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처세 혹은 치유
"사랑해?"
살면서 내가 받았던 질문 중 가장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썸'타던 상대와도, 한때 사귀던 여친과도, 하다못해 친척 어른이나 조부모가 손자인 나에게 건네는 질문에서조차 종종 머뭇거렸다. 맹세하건대 나는 '나쁜 남자' 부류는 아니었다!(뭐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아재'가 된 지금은 상관도 없겠으나...) 뭐랄까, 통용되는 '사랑'이라는 말이 상당히 모호하게 다가왔고, 뭔가 대단한 내적인 힘을 갖는 표현 같은데. 그래서 그만큼 대답하기 쉽지 않은 개념,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는 걸 막연히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마치 성경 속 베드로도 아니면서, 사랑하냐는 물음에 바로 답을 해주지도, 내 마음을 정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데 대한 실망, 죄책감이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십 대에 사랑을 표현하고 그 마음 상태를 확신하기엔 또래에 비해 내가 정서적으로 미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서로의 육체를 탐하고 싶은 마음, 혹은 '언젠가 너와 결혼할 거야'라는 의지 혹은 다짐, 나아가 서로에 대한 특별하고도 오랜 상호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내 기대와 달리 자주 휘청거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클로저'란 영화 속 한 장면.
두 연인이 관계의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주드 로에게 '사랑이 어디에 있냐'라고 소리치는 대목에서 뜬금없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나는 지금도 영화 속 그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관계에 균열이 가고 어느덧 그 모호한 '개념'을 의심하게 되었을 때,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서 더 이상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저 타자의 입에서 발화되었지만 이제 나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어떤 소리일 뿐이다.
이성 간의 관계가 됐건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됐건 간에 이 보이지도 잡히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오가기는 하지만 그만큼 오용될 수 있고 그 개념을 가장하여 상대를 속일 수 있고 또 그 말에 스스로가 속을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개념의 확증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이를테면 시간을 함수 그래프의 가로축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그 단어에 대응하는 어떤 행동의 함수가 상승과 하강의 어떤 유려한 곡선을 계속 그린다면, 그 곡선이 오랜 시간 동안 내적인 힘을 가지고 점들을 계속 이어갈 때. 그제서야 스스로가 발화했던 사랑한다는 말의 유효성을 획득하는 게 아닐까.
물론, 찰나의 상승과 하강 후 소멸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때때로 중요한 순간처럼 여겨졌던 어떤 장면에서조차 주저하고 조심스러워했던 '사랑'이라는 정서, 그 정서에 대한 생각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내겐) 어느 정도의 시간을 통해, 그 궤적 속에서만 확신할 수 있는 류의 정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