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칼럼/에세이 연습하는 팅팅의 글입니다.
나는 팔십육년생 범띠이고 올해 서른다섯이 된 프리랜서 미혼 여성이다. 비혼이 아니라 미혼이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여자라는 이야기다. 나는 야심한 밤 이 글이 내가 좋아하는 잡지에 실리기를 기도하며, 당이 떨어져 부들거리는 손으로 타자를 치고 있다. 부엌에 가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콘후레이크를 우유에 말아먹으며, 돈을 벌어 데이트 비용으로 쓰자고 다짐했다. 나는 이 콘후레이크 브랜드 캐릭터인 노란 호랑이를 좋아한다. 치약광고에나 나올법한 자본주의적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척, 하고 내밀고 있다. 이걸 먹으면 기운이 날거라는 저 자신만만함이 좋고, 육식동물인 호랑이가 저렇게 친근하게 그려져 있는게 너무 웃기다. 아무튼 나는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올해는 기운을 내서 남자 좀 잡아 먹고 싶다. 말이 너무 험했나?
나는 데이트 공백기가 너무 길었다. 마지막으로 울고불고 이별했던 연애가 오년전이고, 옛애인과 이도저도 아닌 사이로 지냈던게 사년전이었고, 그 옛애인이 마음을 완전하게 닫고 말아 혼자 울고불고 하다가 차분해진 심정으로 틴더를 돌려 했던 데이트가 삼년전이었다. 틴더로 만난 남자는 칠구년생 양띠였다. 아무튼 그런 나이차는 처음이었고 남자가 착했어서 나는 마음을 주고 싶었지만, 철이 없었던 걸까 나는 그의 외모에 정을 주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의 외모가 주는 매력이 내가 끌리는 조망권 밖이었던 것 같다. 그와 스페인 음식점에 가서 향신료가 강한 음식도 먹고, 멕시코 음식점에도 가고, 마블 영화 <토르>도 보며 깔깔대고, 별자리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그와 나는 황당한 이유로 헤어지게 되는데. 그때 당시 백수였던 나에 비해 그는 모 외국계 회사의 실무진이었다. (그가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과도 일해봤다는 무용담을 들려줄때면 나는 꺅꺅 돌고래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나는 재취업을 위해 고민중이라는 말을 하다가, 백수인 내가 한심해졌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근데 중요한건 이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연애에, 섹스에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이 아니었겠지, 싶지만서도, 연애라는 게 계속 항상성을 유지해야 뭔가 감도 살아 있게 되는 것 같아 그를 떠나 보냈던게 이제와서 후회가 된다.
연애공백기 중간중간에는 연애에 무심하게 되는 초식녀기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가족들이랑 같이 사는데, 그냥 퇴근하고 동생이랑 치킨 뜯어먹는게 최고의 행복이 되었다. 드라마 보며 즐거워 하고, 맛있는 것 먹고, 그런게 그냥 사는 재미였다. 그런데 그렇게 그 시절을 보내고 나자, 또다른 시절이 찾아온다. 내가 부족한 줄 몰랐던 것에 대한 갈망. 내게 뭔가 비어있다는 느낌. 치킨을 먹다가도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 그렇게 갑자기 굶주린 사자마냥 나는 걸리는데로 추파를 던지게 된다. 매개체는 바로 SNS. 인스타를 통해 오래전 알게 되었던 남자들에게 정신줄 잡기를 포기하고 껄떡이게 된 것이다. 예의를 갖추면서도, 사랑스럽고, 기회를 노리는 섹시한 멘트로. [안녕하세요, 저 ㅇㅇ이에요. 오랜만이에요! 날씨가 좋은데, 혹시 저랑 만나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떡볶이를 먹고 그 다음에는 칵테일을 한잔 하고 싶은데 같이 동행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카톡이나 SNS메세지를 보낸 상대들은 주로 옛애인의 친구이거나 군대 후임이었다. 인간관계고 평판이고 나발이고 내가 죽겠어서 그런 짓들을 했다. 품위를 포기하고 모험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부도덕한 짓을 하다니 후회 안하냐고?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정말 남녀관계에서 오는 애정이 그리웠을 뿐이다. 물론 윤리에 따라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때도 있고,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데이트 공백기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솔직히 어떻게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엔 대학 커뮤니티에서, 싸이월드 동호회에서 잘도 만났다. 삼십대인 지금은 연애세포도 자꾸 죽어서, 게으름이 늘고, 누군가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상상을 않게 되니까, 살이 불었다. 바디 포지티브라지만... 나는 [브리짓 다이어리]의 통통한 르네 젤위거 보다, [제리 멕과이어]의 섹시한 르네 젤위거 가 되고 싶었는데. 안돼, 안돼, 자꾸 자조하면 안돼. 스폰지밥 처럼 월요일마저 사랑하는 긍정충이 되자. 자, 그렇다면 어떻게 데이트공백기를 견뎌야 하나? 품위와 모험은 공존하거나 상생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인연과 함께 다시 좋은 시절이 찾아온다면 자연스럽게 사라졌던 케미스트리도 환생할까? 생계를 유지하며,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고, 그렇게 나를 풍요롭게 하고 있으면 내 짝이 나를 발견해줄까? 나는 실패한 연애를 곱씹는 것처럼 자주 실패한 썸들도 생각해본다. 어떤 가능성들이 거기엔 있었다. 이 글을 쓰다보니까, 내가 먼저 남자들에게 데이트 신청했던 것을 후회한다. 그건 현명하지 못했다. 내겐 전략이라는게 없고 욕망만 있었던 것 같다.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야 모험도 할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보다 솔직함이라는 촌스런 덕목을 택했으나 거기엔 로맨스가 없었다. 나는 삼십대에 걸맞는 애티튜드로 짝을 품어야 한다고, 글을 쓰면서 혼자만의 철학을 도출해냈다. 사실 이 글의 요지는 이렇다.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