았다. 계층과 소속을 알 수 없는 어리고 순진한 여자의 초상화에도.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지 못하는 나는 참된 한량이렸다!

전시회장을 나와 푸른 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려진 풍경화 엽서 한 점,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쓴 여인의 초상화 엽서를 한 점 구매하였다. 근처 까페로 가서 크루와상과 버터, 녹차쿠키와 라떼를 주문하여 맛나게 먹었다. 창밖으론 비가 내리고 사람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모습이었다. 오늘 나는 느슨한 불안과 만연한 기쁨 그리고 확실한 여유 속에서 행복했다고나 할까. 기록할 만한, 비오는 날의 미술관이었다. 한량일 때 가끔 이렇게 전시회들을 보러 쏘다녀야겠다. 아름다운 그림들에서 기운을 얻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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