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디 꼬마의 방학놀이
“꼬꼬마 정비소 오픈 합니다.”
아이는 어제저녁부터 신났다. 어제저녁을 먹고 난 후 아이가 제안했다. 내일 자동차 정비사가 되어서 우리 집 자동차를 직접 점검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 3초 고민했을까? 흔쾌히 승낙했다.
안 그래도 아이와 뭐 하며 놀아줘야 방학을 알차게 보낼까 매일 고민 중이었다. 엄마의 고민을 눈치챘을까?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덥석 먼저 이야기해 주니 얼마나 기특한지.
아이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야기할 줄 알았던 아이는 예상외로 정비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설마 잊어버렸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일을 하러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외쳤다.
“엄마, 오늘 정비소 오픈해야 하니까 조심조심 빨리빨리 다녀와야 해. 알았지? 안전 운전하고~”
역시 녀석 잊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후 1시쯤 도착했다. 나는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점심을 준비했고, 남편과 나는 김밥과 컵라면, 1호는 햄과 치즈를 넣은 햄버거를 맛있게 먹었다.
다음 끼니의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는 나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지기가 무섭게 불러대던 아이인데, 무슨 일이지? 찾지 않으니 내심 더 궁금해지는 건 또 무슨 마음일까?
궁금한 마음에 요리가 거의 마무리되어갈 즈음 아이를 불렀다. 10분 뒤면 나갈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물으며 아이를 찾아보았다. 이때 ‘짜잔~’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내 눈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뭘까~~~’ 한껏 궁금한 듯 연기하는 톤으로 응수했다.
뭔가 의미를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이의 설명을 듣고 나니 기가 막히게 이해가 됐다. 1호는 평소에도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고 세세하게 표현하는 아이다. 그런 성향은 오늘 그린 정비소의 체크리스트에서도 나왔다.
체크 리스트에 있는 목록은 이랬다.
-엔진오일 체크
-와이퍼 워셔 액 체크
-냉각수 체크
-바퀴 공기압 체크
-트렁크에 위험물질이 있는지 체크
-사이드미러의 작동여부 체크
준비를 마친 후 우리는 자동차 키를 챙겨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집 드라이브 웨이에 주차되어 있는 내 차 먼저 점검을 하겠다며 열쇠를 들고 앞에 섰다.
아이는 자동차 보닛을 열어서 봐야 한다고 했다. 알았다고 흔쾌히 대답하고 보닛을 열었는데 세워두는 기둥이 보이질 않았다.
사실 나는 운전하는 동안 한 번도 차를 직접 점검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워셔액도 직접 넣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 살 때는 서울에서만 살았기에 교통편이 잘되어 있어서 차가 필요 없었고, 운전 경력은 호주에서만 있었다. 그리고 우리 차는 늘 남편이 관리했었다. 내가 차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지만 남편이 워낙 차에 관심이 많아서 중고차를 몰던 시절에도 매번 부품을 직접 사다가 교체하며 정비했다.
내가 직접 자동차 보닛을 열어본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는데 그때도 목적은 보닛이 아니었다. 남편 차를 몰고 나가서 기름을 넣으려 주유소에 들렀는데 주유구 커버를 연다는 것이 그만 보닛을 여는 버튼을 눌렀었다. 그때 나는 정말 당황했다. 보닛은 버튼을 누르면 살짝 들리기만 하고 활짝 열려면 손을 안으로 집어넣어 다른 버튼을 눌러야 제대로 열린다. 급한 남편에게 전화해서 아무리 설명을 들어보아도 여는 버튼이 손에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무사히 주유는 했지만 보닛은 제대로 열지도 못하고 몸무게로 힘껏 눌러 닫아야만 했다.
이렇게 자동차를 모르기도 하고 관심이 1도 없는 나였는데 아이가 정비하겠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요청하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엔진오일체크도, 워셔액을 넣는 탱크도 처음 열어서 확인해 보았다. 물론 옆에서 보던 남편이 저 멀리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어서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오늘 내게 꼬꼬마 정비소는 장난 50% 호기심 50% 였는데 진지하게 신이 난 아이 덕분에 정말 정비모드를 장착해야만 했다. 그리고 사실 쫌 재미있었다. 아이와 차 안을 들여다보며 진지모드로 체크하다 보니 역할놀이인데 어느새 진심이었다.
그래서 과연 정비소 놀이는 어떻게 끝이 났을까?
우리 집 꼬꼬마 정비사는 무사히 체크리스트를 마치고 자동차 두 대 모두 워셔액을 채워야 한다고 적어두는 것으로 정비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칭찬 스티커를 꼼꼼히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야 할 때가 많다.
때로 이런 부분이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색다른 재미로 다가올 때도 많다.
나 자신이 내꺼 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게만 느껴지는 육아인생.
오늘은 왠지 코끝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엔진오일 냄새가 부모놀이를 잘 마친 나를 칭찬해 주는 듯하다.
야호!! 다음 주 화요일이면 아이가 드디어 학교에 간다!
‘근데 그때까지 또 뭐 하고 놀지’ 하며 오늘 밤에도 머리를 긁적이는 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