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르지만 함께 — 4살 아이들의 코스모폴리탄 점심시간

다름을 배우는 시간, 뿌리를 나누는 점심

by YJ Anne

2호가 다니는 프리스쿨에서 메일이 왔다.


7월 1일 화요일 Multicultiral lunch 행사를 하며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을 갖습니다. 보호자들은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각 문화의 대표 음식을 함께 나눠먹을 수 있게 준비해 오세요.


이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걱정부터 앞섰다.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할뿐더러 예쁘게 꾸미는 것도 잘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호주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무언가 요리를 해서 가져가야 하는 일들이 종종 생기곤 했다. 프리스쿨에서는 위와 같은 다문화 파티 정도이지만 학교는 다르다.


프라이머리 스쿨에서는 선거날, 특별한 학년의 펀드레이징 등 학교에서 행사가 벌어지면 학부모들에게 베이킹 도네이션을 받는다. 이때 많은 부모님들이 베이킹 실력을 발휘해 기부를 한다. 그러면 학교는 기부된 음식들을 모아 판매를 하고 그 수익을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소비한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도 베이킹은 좋아해서 못난 실력이지만 몇 번 직접 구운 머핀이나 찹쌀 파이로 도네이션을 한 적이 있다.


베이킹은 괜찮다. 나름 레시피도 정해져 있고,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견과류만 넣지 않으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요리들이 꽤 많이 있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파트가 바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다. 모처럼 시간을 쓰며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인데 참여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낯설어서 음식이 남으면 속이 상한다. 그렇다고 너무 가벼이 대충 만들 수도 없으니…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곤 한다.

고민에 고민 끝에 나는 대부분 디저트를 담당하고는 했다.


1호가 프리 스쿨 다닐 때는 찹쌀 파이를 만들어 갔다. 다행히 대추 대신 넣은 대추야자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달달해서 인지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번에는 뭘 하지? 고민을 하다가 역시 디저트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이때 내 머리를 스치던 생각이 한과였다. 쌀과 조청으로 만들어진 달달하고 부드러운 한과.


견과류가 들어가지 않은 예쁜 한과를 사러 내 주변에서 갈 수 있는 모든 한인 마트를 방문했다. 하지만 6~7월에는 명절도 없기에 한국만큼 다양한 상품을 이 자그마한 마트들에서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한과처럼 유통 기간이 짧은 상품들은 수입 자체가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한과 비스무리한 전통 과자 코너를 찾아보았지만 하나같이 견과류가 들어있거나 적어도 깨가 들어있었다.


한참 마트를 둘러보던 차에 머리에 번뜩 아이디어가 스쳤다.

예전에 어디선가 쌀 튀밥을 가지고 강정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바로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고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가능했다.


바로 쌀 튀밥을 구매하고 집으로 갔다.

여러 레시피를 찾아본 결과 설탕, 조정 아니면 물엿, 들기름이나 참기름이 있으면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기름은 호주에서 흔히 먹는 올리브유로 대체하기로 했다.


진짜 괜찮겠냐며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남편을 나는 아주 쿨~ 하게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말라고~ 요알못인 나 같은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유튜브에서 그랬다고.


그래서 나에게 정말 쉬웠냐고?

그랬을 리가 없다.


우선 재료는 간단했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했다.

커다란 팬에 설탕과 물엿과 올리브유를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쌀 튀밥을 넣고 버무리면 거의 끝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다투는 마의 구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세상에. 설탕에 버무린 쌀 튀밥은 정말 찰나의 순간으로 굳어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각 팬에 기름을 바르고 잘 펴서 굳히고 식은 후에 칼로 잘라 보았다. 하지만… 꽉꽉 누르지 않다 보니 반듯하게 잘리지도 않았고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져서 도저히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들을 모두 재운 육퇴 후 나의 재도전은 시작되었다.


낮에 한대로 다시 쌀 튀밥을 설탕에 버무렸고, 모두가 식어버리기 전 찰나 같은 시간에 미리 장갑을 끼고 대기하고 있던 남편과 강정 스틱을 만들었다. 색깔이 갈색이었다면 딱 큰 강아지 응가? 같았을 크기와 모양의 강정 스틱을 우리는 열심히도 만들어 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재빨리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어버린 녀석들은 이내 남편의 뱃속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직행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우리는 해냈음에 박수를 쳤고, 이제 마음 편히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잠도 잘 왔다.

다문화 점심 파티는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었다. 나처럼 디저트를 만들어 온 분들도 있었고, 빵, 소세지 구이, 피자, 연잎에 싼 전통 음식 등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모였다.

아이들은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손에 들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어떤 음식인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등 4~5살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귀여운 발표였다.


그 시간 밖에 장대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평상시에 뛰어노는 앞마당에서 점심을 먹었을 텐데… 때마침 찾아온 장대비에 모두들 옹기종기 교실 안에 모여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생소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요청해서 접시에 담았다. 아이들도 보호자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맛있게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나눠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야 교실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내 눈에 태극기가 확 들어왔다. 이날을 위해 여러 나라의 국기를 아이들이 정성껏 만든 것이다.

또 큰 세계 지도를 붙여놓고 아이들이 각자 어느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실로 끌어와 서로 알아가기 쉽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한 곳에 놓고 보니 우리는 정말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 지금 여기, 같은 공간을 디디고 서 있었다.

너와 나는 생김새도, 쓰는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지금 여기에 함께 살고 있으며 친구라는 것.

다른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온몸으로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때로는 다름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불안을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열린 마음으로 알아가려고 노력하며 마주 본다면 불안과 불편은 이내 사그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 여기서 4~5살 아이들이 마주하는 조그마한 사회도 어른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아이는 지구본을 돌려보며 나에게 말했다. 내 친구 ***는 필리핀에서 왔대.

또 ***의 엄마는 덴마크에서 왔고, 아빠는 케냐에서 왔대. 나는 엄마 아빠가 모두 한국에서 왔는데.

지금 우리는 여기 호주에 함께 살고 있어. 신기하지?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매일매일 펼쳐지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반짝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크작 #앤크작 #작가앤

#아들육아 #육아일기 #육아 #호주육아일상 #호주일상 #호주육아

#호주유치원 #호주초등학교 #유치원 #초등학교 #호주공교육 #호주교육 #호주유치원생활 #유치원생활

#다문화 #다문화파티 #Multicultiral #Multicultirallunch

#다름을알아가는아이들

#피부와언어가달라도친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