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유딩 스트레스 날리기
태권도에 다닌 지 2년이 넘어가는 1호는 이제 발차기하는 솜씨가 제법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펀칭하는 힘도 점점 세지고 있다. 그런 형아를 보고 자라는 2호는 늘 형아가 부럽다.
형아는 늘 자기보다 세고 뭐든 자기보다 잘한다. 그래서 형아가 2년을 넘게 밥을 먹던 낡은 그릇도 이제 제 것이라고 우기려 이름 스티커부터 붙이고 본다.
나는 내심 아이들이 태권도와 수영만큼은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일 때까지 꾸준히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2호에게도 킨디 입학하고 나면 그때 형아랑 같이 다니자고 미리부터 꼬시는 중이다.
녀석도 요즘 자기가 크고 있다는 것을 부쩍 인식하는 중인지 매일같이 소리친다!
‘나 이만큼 키가 컸어.’
‘나 밥 먹고 이만큼 발이 자랐어.’
‘나 엄청 힘세지?’
아직 5살도 안된 2호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공룡보다도 힘이 더 세다며 두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 죽을 것 같다. 하지만 귀엽다고 방심하다간 큰코다친다. 녀석 정말 힘이 세져서 장난친다고 내게 펀치를 날리면 순간 나도 모르게 족제비처럼 눈을 치켜뜨고 아이를 노려보게 되니까 말이다.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만큼 이제 뭔가 집에서 힘을 소비할 만한 것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는 남편을 조르고 졸라 오늘 드디어 펀칭백을 사 왔다.
이 정도면 초딩도 유딩도 스트레스 좀 풀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에 재빨리 사 와서 세팅을 마쳤다. 튜브로 되어있는 펀칭백 바닥을 물로 채우고 남편은 폐가 찢어질 정도로 빵빵하게 펀칭 백에 바람을 불었다.
좋아해야 할 텐데~~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호가 하교하자마자 신나게 가지고 놀았다. 아직 2호가 하원하기 전이라 심심했는지 생각만큼 호기심이 길게 가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파트는 2호가 하원하고 난 후에 펼쳐지리라 예상했고 내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2호를 데리러 가서 집으로 걸어오는 중에 펀칭백에 대해 들은 아이는 이내 발걸음에 부스터를 단 것처럼 집으로 날아왔다. 2호는 현관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펀칭백을 부둥켜안아버렸다.
짜식~ 좋구나? 나는 매우 흡족했다. 바로 내가 기다리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어던지기가 무섭게 4살 2호는 무지막지한 에너지로 펀칭백과 대결을 시작했다. 주먹질과 발길질은 물론 박치기 공룡 파키케팔로사우르스로 변신해서 멀리서 달려오는 박치기까지. 대단했다.
2호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 지켜보고 있던 1호는 갑자기 매직을 들고 오더니 예술을 하기 시작했다. 펀칭백에게 얼굴과 몸을 그려주고 이름표도 달아주었다. 내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펀칭백에게 자아를 제공한 1호는 이제 대련을 시작했다. 마치 태권도에서 대련하듯이 펀칭백을 마주 보고 앞지르기와 앞차기, 돌려 차기까지 아주 다양한 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매우 흡족한 나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1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1호가 나를 불렀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지 묻는 나에게 1호가 외쳤다.
‘Emergency 야!!!!!!! 응급상황이라고’
거실에서 들리는 아이에게 내가 뛰어갔을 땐 이미 거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미스터 펀칭백이 전사한 것이다. 바람이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오뚝이처럼 중심을 잡기 위해 집어넣은 물주머니가 터져버렸다.
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2년 차 태권 보이의 파워를 너무 우습게 보았던 것이다.
녀석은 장난감이 아니라 정말 훈련을 할 수 있는 펀칭백이 필요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바닥에 쏟아진 물을 아이와 닦아내며 한참을 웃었다. 1호도 자기의 파워가 어이가 없었는지 멋쩍어하면서도 나랑 같이 베실 베실 웃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내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실감하며 기특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다.
미스터 펀칭백 미안해~ 부디 좋은 곳으로 가려무나.
몇 시간도 안된 잠깐이었지만 내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날려주어 참 고마웠어!!
땡큐 쏘 머취 미스터 펀칭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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