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의 수영인생
어느덧 아이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3달이 넘었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의 수영 강습시간은 아이에게 물에 대한 무서움을 조금씩 극복하게 해 주었고 아이는 점점 더 물에서 노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감기가 찾아왔고 거의 나아가던 그날은 수영강습이 있는 수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영복을 챙겨 입히고 부랴부랴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배우고 있는 반에 들여보내러 갔는데, 어랏? 선생님이 다른 분이었다. 가끔 담당 선생님이 쉬시는 날 다른 선생님으로 대체된 적이 있었으니 그럴 거라 짐작했고, 아이는 웃으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레슨시간 내내 아이는 꽤나 열심히? 아니 제대로 말하면 빡시게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와야 하는지 등을 쩌렁쩌렁하게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습 시간 동안 나도 내심 마음을 졸였다. 마치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는 듯한 목소리였고, 아이는 분명 이렇게 강한 분위기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끝나서 옷을 갈아입히러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아이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수영은 오늘 이걸로 그만하자.” 아주 또박또박 천천히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이내 눈이 빨개지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토닥이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더 이상 수영을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하며 울었다.
“왜? 선생님이 너무 힘들게 했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친절하지 않아서 그래?”
나지막이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역시 그랬다.
밖에서 지켜보는 내가 느꼈던 기분을 아이는 고스란히 물속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었다.
이제껏 재미있게 배워왔던 수영을 선생님 때문에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이 선생님은 잠시 맡아주신 선생님 같으니 다음 주에 왔을 때도 같은 선생님이면 내가 센터에 얘기해 보겠노라 약속함으로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 우리는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바로 2호가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었다. 2호가 병원에 있는 내내 남편은 1호의 학교 픽드랍 만으로도 벅차서 수영장과 태권도는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어야 했다. 물론 1호도 여전히 독감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쉬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았다.
2주 뒤에 다행히 2호가 퇴원을 했고, 아이들의 체력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싶어 오늘 학교가 끝난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다시 무서운 선생님이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 마. 엄마 선생님 얼굴 기억하니까 그 선생님이면 센터에 얘기해 볼게.’
아이를 달래며 수영장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에는 우리가 우려했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가 엉엉 울게 만들었던 그 선생님이 같은 시간대의 친구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닌가.
1호는 거부했다.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며 버텼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카운터로 직행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을 사용해서 카운터에 있는 선생님에게 설명을 했다. 센터 담당자는 지금 선생님이 앞으로 쭈욱 가르치실 분이고, 만약에 선생님을 바꾸고 싶다면 바꿀 수 있는 요일은 금요일 밖에 없다고 했다.
목, 금요일에는 태권도를 가니까 수영강습 요일을 바꾸고자 하면 태권도 강습요일을 바꾸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과연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바꾸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1호에게 선생님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보면 어떨지를 물어보았다. 아이의 눈빛은 엄마가 나에게 왜 이러나 하는 눈빛이었다. 자기랑 분명 약속했는데 왜 여기서 말을 번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당황스러운 표정도 어려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총괄 매니저처럼 보이는 선생님께서 친근하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셨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냐고, 자기랑 한번 이야기해보자며 아이의 손을 잡고 조그마한 테이블로 이끄셨다.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너의 상황을, 네가 원하는 것을 차분히 저분에게 이야기해 보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는 매니저 앞에 서서 질문에 대답을 이어가며 원하는 것을 조금씩 이야기했다. 이 분은 아이에게 네가 학교를 다닌 것처럼 여기도 swimming school이라고, 배우는 것은 늘 쉽게 갈 수만은 없다고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말씀하셨다.
수영이 싫은 것이 아니라면 네가 싫어하는 이 선생님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5분간만 물속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이에게 제안하셨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아이는 5분을 더 앉아서 보고 싶다고 자기가 말했다.
아이는 그렇게 강습 시간이 끝날 때까지 10분 정도를 물속에 앉아만 있었다. 드디어 아이가 물속에서 나온 후 옷을 갈아입히러 가서 나는 나지막이 아이에게 물었다.
지켜보니 어땠냐고. 네가 보기에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불친절했냐고. 친구들이 힘들다고 느끼도록 가르쳤냐고. 만약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면 선생님을 바꾸기 전에 몇 번 더 이 선생님에게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론 내가 조금만 더 친절하게, 그리고 너무 힘들게 푸쉬하지 않도록 부탁하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
아이는 내 말을 찬찬히 듣더니 이내 나의 눈을 보고 얘기했다. 해보겠다고. 선생님을 바꾸기 전에 이 분에게 조금 더 배워보겠으니 엄마가 꼭 말해달라고.
우리는 손을 잡고 다시 카운터로 가서 매니저와 상의했다. 앞으로 아이는 매주마다 하나의 강습만 하겠다고. 천천히 아이의 속도에 맞게, 아이와 상의하며 레슨을 진행해 보겠다고 약속하셨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담당 선생님과 상의하실 것과 아이가 수영을 즐겁게 배우도록 당분간 푸쉬는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수고로운 땀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며 성장했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나에게 잘 맞지는 않았고, 때로는 이런 분은 절대 선생님이 안되셨으면 하는 분도 만났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선생님을 바꿀 수 있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모든 일에는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님에게서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고난과 역경을 만나면 사람은 한 단계 성장하듯이 스승과 제자의 만남도 또한 그렇다.
아이의 마음을 힘들게 했던 선생님에게서 나는 잘못된 점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되려 아이를 푸쉬했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해보도록 하셨을 것이다. 그랬던 시간이 아이에게는 억지로 해야만 하는 힘겨운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사람을 알아갈 때는 아주 단 시간으로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참 많다. 어떤 관계에서든 우리는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아이가 아주 짧은 30분의 경험으로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좋아하게 된 수영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랬다. 매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아 갈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 떨어진 시선으로 상황을 관찰한 아이가 내린 선택을 통해 나는 아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알았다. 부모의 강압적인 강요가 아닌 자신이 결정한 이 선택이 앞으로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실 조금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된다.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선생님을 만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로 조금은 성장했다는 사실이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 속에 빛나는 기대감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도 조금은 더 성숙한 부모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보는 경험의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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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