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ㅊㅊㅊ

'그 모란앵무'는 어떻게 우리집으로 왔나

취향, 처세 혹은 치유

by myjay

아내가 마트에서 앵무새(모란앵무)를 한 마리 더 사 왔다. 집에 이미 앵무새들이 있어서 데려온 게 이상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려는데, 아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어보면 횡설수설하고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는 게 아닌. 뭔가에 홀린 듯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사실 아내는 앵무새를 키우고 난 후, 청계천이나 마트에서 파는 앵무새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한다는 걸 알게 됐다. 열대 섬지방에서 많게는 백 마리씩 떼를 지어 생활하는 이들을 데려와서는 좁은 공간에 가둔 채 번식시켜 팔아치우는 시스템이, 우리가 아는 반려동물 코너의 실체인 셈이다. 그 이후부터는 대형마트에 가도 모란앵무나 금붕어, 토끼 등등 반려동물 구입 코너는 피해 다녔는데 하필 그날따라 아이가 보고 싶다고 하도 보러 가자고 졸라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모란앵무 한 녀석이 코가 막힌 채로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구석에 앉아 있는 게, 딱 보기에도 아픈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는 넋이 나가서 아픈 모란앵무를 단숨에 집으로 데려왔고 상태를 자세히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동물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X-레이 촬영을 했는데 감기에 의한 폐렴이었고 선생님은 진단서를 만들어 줄 테니 마트에 병원비를 청구하라고 권했다. 마침 병원에 함께 있던 분이 비슷한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해줬는데 마트를 상대로 이런 소동(?)을 피워도 이기기(병원비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자신도 예전에 병원 치료기록을 가지고 마트에 가서 이런 애들을 가둬놓고 팔아도 되냐고 항의했더니 직원이 다른 앵무새로 바꿔주겠다고 했단다. 하자 없는 다른 '상품'으로. 마트 안에는 '고장 난 상품'을 보관하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고 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울었고 모란앵무를 집에 데리고 와서 처방받은 약과 끼니를 꼬박꼬박 주었다. (다행히 그 녀석은 우리 집에서 건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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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파는 앵무새는 농장 같은 곳에서 직거래를 하는 것보다 40% 정도 비싸다. 게다가 그 병든 앵무새를 데리고 두 번 병원을 방문했는데 보험이 안 되는 동물 병원비가 그 앵무새를 구입한 비용의 몇 배는 더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이 상황으로 인해, 동물병원에 갈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미안해한다. (오늘도 아내는 '미안, 이혼해줄까?'라는 문자로 자신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아내만큼 동물에 대한 섬세한 정서가 없는 나조차도, '아픈 애들을 다른 걸로 바꿔주겠다고 했대'라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이 내 양심의 한구석에 오랫동안 잔상처럼 남아 있다. 아내는 장기적으로 청계천이나 기타 열악한 공간에서 죽을 확률이 높은 상품들을 대량 생산해내는 곳에서는 동물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또한 이제는 동물을 상품화하고 '거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게 되었다.


강아지가 아프면 병원에 간다. 하지만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 데리고 있던 우리 집 강아지도 선천적으로 관절이 안 좋았는데 보험 혜택이 없어서 간단한 다리 수술조차 몇 십만 원, 많게는 백만 원 정도가 들었다. 이쯤 되면 만만찮은 비용 문제로 치료를 유보하거나 '반려' 동물을 처분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금붕어는 어떤가. 금붕어가 아프면 우리는 그저 지켜보다가 죽으면 어항에서 건져낸다. 그럼 토끼는 어떨까. 모란 앵무는...


물론 어떤 종은 살리고 어떤 종은 내버려두는 데에는 상대적인 입장 내지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큰 동물일수록, 지능이 높은 종일수록 사람과의 교감의 정도가 클수록 살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또한, 개개인의 정서 혹은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에 따라 어떤 동물은 큰 비용을 치르면서도 살리거나 치료하고 싶어 하는 반면, 어떤 동물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이라는 상품을 내놓으면서 '반려'의 의미, 가치와는 무관하게 마치 종이컵이나 전자제품 같은 소비재를 대하듯, '아 흠집이 났네요. 저기 가시면 새 걸로 바꿔드립니다'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시스템 속에 고통받는 생명의 아픔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처음엔 아내가 그랬고 이제는 나도 그렇다. 우리 집 반려 동물들은 모두 이름이 있다. 그 아이들은 거래는 되었을지 몰라도 이제 더 이상 상품이 아니다. 새로 온 이 모란앵무도 그렇다.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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