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응급실(Emergency)은 처음이지?
전화가 오기로 한 시간이 5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핸드폰이 울렸다. 의사는 내 자초지종을 듣더니 어린아이의 중이염은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처방이 불가하다며 방문 진료가 가능한 다른 의사를 잡아 줄 테니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나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도착 후 진료를 본 의사는 아이가 너무 어리고 불어난 귓밥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고름이 나오는 정도를 보아 많이 심각해 보이지 않다며 ear drop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증세가 심해지면 월요일에 다시 재방문하라고 했다.
이 순간이 바로 내가 제일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감기가 그동안 심했으니 청진기로 아이의 숨소리가 괜찮은지 한 번 확인해 달라고 했어야 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 중이염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는 이야기에 정말 괜찮을 거라고, 의사의 말을 믿고 싶었다.
이렇게 미련하고 바보 같을 수가… 수십 번도 돌이키며 후회했다.
이때 만이라도 응급실로 달려갔었으면 아이는 조금 더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나의 무지는 다가오는 주말에 아이가 더 아프도록 만들어버렸다.
주말 동안 별 탈이 없던 2호의 상태가 더 많이 나빠진 것은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이었다.
새벽 4시쯤 잘 자던 아이가 엎드려서 구토를 하려 했다. 열을 재보니 39도가 넘었고 나는 급한 마음에 아이를 안고 침실을 나왔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 해열제를 먹지 않겠다고 엉엉 울었고,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추운 거실을 거닐며 아이의 열이 식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5시, 아이는 한 번 더 토를 하려고 했다. 열도 내리지 않아 우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서 해열제를 먹였다. 약을 먹인 아이를 간신히 토닥여서 재우고 나니 창 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이대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는 없었다. 병원이 여는 시간까지 상태를 지켜보기로 하고 아이가 자는 동안 우선 급한 회사 일부터 처리하려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해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니 10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자고 있었다. 힘들겠지만 병원에 데려가야 하기에 남편에게 미리 아이를 깨워달라고 얘기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섬과 동시에 나는 아이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아이는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숨을 가쁘게 몰아쉬기도 하는 것 같고, 입술을 자세히 보니 오한을 느낄 때처럼 파래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른쪽 귀에서는 여전히 진물이 나오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자마자 병원으로 전화했다. 접수 직원에게 지금 당장 내원할 수 있는 의사를 알아봐 달라고, 토요일 방문 당시보다 상태가 더 나빠졌음을 명시하며 의사를 꼭 봐야겠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11시에 가능한 의사가 있다는 연락과 함께 나는 또 다급하게 아이를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불안해서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이에게 엄마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기에 불안감을 꾹꾹 씹어 눌러 삼키고 아이를 안아 병원으로 들어갔다.
진료를 보던 의사는 그동안의 아이 상태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었고, 이내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청진기를 들어 가슴 앞 뒤로 아이의 숨소리를 들어보더니 손가락에 조그마한 기계를 채웠다. 이 하얗고 네모진 작은 기계에서는 89~91이라는 숫자가 바뀌어가며 깜빡이고 있었다.
혈중 산소 포화도. 건강한 아이라면 99~100을 왔다 갔다 하는 숫자가 우리 2호에게서는 90이 겨우 나왔다. 의사는 나에게 물었다. 집이 어디냐고.
지금 아이는 중이염이 문제가 아니고 폐렴이라고 생각되며, 왼쪽 폐에서 공기가 통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다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하는 걸로 보이니 집으로 가지 말고 지금 당장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내 아이의 입술이 파래진 이유,
밭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신 이유,
기력이 점점 떨어진 이유는 바로 폐렴이었다.
나는 두려움과 미안함으로 떨리는 마음부터 부여잡았다. 의사에게 받은 진단서를 가방에 욱여넣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우선 내 아이를 살려야 했다. 의사는 내게 응급실에 가서 진단서를 보여주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면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 아이의 상태는 그 정도로 심각했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왜 나는 이토록 안일했을까.
다행히 우리는 시드니에서 가장 큰 어린이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가끔 병원 앞으로 지나가는 길에 남편과 바로 옆 동네에 어린이 병원이 있어서 참 좋다고, 그리고 우리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며 지나쳤는데 오늘 나는 그곳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응급실 입구에서 남편을 만났다. 2호를 남편이 안아 들고 나는 서류를 움켜잡고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평일 낮인데도 응급실 안에는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왔는지 체크업을 받고 대기할 수 있다 해서 잠시 기다렸다가 접수하는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분은 서류를 살펴보고 아이의 무게를 재고 청진기로 아이의 폐소리를 확인한 후에 바로 직원을 부르더니 침대를 안내해 줬다.
대기 중인 수많은 아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배정받은 침대로 향했다. 상황은 그만큼 심각했고, 나는 그 사실에 또 한 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의사를 만나기까지 우리는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언제 의사를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는 아이와 노래를 부르며 장난도 치고, 지루해하면 쓰레기통을 찾아내어 쓰레기를 버리는 놀이도 하며 겨우겨우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이제 두 시간이 다되어 가는데… 우리는 언제쯤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걸까?
끝도 안 보이는 이 막막한 기다림 속에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때가 분명 오기는 할 텐데 내게는 그 시간이 너무도 길고 멀게 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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